[원스 어폰 어 와인 <53> 봄날처럼 싱그러운 독일 와인] 전, 불고기, 잡채 등 한식과 조화로운 독일 와인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2024. 5. 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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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한 독일 와인 프린세스 레아 바슬러. 김상미

봄이 한창이던 지난 4월 서울에서 한독상공회의소가 개최하는 와인 행사가 열렸다.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주에서 생산된 와인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조금 일찍 도착한 행사장은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한 청년에게 눈길이 갔다.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와인 병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싱그러웠다. 누군지 물어보니 얼마 전에 와인 프린세스로 선발된 레아 바슬러(Lea Bassler)란다. 독일이 와인 홍보를 위해 미인 대회를 개최한다고? 잠깐 그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청했다.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독일은 1950년부터 와인 퀸과 프린세스를 선발해 왔다. 75년째 이어지는 유서 깊은 행사다. 선발 기준은 미모가 아니다. 와인 지식과 시음에 대한 노하우가 출중한 사람을 찾는다. 와인에 대한 열정과 적극적인 성격도 필요하다. 바슬러는 어떤 계기로 와인 프린세스가 됐을까. “아버지가 와인 메이커이고, 우리 가족도 30만㎡의 포도밭을 경작하고 있어서 어려서부터 와인과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어느 날 토양, 기후, 양조 방법 등에 따라 같은 품종으로 만들어도 와인 맛이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그게 신기해서 와인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와인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내 꿈은 와인 마케터가 되는 것이다. 와인 프린세스로 일한 경험이 장래 직업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도전했다.” 당차게 꿈과 포부를 밝히는 그의 모습이 상큼한 리슬링(Riesling)을 닮은 듯했다.

추천 와인 1 퀼링 길롯, 퀸테라 리슬링 트로켄 2 베겔러, 독토르 리슬링GG 3 SMW, 리슬링 리저브 젝트 4 토마스 슈미트, 프라이빗 컬렉션 피노 누아 5 플뤼거, 피노 누아 / 사진 각사

독일을 대표하는 청포도 품종인 리슬링은 사과, 레몬, 복숭아 등 과일 향이 신선하고 보디감이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숙성 잠재력이 좋고 다양한 음식과도 두루 잘 어울려 국제적으로 인기가 높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도 리슬링 생산이 느는 추세다. 독일 리슬링만이 가진 특장점이 뭘까. 바슬러에게 물었다. “무엇보다 달콤한 과일 향과 새콤한 산미의 밸런스가 일품이다. 독일은 날씨가 선선해 포도가 천천히 익는다. 그래서 향이 켜켜이 차올라 아로마가 풍부하고 포도가 과숙되지 않아 산뜻한 신맛을 유지한다. 은은하게 섞여 있는 향신료 향도 고급스럽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와인이 맛있어서 자꾸만 마시게 된다는 점이다.”

독일 모젤에서는 풍부한 일조량 확보를 위해 강변의 가파른 경사면에 포도밭을 일군다(왼쪽). 라인헤센의 와인 산지. 라인란트팔츠 관광청

독일 리슬링은 산지별로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레이블에 적힌 산지명을 확인하고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기후가 서늘한 모젤(Mosel)에서 생산된 리슬링은 아로마가 섬세하고 질감이 정교하다. 토양에 편암이 많아 와인에서 부싯돌 같은 미네랄 향도 느껴진다. 모젤에서는 리슬링의 신선함을 살려 젝트(sekt·스파클링 와인)도 생산하고 있다. 샴페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고, 오래 숙성한 프리미엄 젝트에는 농익은 과일 향과 감미로운 꿀 향이 가득하다. 갓 구운 토스트의 구수한 풍미가 복합미를 더한다.

모젤보다 남쪽에 위치한 라인헤센(Rhe-inhessen)의 리슬링은 복숭아 같은 핵과류 향이 많고 산도가 덜해 맛이 한층 부드럽다. 독일 안에서도 맑은 날이 가장 많고 날씨가 온화한 팔츠(Pfalz)에서 생산된 것은 과일 향이 풍성하고 보디감이 묵직해 와인이 강건하고 힘찬 느낌이다. 이렇게 지역별로 스타일은 다르지만 독일 리슬링은 공통적으로 탁월한 숙성 잠재력을 자랑한다. 올드 빈티지가 될수록 꿀과 말린 과일의 달콤함이 증가하고 휘발유나 등유 같은 미네랄리티가 묘한 매력을 더한다.

최근에는 독일산 피노 누아(Pinot Noir)도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독일은 이미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피노 누아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걸까. 자국 내 소비가 많아 수출량이 적어서다. 세계 1위의 피노 누아 생산국인 프랑스와 비교하면 독일산은 딸기와 라즈베리 등 붉은 베리류의 아로마가 가득하다. 산미가 좋아 맛이 상큼하며 타닌이 적어 질감이 매끈하다. 풍부한 과일 향을 즐기며 편하게 마시는 것도 있지만 오크 숙성을 거쳐 보디감이 묵직하고 응축된 풍미를 자랑하는 것도 있어 스타일이 다채롭다. 가끔 레이블에 피노 누아 대신 독일어로 슈페트부르군더(Spät-burgunder)라고 쓰인 것도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한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필자는 독일 와인을 가장 먼저 꼽는다. 매운맛과 부딪히는 알코올과 타닌이 적어서다. 바슬러도 같은 의견인지 궁금했다. “4박 5일간 서울에 있는 내내 점심과 저녁을 한식으로만 먹었다. 한식을 좋아해 독일에서도 종종 먹었지만 본고장에서 먹으니 훨씬 더 맛있었다. 독일에서는 자기 접시에 담긴 것만 먹지만 여러 가지 요리를 함께 나누는 한국 문화가 나는 더 좋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이 한꺼번에 차려진 식탁에는 리슬링이 제격이다. 채소, 해산물, 육류 등 재료와 상관없이 두루 잘 맞고 산뜻한 신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매콤한 한식에 약간 단맛이 나는 리슬링을 곁들이면 입안에 남은 매운맛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한국에는 레드 와인 팬이 많다고 들었다. 그들에게는 피노 누아를 권하고 싶다. 매콤달콤하게 양념한 고기 요리와 정말 잘 어울린다.”

바슬러와 짧은 대화를 마친 뒤 행사가 시작되자 참석자들에게 한식 도시락이 제공됐다. 양식을 내놓는 일반적인 와인 행사와는 다른 신선한 접근이었다. 이어서 와인 메이커들이 여러 종류의 와인을 서빙해 주었는데, 스타일은 달라도 생선, 전, 불고기, 잡채 등 모든 음식과 맛있는 조화를 이뤘다. 세계적인 인기에 비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독일 와인의 인지도가 높지 않고 저평가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시간문제다. 한식과의 어울림, 가격 대비 우수한 품질, 테루아를 진솔하게 보여주는 순수한 맛 등 넘치는 장점이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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