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하다고? '라이더 최저임금' 만들어낸 뉴욕시를 보라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2024. 5. 2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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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플랫폼기업의 로비와 거짓 주장, 보복을 뚫고 만든 쾌거

한마디로 경이로웠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런 문서를 세계 최대의 도시 중 하나인 뉴욕시 행정부가 발표했다고?

"플랫폼기업(앱)에서 제안한 계수는 비용 관련 사항을 고려할 때 음식배달 노동자 수입이 적절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플랫폼기업 주장을 따를 경우) 시간당 임금이 부적절한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므로 이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작년 6월 12일, 뉴욕시 소비자·노동자 보호국(DCWP)이 발표한 배달노동자 최저임금 적용을 위해 채택된 최종 규칙(Final Rule) 문서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이다.

문서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뉴욕시 행정부가 라이더 최저임금 도입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하고 방법을 찾았는지, 얼마나 광범한 이해당사자들 의견을 들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꼼꼼하게 그들의 주장을 검토했는지에 대해 몇 번이고 놀라게 된다.

▲ 뉴욕시 소비자·노동자 보호국의 배달 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최종규칙 일부.

배달노동자 최저임금 도입의 대전제

뉴욕시는 라이더 최저임금 도입을 위해 2~3년의 준비를 해왔다. 최종 규칙 발표에 이르기까지 2차례의 초안을 제시하고 의견수렴 및 수정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칫 제도가 가질 수 있는 허점과 빈틈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한 원리를 세운다. 문서 곳곳에 녹아 있는 그 원리를 열거해 보자.

➀ 라이더들에게 지급되는 임금(배달료)은 연료비·수리비 등 배달에 필요한 이륜차 경비를 제한 뒤에도 뉴욕시 최저임금 이상이 되는 수준이어야 한다.
➁ 실제 배달시간만이 아니라 배달 콜을 기다리는 대기시간까지 고려하여 라이더 최저임금을 계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유효운행률(utilization rate) 개념을 도입한다.
➂ 노사 당사자는 물론이고 이해관계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수집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열린 토론을 통해 결과를 도출한다.

이 3가지 원리에 입각해서 뉴욕시는 세계 최초로 배달 노동자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렇다면 실제 라이더 최저임금 계산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제도 도입과정에서 각각의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은 무엇이었고, 어떤 조율과 토론을 거쳐서 결론에 도달했을까? 지금부터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원리 ➀ 비용을 포함한 최저임금 수치 적용

거칠게 말하자면 현재 뉴욕시에서 음식배달을 하는 라이더들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시간당 18.96달러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배달노동자에게 시간당 최저임금이 적용된다고? 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천천히 하기로 하고 먼저 도입과정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 2023~2025년 뉴욕시가 발표한 배달노동자 1, 2차 규칙(안)과 뉴욕시 최저임금.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앞서 얘기한 것처럼 뉴욕시 행정부는 2차례에 걸쳐 규칙(안)을 발표하고 이해당사자 의견수렴을 거쳤다. 위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1차 규칙(안)과 2차 규칙(안)에서 제시된 연도별 최저임금 액수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차이의 핵심적인 이유는 '멀티 앱핑(multi-apping)'에 대한 조정 때문인데, 이에 대한 설명도 잠시 미뤄두도록 하자.

지금 이 표에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다른 곳에 있다. 최종 규칙으로 채택된 2차 규칙(안)의 수치가, 평범한 뉴욕시 노동자가 받는 최저임금 수치보다 3달러 가량 높다는 점이다. 배달노동자의 경우 기름값이나 오토바이 수리비, 운송보험료 등을 자신이 부담해야 하기에, 배달료로 받는 수입에서 이 비용을 뺀 금액이 진정한 소득에 해당한다. 그래서 해당 비용만큼 시간당 임금을 더 받아야만 비로소 평범한 뉴욕시 노동자와 동일한 권리를 누린다고 볼 수 있다.

