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에서 존재로’ 21대 국회 ‘소신파’ 장혜영이 돌아본 4년 [소신파들이 되돌아본 21대 국회]

김나현 2024. 5. 2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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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기 바라는 방식은 민주주의 아냐
위성정당 참여한 분들 반드시 반성을
약자 공격하는 방식에 맞설 각오 필요
정의당, 지역에서 관계 맺으며 도약"

“가장 취약한 사람의 관점에서 필요한 말과 행동을 하자는 것”

거대 양당의 틈 사이에서 제3당의 길을 굳건히 지켜온 정의당 장혜영 의원(원내대표 직무대행)이 ‘소신의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 마련된 ‘10대 입법 과제’ 실현을 위한 천막 농성장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장 의원은 지난 4년간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은 대표적 ‘소신파’ 의원으로 꼽힌다.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촉구하며 삭발을 감행했고, 양당(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이 사이좋게 종합부동산세 기준을 완화하자 ‘부자 감세’라며 일갈했다. ‘페미니스트’가 낙인이 된 국회에서 그가 택한 자기소개 첫 마디는 “페미니스트 국회의원 장혜영입니다”였다.

장 의원은 21대 국회를 돌아보며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똑같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변질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거대 양당이 주도한 위성정당 사태로 소수정당이 설 자리를 잃었고, 양극화된 진영 논리 속에서 다원화된 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할 기회가 제한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10대 법안 입법 촉구’ 농성 중인 장 의원을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정갈한 무채색 셔츠 차림에도 정의당의 상징색인 노란색 운동화와 무지개색 시곗줄을 잊지 않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21대 국회를 돌아본다면.

“21대 국회의 양극화된 진영 정치 속에서 다양성·소수자 의제는 0 아니면 1의 싸움이었다. 산업화에서 민주화를 거쳐 다원화로 나아가야 할 때, 장애인 탈시설, 페미니즘, 기후 문제 등 나서서 말하지 않으면 국회 내에서 무(無)가 됐다. 반면 경제 정책에서는 양당 모두 표심 앞에 ‘부자 감세’의 일변도였다.

특히 정치인들이 성평등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페미니스트로 낙인이 두려워 토론회를 피했다. 늘 마지막엔 내게 찾아 왔고, 스스로에 쓰인 낙인과 예상되는 공격을 알고 있었지만, 이 목소리 자체가 사라지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나갔다.”
정의당은 지난 2일 통과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28일 재표결을 앞둔 ‘채 상병 특검법’을 비롯해 ‘선구제 후회수’를 골자로 한 전세사기특별법개정안 및 공공의대법, 국민개혁연금법, 민주유공자법, 이민사회기본법, 임신중지보완입법, 초단기계약방지법, 포괄임금제폐지법 등 10가지 법안을 촉구하는 천막 농성을 진행 중이다. 24일 장 의원이 ‘민주유공자법’ 촉구 피켓을 들고 있다. 최상수 기자
–21대 국회에서 가장 아쉬운 점과 뿌듯한 순간.

“차별금지법이나 가족구성권 3법을 발의했을 때 정말 기뻤다. 동시에 가장 아쉬운 점이다. 우리 헌법에 정교분리의 원칙이 있지만, 전혀 지켜지고 있지 않다. 국회의원들이 깊이 되새겨보길 바란다. 어떤 분들은 ‘왜 그렇게 소수자 이슈에만 골몰하냐,  다수가 관심 있는 이슈를 해야지’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굉장히 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계속하는 것도 우리 당의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 차별을 넘지 못하면 보편적 차별 금지로 나아갈 수가 없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생활동반자법을 두고 민주당에 ‘동성 결혼을 하고 싶은 건데 말 못하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깊이 실망했다. 적어도 한국 사회의 인구 구조의 변화를 보면 꼭 그렇게 말할 수 없다. 1인 가구의 가장 많은 비중을 노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분들은 누군가와 사실상 가족과 다름없이 살고 있을 테다. 이분들이 법적 가족의 테두리 밖에서 보호받지 못한다면, 모두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정의당 내부에서 소수자·페미니즘 등 ‘정체성 정치’에 치중한다는 지적도.

