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계약직 라디오 PD, 세월호 방송 후 '갱신 불가' 통보

노지민 기자 2024. 5. 2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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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 기간 맞춰 대체자 계약 갱신해온 KBS, 이례적 계약 만료
사측 "계약 만료 되었기 때문에 통보한 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냐"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KBS 1라디오 '열린토론' 홈페이지

KBS '다큐인사이트'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집 불방으로 제작 자율성 침해 문제가 불거질 무렵 KBS 라디오제작국에서도 세월호 방송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이 교체될 예정인 가운데 계약직 PD의 계약 갱신이 이례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KBS 라디오제작국의 윤아무개 부장(CP)은 지난달 15일로 예정된 1라디오 '열린토론'의 세월호 참사 관련 녹음을 앞두고 출연진을 문제 삼았다. 참사 당사자인 세월호 유가족, 시민단체 활동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 참여했던 변호사(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세월호참사대응TF팀장) 등 출연을 두고 일방적이라는 취지의 지적을 했다는 것이다.

'열린토론' 제작진은 방송 무산을 막고자 담당 부장을 넘어 국장 등을 찾아 설득에 나섰고, 세월호 참사를 '안전' 관점에서 이야기할 출연자를 추가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였던 16일 '열린토론'은 <세월호 참사 10주년, 지난 10년의 기억과 안전> 주제로 진행됐다. 배종찬 진행자는 이날 “우리 사회에 '안전'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큰 상처를 남겼던 세월호 참사. 오늘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진단해보는 시간을 준비해봤다”는 말로 방송을 열었다.

이후 '열린토론' 제작진으로 일해온 계약직 라디오 PD A씨는 계약 갱신을 기다리던 중 계약 만료를 통보 받았다. 이 프로그램의 메인 PD는 KBS에 시사 전문 PD로 입사했지만 내달부터 제작 현장을 떠나 편성 업무를 맡는다.

▲KBS 채용 홈페이지의 라디오 PD 소개 이미지

A씨는 지난해 7월3일부터 올해 6월2일 육아휴직한 PD의 대체인력이다. 그러다 지난달 육아휴직한 PD가 휴직기간을 연장한다며 계약 연장 의사를 묻는 팀장에게 연장 의사를 밝혔지만, 같은 달 29일 회사로부터 이메일로 계약 만료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A씨는 “팀장은 연장하는 경우 한 달 전에 계약을 갱신하게 될 거라 했고 저도 알겠다고 답했다”며 “4월11일 팀장은 카카오톡으로 육아휴직 간 PD가 내년 3월28일까지 연장하기로 확정했다고 카톡을 보냈고 계약 연장이 확정이라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KBS 내부에서 휴직한 PD와 자신이 “운명 공동체”라는 말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지난 3일 계약 갱신이 되지 않는 이유를 물으러 찾아간 A씨에게 윤 부장은 “다른 분들한테도 기회를 주고 싶은 게 첫 번째 (이유)”라며 “(A씨가) 생계가 힘들다든지, 미리 면담을 통해 연장 근무를 하고 싶다는 공식적인 제안을 하지도 않은 상태”라고 했다. A씨가 계약 연장은 팀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얘기를 들었고 부장을 찾아가 계약 연장을 요구하는 것이 선을 넘는 행위로 여겨졌다고 하자 윤 부장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건 제 실책임을 인정하겠다”면서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이튿날 출근한 A씨가 섭외 전화 등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윤 부장은 사무실에서 A씨가 언제 출근했느냐며, 팀장에게 앞으로 A씨의 출퇴근 시간 등 근태를 보고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전해진다. A씨는 “부장과 팀장은 제가 해고 통보 메일을 받은 날 반차 쓰고 일찍 간 것도 '근무지 이탈'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입장이다.

