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DS, ‘라인 사태’ 해결 위한 숨은 무기일까

김동인 기자 2024. 5. 27.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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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라인 사태’가 개별 기업 사안임을 강조한다. 정부 차원에서 쓸 수 있는 다양한 협상 카드가 있음에도 수동적으로 대처한다.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2012년 5월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중·일 투자보장협정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네이버 라인야후 지분 강제 매각 압박 사건’, 이른바 ‘라인 사태’가 일시적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5월14일 대통령실은 “7월1일까지 일본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행정지도에 따른 조치 보고서’에 지분 매각이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라고 발표했다. 네이버의 상황을 대통령실이 대신 전달한 셈이다.

네이버는 뚜렷한 계획이나 입장을 대외적으로 표명하지 않고 않다. 5월10일 ‘지분 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프트뱅크와 성실히 협의해나가고 있다’며 협상 사실을 인정했을 뿐이다. 5월14일 대통령실 발표를 바탕으로 현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소프트뱅크도, 네이버도 지분 관련해 협상 중인 것은 사실이다.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에 대한 답변을 7월1일까지 보내야 하는데, 그 전까지 지분 매각 협상이 완료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일단 지분 매각 내용은 제외하고 보고서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 협상 과정에서 네이버가 가진 라인야후 지분에 대한 적절한 가치 평가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소프트뱅크 측도 5월9일 “협상이 길어질 수 있다”라고 인정한 바 있다(〈시사IN〉 제870호 ‘잘 키운 ’라인‘ 넋 놓고 빼앗기나’ 기사 참조).

이번 대통령실의 발표는 이례적이다. 종전 대응과는 온도차가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앞으로 정부는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어떠한 차별적 조치나 부당한 대우도 받지 않도록 면밀하고 강력하게 대응해나갈 것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정부가 이번 사태에 미온적이라는 비판 여론이 강해지자 뒤늦게 나온 메시지다. 그러나 이날 언급한 ‘면밀하고 강력한 대응’에도 ‘네이버의 입장’ ‘네이버의 요청’이라는 전제조건은 여전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네이버의 입장을 존중해 정부 대응에 반영해왔고, 네이버의 추가적인 입장이 있다면 정부 차원에서 모든 지원을 다 하겠다.”

정부는 라인 사태가 개별 기업의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시사IN〉 취재 결과, 정부 차원에서 꺼낼 수 있는 다양한 협상 카드가 2002년에 체결한 ‘한·일 투자협정(BIT)’과 2012년에 체결한 ‘한·중·일 투자협정’에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여야 정치권에서는 ‘네이버가 일본 정부에 직접 소를 제기(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런데 앞선 두 차례 투자협정에 따르면, 네이버 대신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직접 소를 제기하는 방식, 즉 SSDS 카드를 꺼내드는 것도 가능하다.

SSDS란 ‘국가 대 국가 분쟁해결절차(State-State Dispute Settlement)’를 의미한다. ‘론스타·엘리엇 대 한국 정부’의 분쟁으로 잘 알려진 ISDS와 달리, 투자협정(BIT)을 체결한 국가가 협정 상대방 국가에 소를 제기해 분쟁을 해결할 수도 있다. 개별 투자자(기업) 대신 정부가 소의 주체로 나서는 식이다. 이미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구체적으로 SSDS가 가능하다는 협정 내용이 존재한다.

2002년 체결한 한·일 투자협정서 제14조가 대표적이다. 이 협정문 제14조 2항에는 ‘체약당사국 간의 분쟁이 협의를 통하여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일방체약당사국의 서면요청에 의하여 (중략) 구속력 있는 결정을 위하여 중재판정부에 회부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 정부가 선제 대응 자제하는 이유

협정 내용에 SSDS가 포함되어 있지만, 정부의 메시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SSDS에 대한 언급은 잘 나오지 않는다. ISDS에 비해 SSDS가 상대적으로 낯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상 분야 전문가인 노주희 변호사(법무법인 수륜아시아)는 “각 국가들이 (SSDS를 동원하는 것에) 다소 소극적이다. 그래서 개별 기업으로서는 실질적 해결 방법으로 ISDS를 우선 고려하게 된다. ISDS와 SSDS가 함께 동원되지는 않는다. 국가 입장에서 SSDS는 (제소라는) 절차를 동원하는 방법이다 보니 ‘최후의 수단’에 가깝다. 그 전에 외교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느냐가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라인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 강남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시사IN 신선영

SSDS 외에도 ‘합동위원회(Joint Committee)’를 통한 교섭 역시 고려해볼 만한 카드다. 한·일 투자협정 제20조에는 연 1회 합동위원회를 개최하고 협정과 관련되는 투자 관련 사항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특히 정해진 횟수 외에도 한쪽 당사국의 요청에 따라 개최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합동위원회를 개최해 네이버 지분 매각 압박 문제를 공식 논의 테이블로 끌고 올 수 있다. 이처럼 이미 협약에 존재하는 카드가 있음에도 통상·외교 당국에서는 아직 이런 카드의 ‘가능성’조차 언급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이런 협상 카드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SSDS의 선례가 부족하다는 점도 한계이긴 하다. 한 국책연구기관 국제통상 분야 전문가는 “보통 SSDS는 투자협정서에 명시되지만, 실제로 SSDS가 발동되어 소를 제기한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국가 간 제소는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1996년 미·일 양국 간의 ‘필름 전쟁’이 대표적이다. 미국 코닥(Kodak) 사가 일본 필름 시장에서 후지필름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는다며 WTO에 소를 제기한 적이 있는데, 당시 WTO는 일본 정부와 후지필름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여러 협상 카드를 고려하고 있다는 ‘시그널(신호)’은 중요하다. 지금처럼 정부가 ‘네이버 결정만 기다린다’는 입장만 반복할 경우, 최종적으로 문제 해결의 책임이 개별 기업인 네이버에만 쏠리게 된다. 데이터 보안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고 데이터의 보관 위치를 조정하는 것은 네이버와 라인야후가 보완해야 할 사항이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네이버의 의사에 반하는 지분 매각 압박이 제기된 점에 관해선 외교 채널을 통한 중재와 보호가 필요하다. 일본 총무성 행정지도 문건에는 “위탁처로부터 자본 지배를 받고 있는 관계의 개선을 포함”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여전히 한국 정부는 ‘지분 매각이라는 단어가 문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며 선제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책임이 네이버에만 쏠릴 경우, 일본(국가)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일 역시 네이버만의 책임이 된다. 그러나 일본은 개별 기업이 ISDS로 제소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나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기업들이 소를 제기하려다 포기한 사례도 있다. 앞서 소개한 국제통상 전문가는 “일본은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을 문서로 남기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네이버의 경우에도 일본의 ‘행정지도’를 네이버에 손해를 끼치는 ‘(국가의) 조치’로 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개별 기업이 큰돈을 들여 국제 중재 기구로 향하기에 앞서, 국가가 외교적 노력에 적극 나서줄 것이 요구된다. 정부 당국자의 모든 정무적 발언은 외교적인 메시지가 된다. 지금 국내 여론이 해석하는 우리 정부의 메시지에는, 사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대안이 빠져 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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