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모호한 독도 정책

김창수 2024. 5. 27.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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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실수’를 반복하는 사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일본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분쟁지역화에 성공하면 다음 단계로 군사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2023년 3월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도쿄의 노포에서 만났다. ⓒ연합뉴스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이고, 우리가 실효 지배하고 있다. 역대 정부는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런 의지가 시나브로 약해지고 있다는 오해를 살 만한 장면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행정안전부가 그러했다. 5월10일자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민방위 교육 영상에서 독도를 일본 영해로 표기한 영상을 사용했다. 행정안전부는 보도 이후 즉시 해당 자료를 교체했다고 밝혔다.

시간을 지난해로 돌려보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23년 3월16~17일 한·일 정상회담을 했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일본이 2022년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국가안보 전략에 명시한 것을 두고 “충분히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적 기지 공격 능력’이란 일본이 유사시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전력이다. 한국 동의 없이 일본이 한반도를 향해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국가원수가 동의해준 것이다. 이 국가안보 전략 문서에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이며, 일본은 독도 영유권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영토 수호에는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대통령의 책무에 비춰볼 때 오해를 살 만했다.

결국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 독도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는지를 두고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 언론은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독도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입장을 전달했다’라고 보도했다. 일본 관방장관도 한·일 정상회담에서 “독도 문제가 포함됐고 위안부 합의에 대해 착실한 이행을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한·일 정상회담에서 독도 얘기는 없었다”라며 일본 언론 보도를 반박했다.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도 2023년 3월18일 KBS 〈뉴스9〉에 출연해 “독도라든지 위안부 문제는 의제로서 논의된 바 없다”라고 말했다. 당시 KBS 앵커가 “의제로 논의된 바 없다는 건 기시다 총리가 말을 꺼냈다고 받아들여도 되느냐”라고 묻자, 박 장관은 “정상회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시민단체가 이와 관련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정상회담에서 나온 발언은 기밀로 묶여 있다. 진실을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모호한 태도는 정부 부처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2월 국방부는 장병 대상 정훈 교재인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를 발간해 전군에 배포했다. 국방부가 발간한 기본교재에는 “한반도 주변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여러 강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해외로 투사하거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기술되었다. 독도를 우리 영토가 아닌 분쟁지역이라고 기술한 것이다.

일본 〈방위백서〉가 드러낸 ‘독도 구상’

2월2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 대사관 앞에서 ‘다케시마의 날’ 행사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이 교재는 이종섭 당시 장관과 신원식 후임 장관 등 국방부 장관 두 명이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식 장관은 “발간 최종 결심은 제가 했다” “꼼꼼히 살폈어야 하는데 마지막 발간 때 살피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신원식 장관은 국회의원 신분이던 2023년 3월 SNS에 “한·일 간에 과거사, 독도 영유권 분쟁이 있는 건 사실이다”라고 적기도 했다. 기본 교재의 독도 분쟁지역 기술과 신원식 장관의 SNS 글이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이런 우연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외교부가 지난 2월 해외 안전 여행 사이트에 독도를 ‘재외 대한민국 공관’으로 표시한 일이 있다. 독도가 한국 영토가 아니라는 표시였다. 외교부는 단순 실수라고 해명하고 바로 시정했다.

한국 정부가 ‘실수’를 반복하는 사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일본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독도, 센카쿠열도 등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대외 활동을 강화하고 예산도 늘렸다. 일본은 독도 분쟁지역화에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하면, 다음 단계로 군사적 이슈를 들고나올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군사전문가들은 독도에서 군사 위기가 발생할 상황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위대 독도 상륙 계획에 대비한 한국군 독자 방위 계획 등도 논의했다.

독도 인근에서 일본의 군사 활동이 한국 정부 협조를 통해 이뤄지기도 했다. 2022년 9월 독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잠수함 도발 대응 차원에서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일본 식민지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를 단 해상자위대 전함이 독도 인근 해상에 등장했다. 2022년 10월에도 독도 인근 해상에서 자위대가 참가하는 한·미·일 합동 미사일 방어 훈련이 열렸다. 독도 인근에서 자위대와 함께 군사훈련을 하느냐며 국내 여론이 들끓었다.

2023년 2월22일에는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가 시마네현에서 열렸다. 기시다 내각 차관급인 내각부 정무관이 이 행사에 참석했다. ‘다케시마의 날’에도 독도 인근 해상에서 자위대가 참가한 한·미·일 군사훈련이 실시되었다. 합동참모본부는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독도에서 먼 거리의 공해상에서 미사일 방어 훈련을 했다고 밝혔다. 사실은 2022년 10월 실시된 한·미·일 군사훈련과 같은 장소였다. 독도 인근 해상에서,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기념하는 날에, 자위대와 함께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해마다 발간하는 〈방위백서〉에 독도를 자국의 고유영토라고 명시해왔다. 독도 상공을 외부에서 침범할 경우 자위대가 대응할 수 있도록 일본 자위대법에 근거도 마련했다. 이에 따라 독도 상공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일본 정부는 항공자위대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킨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2019년 펴낸 〈방위백서〉에 이런 구상을 시사했다.

일본 의도는 분명하다. 독도 영유권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겠다는 것이다. 분쟁지역화에 성공하면 다음 단계로 독도 인근에서 군사행동을 벌일 것이다. 〈방위백서〉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은 이러한 구상을 차근차근 현실화하고 있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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