“동의하지 않는다. 정의당이 페미니즘 정당이 아니었던 적이 없고, 노동운동에 뿌리를 둔 정당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다만 정의당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묻고 싶다. 그럼 정의당이 페미니즘을 버렸어야 합니까?

그러면 노동 중심성을 잃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그건 아니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미 당 내부에서 노동 중심성이 취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의제들이 도드라져 보이는 건 아닐지, 결과론적으로 정체성 정치를 탓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이날 장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준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제3당의 정치적 공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였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오히려 제3당을 민주당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다.

–22대 국회 민주·진보 진영이 모두 위성정당에 참여했다.

“위성정당을 만들었거나 위성정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정당에 소속된 분들은 반드시 반성하셔야 한다. 국회에서 두 강자(국민의힘·민주당)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소수정당은 그중 하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면, 사회적 약자를 독자적으로 대변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위성정당 프로젝트로 21대 원내에 진출했던 분들은 사실상 용혜인 아니면 조정훈의 길에 그쳤다. 민주당이 허락한 진보 안에 갇히든지, 아니면 완전히 배신자가 되는 식이다.”

–대안은 무엇일까.

“다당제 정치개혁의 제도화 없이는 이 급변하는 국면 속에서 두 개 이상의 국민 목소리를 안정적으로 대변할 수가 없다. 물론 구조 탓을 100% 하기에는 정의당을 비롯한 여러 진보 정당들의 실력 부족 문제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득권이 스스로를 개혁할 거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은 매우 순진한 일이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 마련된 ‘10대 입법 과제’ 실현을 위한 천막 농성장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22대 국회에 제언.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척도는 페미니즘과 성평등에 대한 태도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22대 국회가 두 가치를 대하는 태도는 결코 민주적이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을 견인, 정의당을 대체하겠다’고 주장한 조국혁신당은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이준석 당선자가 여성·장애인·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쟁취했다는 점도 우려가 크다. 여성이 겪고 있는 차별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페미니즘·성평등 가치 자체를 왜곡·공격하는 정치에 맞설 각오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꼭 그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정의당은 이번 4·10 총선에서 끝내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다만 장 의원은 서울 마포을 지역구 선거에 도전하며 정의당의 재도약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했다.

–지역구 선거에서 느낀 점.

“지역에서 좌절하기보단 가능성을 많이 봤다. 한번은 지역 어르신들 급식 봉사에 나갔는데, 쉬는 시간에 결혼했냐고 물어오셨다.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는데, 어르신들이 “요새는 결혼 안 한 게 흠도 아니고, 다만 싱싱할 때 (난자를) 얼려놔”라고 하셨다. 띵- 기분 좋게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국회 담장 안에 있으면 ‘20·30 여성’, ‘70대 노인’ 등 꼬리표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 안에는 굉장히 많은 레이어(층위)가 중첩돼 있지 않나. 지역에서 사람들의 실제 삶과 구체적으로 관계를 맺는 게 정의당에 중요한 도약의 계기가 되겠다고 느꼈다.”

–8.78%라는 득표율을 얻었고, 총선 직후 ‘후원금 폭탄’이 쏟아졌다. 어떤 마음들이었을까.

“이건 짧게 답할 수 있겠다. ‘포기하지 마라’. 명확한 메시지였다. 불가능에 가까운 선거였다는 걸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왜 몰랐겠는가. 그러나 ‘필요한 정치다’ 라고 모두 느끼고 있기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계속 나아갔으면 좋겠다, 돌파구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표현해주신 듯하다.”

–앞으로의 계획.

“총선 이후 하루도 쉬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들을 조금이라도 진척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지금은 정치를 계속한다는 큰 방향성만 있다. 그리고 마포구 지역사무소를 유지할 것이다. 마포에서 저를 지지해 주시고 (득표율) 8.8%를 만들어주신 시민들께 보여드리고 싶다. 장혜영 이상무!”

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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