원리 ➁ 유효운행률 통해 대기시간 임금 보상

다음은 유효운행률 개념을 살펴볼 차례이다. 영문 표기인 'utilization rate'는 보통 공장 가동률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총시간 대비 실제 가동시간의 비율을 의미한다. 배달 업종에서도 유사한 의미로 볼 수 있는데, 배달을 할 수 있는 총시간 대비 실제 배달에 투입된 시간의 비율이라 할 수 있다. 뉴욕시 행정부는 문서에서 유효운행률 산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한글 번역은 필자가 덧붙인 것)

▲ 뉴욕시가 배달 노동자 최저임금 책정에 사용한 유효운행률 계산식.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배달을 할 수 있는 총시간은 배달시간과 대기시간을 모두 더한 값으로, 쉽게 얘기하면 라이더가 앱에 로그인한 시간부터 로그아웃한 시간 전체를 의미한다. 즉, 어떤 라이더가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4시간 동안 앱에 로그인 상태로 있었는데, 그 시간 중 콜을 기다리는 대기시간을 제외하고 온전히 배달에 투입한 시간이 2시간이라면 유효운행률은 50%가 된다.

뉴욕시 행정부는 뉴욕시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주요 음식배달 플랫폼, 즉 우버이츠(Uber Eats), 그럽허브(Grubhub), 도어대쉬(DoorDash) 등으로부터 2021년 1분기부터 2022년 2분기까지 총 6분기 동안의 모든 데이터를 넘겨받아 분석을 진행했다.

▲ 2021년 ~ 2022년 2분기 뉴욕시 배달 노동자의 유효운행률.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그 결과 위 표와 같은 분기별 유효운행률을 얻게 되었고, 6개의 분기 전체의 평균값은 60%로 나타났으며 표준편차는 7%였다. 유효운행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팬데믹이 정점을 찍고 엔데믹이 시작되면서 음식배달 건수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대기시간도 당연히 노동시간에 포함

그런데 유효운행률 계산은 왜 한 것일까? 바로 이 대목에서 유보했던 질문 하나를 소환해야 한다. 뉴욕시에서 시행 중인 배달 라이더 최저임금 제도는 건당 임금 지급방식인가, 아니면 시간당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인가?

사실은 2가지 모두라고 말하는 것이 정답이다. 왜냐하면 뉴욕시 행정부는 배달 플랫폼이 배달료(임금)를 지급하는 여러 방식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다음의 2가지 방식 중 하나를 플랫폼기업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표준 방식 : 배달시간이건 대기시간이건 앱에 로그인 해있는 시간 전체에 대해 시간당 최저임금(2024년의 경우 18.96달러) 이상을 지급하는 방식
▴대체 방식 : 배달시간에 대해서만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 이 경우 배달시간당 최저임금에 유효운행률 60%를 나눈 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함.

언뜻 봐서는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 있는데, 대체 방식의 경우 18.96달러를 60%, 즉 0.6으로 나눈 값인 31.6달러 이상을 배달시간당 지급해야 한다. 즉, 대기시간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는 대신 배달시간에 대해서는 더 높은 보상을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아주 결정적인 원리가 작동된다. 플랫폼기업들은 대기시간이 아니라 배달시간만 노동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뉴욕시 행정부는 앱에 로그인 해 있다면 대기시간도 노동시간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므로 당연히 보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이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편의점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손님이 뜸한 시간에 잠시 앉아서 쉬고 있다고 해서 그 시간을 노동시간에서 제외하지는 않는다. 사무직 노동자가 잠시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노동시간에서 빼는 경우가 있는가?

이런 시간 모두 사장의 지휘·통제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이며, 한국의 근로기준법 50조 3항에 입각해 보아도 당연히 노동시간에 포함된다. 앱에 로그인 해있다면 콜을 받기 위해 잠시 대기하는 시간도 노동시간으로 보는 것이 옳다.

