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신호위반 맞습니다" 불법이라면서 단속은 안 하는 경찰의 속사정 [스프]

박세용 기자 2024. 5. 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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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스프링]


대법원 판결이 논란에 불을 붙였습니다. 한 운전자가 정지선 직전 들어온 황색등에서 교차로에 그대로 진입했습니다. 하필 교차로 좌측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 2대는 도로 구조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량은 오토바이와 그대로 충돌했습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에게 대법원은 1, 2심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판결했습니다. 앞선 1, 2심에서는 운전자가 사고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무죄가 선고된 바 있습니다.
 

무슨 상황인데?

대법원의 판결은, 설령 정지선 직전에 황색등이 들어왔다고 해도, 또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제동 거리 때문에 정지선 전에 멈출 수 없을 것 같다고 해도, 운전자가 교차로 직전에라도 어쨌든 멈췄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입니다. 정지선을 지나, 횡단보도를 지나, 그다음 교차로가 나오는데, 그 교차로 전에는 멈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판결 내용이 보도되자 많은 운전자들이 현실을 모르는 판결이라며 비판했습니다.

많은 운전자들의 얘기처럼, 황색등에서 교차로에 진입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녹색등에서 황색등으로 대체 언제 바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교차로 횡단보도에 설치된 카운트다운 숫자를 보면 '곧 황색등으로 바뀌겠구나' 짐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교차로도 많습니다. 때문에 일부 운전자들은 교차로 진입 전부터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좀 더 조심스럽게 운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전운전을 해도 이른바 '딜레마존'(속도를 줄여 정지선 전에 멈춰야 할지, 그냥 지나가야 할지 운전자가 판단하기 힘든 구간)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교차로에 다가가도, 규정 속도를 준수하면서 교차로에 다가가도, 정지선 코앞에서 들어오는 황색등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차량이 수두룩합니다.
 

 
대법원 판결대로 교차로 전에서 어떻게든 멈추겠다고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차량이 교차로 중간에 서거나, 뒤따라오던 차량과 추돌 사고 우려가 높아진다는 것을 많은 운전자들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멈추자니 위험하고, 가자니 신호 위반이 되는 딜레마 구간입니다.

특히 버스기사들의 경우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높습니다. 차량이 무거울수록 대개 제동 거리가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승객을 태우고 달리는 버스가, 교차로 직전 황색등에서 급제동을 하는 것은 무척 위험합니다. 기사들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승객들 다 넘어져서 위험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버스뿐만 아니라 제동 거리가 긴 대형 차량의 경우에도 교차로 중간에 설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승용차도 교차로 직전 황색등에 급제동했다가 뒤에서 오던 차량이 들이받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법을 지키려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셈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는 황색등의 정의가 이렇게 돼 있습니다.
 
"차마는 정지선이 있거나 횡단보도가 있을 때는 그 직전이나 교차로 직전에 정지해야 하며, 이미 교차로에 차마의 일부라도 진입한 경우에는 신속히 교차로 밖으로 진행해야 한다."
 
 

45년 전인 1979년에 규정된 황색등의 뜻은 큰 틀에서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황색등이 들어온 그 순간! 차량 위치가 교차로에 진입한 상태가 아니라면, 정지선이나 횡단보도를 지났더라도 반드시 교차로 직전에는 멈춰야 합니다. 대법원이 "교차로 직전에 정지하지 않았다면 신호 위반"이라고 판단한 법적 근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실 대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황색등에서 교차로에 진입한 차량의 운전자에게 신호 위반이 인정됐습니다. 1, 2심에서는 불가피성을 인정한 무죄 판결이 종종 나오지만, 대법원은 현행 황색등 규정에 따라 일관된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황색등 규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합니다. 취재진의 질의에 경찰청은 "국제적인 기준인 비엔나 협약에 따라 황색등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경찰이 언급한 '비엔나 협약'은 도로 신호에 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입니다. 많은 국가가 비엔나 협약에 가입했거나 그 협약을 준용해 도로 신호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비엔나 협약에 가입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 협약을 준용하고 있기 때문에 황색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경찰청 입장입니다. 비엔나 협약에는 황색등이 어떻게 규정되어 있을까요?
 

한 걸음 더

비엔나 협약에는 황색등에서 "신호등 혹은 정지선 앞에서 멈추지 못할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차량도 신호등이나 정지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즉, 황색등에서 멈추는 것이 기본이지만, '예외 규정'을 둔 것입니다. 차량이 정지선 바로 앞의 '딜레마존'에 있을 때입니다. 그럴 때는 교차로를 그대로 통과하는 것이 옳다는 게 경찰이 언급한 비엔나 협약의 내용입니다. 협약에 따라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등 유럽연합 회원국 상당수도 그렇고, 미국과 영국, 일본, 호주까지 황색등에서 교차로를 합법적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경찰 주장과 달리 우리나라의 황색등은 비엔나 협약의 그것과 다릅니다. 도로교통법에는 "차량이 정지선에 매우 가까운 경우" 운전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지선 코앞에서 황색등이 들어왔을 때라도 교차로에 진입하면 법적으로 신호 위반입니다. 도로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만연한 불법 행위인 셈입니다.

그럼 경찰이 단속을 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경찰청은 전국 도로에 설치된 신호 위반 단속카메라를 그렇게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경찰은 황색등 진입은 그냥 두고, 적색등 진입부터만 단속하고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박세용 기자 psy05@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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