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은 1973년에 멈춰있어”…52년째 세살인 아들, 가슴에도 못 묻었다

지혜진 기자(ji.hyejin@mk.co.kr) 2024. 5. 27.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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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실종 신고 年 2만5628건
1044명 20년째 돌아오지않아
실종아동 가족들, 일손 놓고
슬픔에 파탄 지경에 놓이기도
1973년 3월 18일 서대문구 대현동에서 아들 이정훈 씨(3)를 잃어버린 전길자 씨(78)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실종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10분만 나가서 놀고 오겠다는 아이를 52년째 못 보고 있어요. 아직도 눈물이 마르질 않습니다.”

실종아동의 날(5월25일)을 앞두고 만난 전길자 씨(78)는 1973년 3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서 아들 이정훈 씨(당시 3세)를 잃어버렸다. 이후 그날에 대한 기억이 한시도 머릿속에서 떠나간 적이 없다고 한다. 생전 안 하던 손짓을 하며 10분만 나가 놀겠다던 아들은 둘째에게 젖을 먹이고 나온 사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날 정훈이가 약속이 있다고 나가던 아빠를 따라가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했더라면 잃어버리지는 않았겠지’, ‘어릴 적 기찻길에서 죽을뻔하다 간신히 살았는데 차라리 그때 죽었으면 가슴에라도 묻었을 텐데.’ 전씨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살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전씨의 시간은 아들을 잃은 1973년에 멈춰있었다.

매년 전국의 보호소를 돌며 수소문을 하고, 신문 방송에도 가리지 않고 출연해 사연을 알렸지만, 아직 아들을 찾지 못했다. 아들과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며 연락이 와 유전자 검사를 할 때마다 긴장감에 피가 마른다. 전씨는 “장기실종아동이라 얼마 전 사건이 서울경찰청으로 이관됐다. 내가 죽기 전에 생사 여부라도 알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해마다 2만여 건의 아동실종 신고가 들어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만 18세 미만 아동 실종 접수 건수는 2만5628건에 이른다. 1년 이상 찾지 못한 장기실종 건수는 2023년 기준 1336명인데, 이중 78.2%에 해당하는 1044명은 20년 이상 장기실종 건이다. 시기별로 2019년 3명, 2020년 5명, 2021년 3명, 2022년 12명의 아이들이 장기 실종 아동으로 분류돼 아직 부모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아동 실종은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언제든 벼락같이 닥칠 수 있는 사고다. 하루 아침에 아이를 잃은 집은 그 충격에 가족해체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이가 없어지면 상당수 부모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국을 떠돌며 아이를 찾아 헤맨다. 일상이 무너지고 불화 속에서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른다.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 중에서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민간영역에서 자발적으로 벌이는 캠페인이 장기실종아동을 찾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21년 연세대 재학생 5명이 모여 만든 사회혁신팀 ‘파동’은 실종아동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활동을 진행해 오고 있다. 실종아동 정보가 담긴 카드뉴스를 제작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업로드하고 있고, 그림 작가와 협업해 실종아동의 이야기가 담긴 릴스, 쇼츠, 인스타 웹툰 등을 배포하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정다희 씨(22)는 “실종아동 가족이 겪는 심리적·경제적 어려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림작가 접시(활동명) 씨는 올해 1월 ‘파동’ 팀의 의뢰를 받고 장기실종아동 조수민 씨(16)의 사연을 웹툰으로 그려 온라인에 올렸다. 인터넷에는 실종아동에 대한 여러 정보가 올라오지만 눈여겨 보는 사람은 드물다. 스토리텔링으로 주목도를 높인 웹툰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BGF리테일은 CU편의점에서 실종아동을 임시 보호하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보호자에게 돌려보내는 ‘아이 CU’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2020년부터 ‘아이 CU’ 캠페인에 동참해 4명의 실종아동을 귀가시킨 백우현 점주(48)는 “2021년 1월 추운 겨울날 내복 차림의 지적장애 아동을 임시 보호하다 보호자에게 돌려보낸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실종아동을 한명이라도 더 찾아내려면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마음과 실종아동 정보에 눈길을 주는 습관이 이에 해당한다.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장기미제사건 전담 수사팀이 있는 것처럼 장기실종 전담 수사팀이 구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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