즉, '대체방법'을 따르면 배달시간에 한해서만 임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효운행률에 따라 더 높은 액수의 최저임금을 적용하기 때문에 결국 이 경우에도 대기시간에 대한 보상을 실시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원리 ➂ 데이터에 대한 공정한 평가

배달료를 후려치고 싶어하는 플랫폼기업들은 당연히 이런 방식에 반발했다. 이를테면 우버이츠의 경우 자신들이 실시한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유효운행률이 87%에 달했다며 60%라는 수치에 반대하고 나섰다. 유효운행률 평균치를 높이면 대체방식을 사용할 때 배달시간에 지급해야 할 임금이 낮아지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뉴욕시 행정부는 그건 기업 스스로의 평가일 뿐이며, 만일 정당하게 주장하려면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옳다며 맞섰다. 특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효운행률은 떨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87%라는 수치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억지에 가까웠다. 이처럼 라이더 최저임금 제도 도입을 위해 수집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모은 뒤 공정한 평가와 열린 토론에 기반해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동일한 원리로 뉴욕시 행정부는 플랫폼기업의 반론 하나를 받아들였다. "만일 라이더가 2개의 앱에 동시에 로그인 해있는 경우(멀티 앱핑, multi-apping), 어느 한쪽 앱의 콜을 수행하는 동안 배달료를 받으면서 다른 앱에서는 대기시간으로 인정되어 추가 보상을 받는 불합리함이 발생하지 않는가?"

이에 따라 뉴욕시는 멀티 앱핑 실태를 데이터에 입각해 공정한 평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수집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한 결과, 뉴욕시 라이더의 경우 2개 이상의 앱에 로그인 해있는 시간이 17.7%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평균적으로 1시간에 약 10분 남짓 멀티 앱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멀티 앱핑이 발생하는 경우 뉴욕시 라이더는 평균 2.02개의 앱에 동시에 로그인 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개의 앱에서 동시에 보상이 이뤄지는 불합리함을 조정하기 위해 뉴욕시 행정부는 다음과 같은 멀티 앱핑 계수를 사용하기로 했다.

▲ 뉴욕시가 배달 노동자 최저임금 책정에 사용한 멀티 앱핑 계수.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먼저 여러 개의 앱에서 동시에 보상이 이뤄지는 평균치를 계산한다. (1-0.177)은 멀티 앱핑이 발생하지 않는 시간, 즉 라이더가 하나의 앱에만 로그인 해있는 시간에 대한 보상을 의미하며, (2.02×0.177)은 멀티 앱핑이 발생하는 시간, 즉 라이더가 평균 2.02개의 앱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17.7%의 시간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

보상의 평균치를 계산한 후 이의 역수를 취한 계수가 바로 0.8471이 된다. 바로 이 계수가 등장하면서 1차 규칙(안)에서 제시한 최저임금 수치가 2차 규칙(안)에서 상당히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들은 멀티 앱핑 조정에 반대했으나, 뉴욕시 행정부는 데이터에 입각한 공정한 평가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19.96달러라는 최종 수치가 나오기까지

▲ 뉴욕시 배달노동자 최저임금 세부 내역표.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이제 긴 여정의 끝에 도달했다. 뉴욕시 행정부가 발표한 최종 규칙은 2025년 적용될 라이더 최저임금(19.96달러)를 염두에 두고 계산한 세부 내역표를 위와 같이 제시하고 있다. (원문 자료를 한국 노동법 체계에 맞춰 번역한 것임)

기본 급여(Base Pay)는 말 그대로 '기본급' 역할을 하는 개념인데, 19.62달러라는 수치 역시 몇 년에 걸친 뉴욕시 택시리무진위원회(NYC Taxi-Limousine Committee)가 실시한 데이터 분석 결과에 입각해 있다. 앱 택시기사와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들의 수입, 건수는 물론이고 인플레이션 조정치까지 포함된 숫자이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이륜차 연료비와 수리비, 유지비 등의 제반 비용을 전기자전거(E-bike) 기준으로 시간당 평균치(2.26달러)를 계산해 더해준다. 아울러 노동안전을 위한 산재보험료 중 라이더가 부담해야 할 부분인 1.68달러도 보태준다. 이렇게 기본 급여와 산재보험 및 비용 부담분을 모두 합해주면 총 23.56달러가 된다.

23.56달러 × 0.8471 = 19.96달러

이제 마지막으로 멀티 앱핑 조정 계수인 0.8471을 곱해주면 이제 마지막 숫자인 19.96달러를 얻게 된다. 하고자 하는 이는 방법을 찾고, 회피하려는 이는 핑계를 찾는다고 했다. 배달 노동자에게 불가능해 보이던 최저임금 권리 보장, 뉴욕시가 행한 이 방법들을 따라간다면 한국에서도 시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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