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쥐가 뒤주를 뚫듯..도자기를 굽는 내 친구 'K'

홍우표 2024. 5. 2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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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등학교 때 절친 K의 별명은 '읍티즌'입니다.

그러다 한동안 서로 기별이 없었는 데 우연히 다른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K의 근황이 궁금해서 물어 봤더니 '도자기 빚는 기량이 일취월장했다'는 것입니다.

중년에 다다를 때까지 '늙은 쥐가 뒤주를 뚫듯'(경봉스님 일화집에서 발췌..늙은 쥐도 뒤주 안의 쌀을 먹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치열하게 구멍을 뚫는다는 의미로 구도자의 삶을 비유) 도자기 빚기에 집중한 K의 답변에 내공과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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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뉴스다">

내 고등학교 때 절친 K의 별명은 '읍티즌'입니다.

줄여 '읍티'라고도 부릅니다.

청주시가 아닌 00읍에 살아서 '시티즌'이 아닌 '읍티즌'이라 놀렸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호인인 데다 아주 자유분방한 친구였습니다.

셔츠 앞 왼쪽 상단 주머니 아래에 구멍을 뚫고는 거기에 포크 하나만 넣고 등교해서 친구들의 도시락을 십시일반하 듯 돌아다니며 먹고는 했는데 전혀 얄밉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K는 미술반이었습니다.

그림 실력이 아주 뛰어났는데 정작 대학에 진학해서는 도자공예를 전공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예가의 길을 걷겠다고 고향에서 막 도자기를 굽던 30대 초반 시절 그 녀석의 공방을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차를 즐겨 마실 때였는 데 만들어 놓은 다기를 보고는 '잔소리'를 끓여 부었던 기억이 납니다.

“야, 태토(도자기 최초 원료인 흙)에 너무 철분이 많아서 색깔이 예쁘지 않잖아?”

"야, 너무 절수(다관 주둥아리의 물 끊김)가 안 되고 투박하잖아?"

내심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그 녀석은 넉넉한 웃음을 짓고는 일부는 '고치겠다' 수긍하고 일부는 '자기가 맞다며'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때 얻어온 도자기 하나는 여전히 우리 집 장식장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주 투박한 모습으로..

이후 가끔씩 연락이 닿다가 끊어지기도 하고 또 다시 연락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다 한동안 서로 기별이 없었는 데 우연히 다른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K의 근황이 궁금해서 물어 봤더니 '도자기 빚는 기량이 일취월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서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통화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며칠후 K에게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너 요즘도 차 마시냐?"

"당연하지"

그러더니 주소를 묻고는 '다관과 잔 몇 개를 보낸다' 했습니다.

그 녀석의 도자기 빚는 실력이 과거 기억에 머물러 있던 저로서는 사실 별 기대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다관을 봤더니 '괄목상대'가 따로 없었습니다.

과거 그냥 무식했던 투박은 아주 정제된 '투박미'로 변해 있었습니다.

다관 손잡이는 나무로 달아 놨는데 창의성이 느껴졌습니다.

실제 차를 우려먹어 봤더니 다관의 핵심 기능인 '절수' 또한 잘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K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네가 흙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지에 다다랐구나. 절수도 잘되고 내 최애 다관으로 삼고 쓸게."

"ㅋㅋ 합격 시켜줘서 고맙다."

과거 당시 자기가 만들었던 도자기에 대한 제 속사포 같았던 잔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년에 다다를 때까지 ‘늙은 쥐가 뒤주를 뚫듯’(경봉스님 일화집에서 발췌..늙은 쥐도 뒤주 안의 쌀을 먹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치열하게 구멍을 뚫는다는 의미로 구도자의 삶을 비유) 도자기 빚기에 집중한 K의 답변에 내공과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어느 분야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희생이 불가피합니다.

K는 그 좋아하던 술도 딱 끊었고 친구 만나는 것도 최소화했습니다.

그래서 K가 저한테 보내온 다관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 이유입니다.

‘읍티’의 예술혼과 우정에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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