A씨의 계약이 갱신되지 않은 건 그간 KBS 관행에 비춰봐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복수의 KBS 구성원들은 육아휴직자의 휴직 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지거나 짧아지면 대체인력 계약 기간도 그에 연동되어왔다면서 A씨 같은 사례는 본 적이 없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박상희 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A씨로서는 계약 기간 종료에도 불구하고 계약이 갱신되거나 연장될 것이라는 기대권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판례에서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계약이 갱신되는 규정이 있거나,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계약이 갱신될 거라는 신뢰관계가 형성되는 경우 근로자의 기대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 기대권이 인정되고 계약을 종료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면 부당해고로서 다툴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지적했다.

윤 부장이 다른 직원들 앞에서 A씨에 대한 근태 관리 강화를 지시한 것은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고 봤다. 박 노무사는 “직장내괴롭힘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라며 “담당 관리자에게만 언질을 했으면 몰라도 모든 근로자들이 듣는 자리에서 큰소리로 소리치면서 말을 했다면 업무상 적정 범위를 초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 영등포구 KBS 사옥. 사진=KBS

윤 부장은 A씨 관련 대처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4일 통화에서 그는 “계약 만료가 되었기 때문에 계약 만료를 통보한 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반문했다. 팀장이 A씨에게 계약 갱신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 사람이 결정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권한은 저한테 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관련 '열린토론' 방송에 대해선 “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후 문자 메시지를 통해 출연진 구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은 추가 질문에는 답변이 오지 않았다.

A씨는 KBS에서 '기간제 대체인력'으로 일하는 동안 '주진우 라이브' '배종찬의 시사본부' '열린토론' 제작에 참여하며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패널·제작진 하차, 폐지 사태 등을 겪었다. 지난해 12월 '시사본부' 일부 패널을 하차시키라는 간부 지시에 반발한 PD가 다른 부서로 옮겨진 시기에는 홀로 프로그램을 떠맡았고, 항의하는 출연자에게 하차 이유를 설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이후 아이템·출연자 문제로 일부 간부와 부딪히는 한편, 일부 임원으로부터 본인이 누군가를 취직시켜준 적이 있다거나 A씨가 추후 경력직으로 KBS에 입사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취지의 회유성 발언도 들었다고 했다.

KBS는 이미 지난 14일 A씨 대신 대체인력으로 일할 계약직 PD를 뽑는다고 공고했고, 일정대로라면 A씨 계약만료일(6월2일) 이전인 29일 최종 합격자가 정식 채용된다. 여러 부담 속에서도 이번 취재에 응한 이유를 묻자 A씨는 “너무나 명백하게 문제되는 사안들이 많다”라며 “세월호 (방송) 이후에 (제작진) 날린 걸 다 아는데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노조에서도 가만히 있고, 직장내괴롭힘 같은 행위를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제가 나서서라도 알려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올해 KBS 시사교양국에선 총선 8일 뒤로 예정됐던 '다큐인사이트'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등 이유로 무산시키고, 이를 대형 재난 피해자들 PTSD 기획으로 만들라는 지시가 이뤄졌다. KBS 통합뉴스룸(보도국) '뉴스9'의 세월호 참사 보도는 타 지상파 방송사 대비 소극적이었고 '안전 불감증'을 부각해 사회적 참사에 대한 정부·사회의 책임을 가렸다고 평가 받은 바 있다.

본지 보도 후 KBS는 27일 “세월호 방송 때문에 제작진이 교체됐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KBS '열린토론'의 세월호 관련 방송은 제작진과 관리자의 통상적인 협의와 소통 과정을 거쳐 정상적으로 방송되었다”고 했다. '열린토론' 담당 PD 인사 이동은 “해당 PD와 협의 후 결정된 내용”이고, “계약 종료일을 앞두고 A씨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한 것일 뿐 '명백하게 문제되는 사안'을 행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기사 일부 수정: 5월27일 19시05분 / 최초 보도 이후 KBS가 보내온 입장 일부를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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