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잡았던 11번가 · SSG는 왜 벼랑에 몰렸나 [분석+]

이지원 기자 2024. 5. 2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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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마켓분석
이커머스 1인자 꿈꾼 두 기업
11번가 · SSG닷컴 투자 유치 後
투자 요건 충족 못해 발목 잡혀
IPO 실패한 11번가 매각 위기
두차례 희망퇴직, 직원 불안 커져
SSG닷컴, IPO · GMV 두고 이견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
빅픽처 부재 경쟁력 제고 못해

이커머스 업체 '11번가'와 'SSG닷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두 기업 모두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내걸었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자의 지분을 다시 사들이는 '콜옵션'을 포기한 11번가는 회사를 통째로 매각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5~6년 전 투자 유치에 샴페인을 터뜨렸던 두 기업이 벼랑에 몰린 이유는 뭘까.

중국 플랫폼까지 한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국내 이커머스 1인자'가 되겠다며 대규모 투자 유치에 나섰던 이커머스 업체들이 부메랑을 맞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못하면서다. 대표적인 곳이 11번가(SK스퀘어)와 SSG닷컴(이마트)이다.

이들 업체 모두 '5년 내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투자를 유치했지만 실패하면서 투자금을 고스란히 내뱉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거액의 투자 유치와 함께 그렸던 이들의 장밋빛 청사진은 왜 부메랑으로 돌아온 걸까. 하나씩 살펴보자.

■ 11번가 현주소 = 11번가는 2018년 SK플래닛(SK스퀘어의 자회사)으로부터 독립해 신설법인으로 출범했다. 그해 국민연금·MG새마을금고 등으로 구성한 재무적투자자(FI) 나인홀딩스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원대(지분율 18.18 %) 투자도 유치했다.

"한국판 아마존이 되겠다"는 게 당시 11번가가 세운 야심찬 목표였다. 언급했듯 11번가는 투자자들에 5년 내 IPO 조건을 내걸었고, 그 기한은 지난해 9월까지였다. 2022년 8월엔 한국투자증권·골드만삭스를 상장주관사로 선정하는 등 IPO 작업에 착수했지만 2조~3조원대로 평가받았던 기업가치가 1조원 안팎으로 하락하면서 상장에 실패했다.

11번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나인홀딩스는 SK스퀘어가 보유한 11번가의 지분(80.3%)까지 묶어서 모두 매각하는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Drag Along)'을 행사할 방침이다. SK스퀘어는 나인홀딩스의 지분을 다시 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Call Op tion)'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11월 포기했다.

11번가가 사실상 경영권을 포기하자 나인홀딩스 주도로 매각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알리바바그룹·큐텐 등과의 매각 협의가 성사되지 않으면서 직원들의 처우가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11번가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에 걸쳐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지난해 1차 희망퇴직 실시 후 사측은 "추가 희망퇴직은 없다"고 못 박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 노조의 반발을 샀다. SK11번가노조는 13일 서울 SKT타워 앞에서 "(SK그룹은) 11번가 지분을 인수해 책임경영을 이행하고, 고용안정을 보장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SK11번가 노조와 SK스퀘어 측이 추가적인 희망퇴직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지만 11번가 매각 권한은 나인홀딩스가 쥐고 있는 만큼 직원들의 불안한 처우는 지속할 수밖에 없다.

11번가가 콜옵션을 포기하면서 FI 측은 11번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SSG닷컴 현주소 = SSG닷컴이 처한 상황도 녹록지 않다. SSG닷컴은 2019년 신세계와 이마트의 이커머스 사업 부문을 통합해 설립했다. 2019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1조원대 투자금을 유치했다.[※참고: 사모펀드 어피너티프라이빗에쿼티·BRV캐피탈 등은 7000억원·30 00억원 등 총 1조원을 투자해 SSG닷컴의 지분 30.0%를 인수했다.]

거액의 투자금을 끌어온 SSG닷컴은 "2023년까지 매출액 10조원을 달성한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었다. 하지만 SSG닷컴의 지난해 매출액은 목표치의 10분의 1 수준인 1조6784억원에 그쳤다.

문제는 당시 SSG닷컴이 투자자들에게 내걸었던 요건이 분쟁 요소로 작용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SSG닷컴은 2023년까지 총거래액(GMV) 5조1600억원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복수의 투자은행(IB)으로부터 IPO가 가능하다는 의견서를 받지 못할 경우 FI가 지분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Put Option)'을 부여했다.

FI가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지난 1일(2027년 4월 31일까지) 시작했다. 신세계그룹 측은 "2023년 GMV는 약속했던 요건을 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참고: SSG닷컴은 2022년 GMV 5조9555억원을 달성한 바 있다.] FI 측은 "GMV에 상품권 관련 매출액이 이중으로 들어가 (GMV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상품권을 판매했을 때와 소비자가 상품권을 사용했을 때의 매출액이 이중으로 인식돼 GMV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거다.

IPO 요건을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SSG닷컴 측은 상장주관사 선정을 마친 만큼 IPO 요건을 충족했다는 입장이지만, FI 측은 상장주관사가 제출한 '제안서'가 아닌 '의견서'를 받아야 한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FI의 풋옵션이 인정되면 SSG닷컴은 투자금 1조원을 돌려줘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11번가처럼 FI가 드래그얼롱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 기업은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하고도 왜 이런 결과를 맞은 걸까.

■ 빅픽처의 부재 = 전문가들은 유동성이 풍부하던 시기 IPO만 보고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게 패착이라고 지적한다. 같은 시기 쿠팡은 유료 멤버십 '와우'를 론칭(2019년)하는 등 소비자를 락인(Lock-in)해 갔지만 두 업체는 소비자를 잡을 만한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거다.

일례로 11번가는 2021년 미국 이커머스 공룡 '아마존'과 손잡고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론칭했다. 늘어나는 미국 직구족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쿠팡·G마켓 등 다른 플랫폼의 직구 서비스와 비교해 이렇다 할 강점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존재감이 약해졌다.

2022년 6월엔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배송해주는 쿠팡의 '로켓배송'과 같은 방식의 '슈팅배송'을 선보였지만 한발 늦었단 평가만 받았다. 결국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액 8654억원을 달성한 11번가는 역설적으로 1258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내면서 회사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SSG닷컴은 2023년 매출액 10조원을 목표로 내걸었다.[사진=뉴시스]

SSG닷컴도 마찬가지다. SSG닷컴은 이마트가 2021년 3조원을 투자해 인수한 이베이코리아와 시너지를 꾀했지만 유기적인 화합을 이루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이듬해 이베이코리아와 함께 론칭한 '스마일클럽'도 인기를 끌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6월 내놓은 신세계 계열사 통합 멤버십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마저 "차별점이 없다"는 냉혹한 평가만 받았다. 그러는 사이 SSG닷컴은 당초 세웠던 '2023년 매출액 10조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지난해엔 1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더 큰 문제는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중국 플랫폼까지 한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투자금을 활용해 강점이 있는 하나의 카테고리를 키우거나 'PB(Private Brand)'를 육성하는 등 자신들만의 강점을 키워야 했다"면서 "중국 플랫폼까지 한국 시장을 파고들면서 앞으로 상황이 더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통 컨설팅 전문업체 김앤커머스의 김영호 대표는 이렇게 지적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달리 시시때때로 소비자가 플랫폼을 옮겨 다닐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하지만 이런 업業의 본질을 잃은 건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중국 플랫폼 역시 수년 전부터 미국 시장에서 세를 불리고 있었던 만큼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11번가와 SSG닷컴의 입지는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지원 더스쿠프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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