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시밀러 호시절 끝나나…갈수록 독해지는 특허 전쟁

김명지 기자 2024. 5.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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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에피스클리’ 美 특허침해 소송서 승소
오리지널 개발사 특허 전략, 갈수록 독해져
후발주자 모르게 숨긴 ‘잠수함 특허’도 등장
알렉시온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상대로 미국에서 제기한 솔리리스 복제약 제품 출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미국 법원이 기각했다. 다만 항체 의약품 바이오 시밀러 시장에도 ‘특허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은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이 개발한 단백질 구조 탐색 게임 '폴드잇'(화면 안)./조선DB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델라웨어 지방법원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상대로 알렉시온이 제기한 특허 침해 소송에서 삼성의 손을 들어준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알렉시온은 지난 1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발작성 야간혈색소뇨증(PNH) 항체 치료제인 ‘에피스클리(SB12)’가 자사의 오리지널약인 ‘솔리리스(성분명 에쿨리주맙)’ 특허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에피스클리는 솔라리스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이다. 알렉시온은 지난 2월 미국 출시를 막아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접수했는데, 법원은 석 달 만인 이날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번 미국 법원 판결로 훨씬 저렴한 삼성의 에피스클리가 미국에 곧 출시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야간혈색소뇨증은 적혈구가 파괴돼 혈액에 혈전(피떡)이 쌓이면서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희소 질환이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신장 기능이 망가지는 급성 신부전으로 사망할 수 있다. 솔라리스는 환자가 적지만 약값이 워낙 비싸 지난 2022년 연매출은 약 5조원(37억6200만달러)에 달했다. 바이오시밀러는 환자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제약바이오업계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승소를 반기면서도 이번 소송이 항체 의약품 바이오시밀러 시장에도 ‘특허 장벽’이 높아지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오리지널 의약품의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특허 장벽을 세우는 것은 일반적이다. 주요 특허가 끝나기 전에 세부 용도 특허를 추가해서 애를 먹인다. 바이오 의약품은 화학합성의약품보다 복제가 어려워 특허 방어전이 심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같은 바이오시밀러 선두 주자들이 시장에서 성공하자 오리지널 신약 개발사들은 독하게 특허 방어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혈액학 분야 희귀질환 치료제 '에피스클리'(성분명 에쿨리주맙)./삼성바이오에피스 제공

그동안 바이오 의약품인 항체 신약은 특허 방어전에서는 열외였다. 바이오 의약품은 생명체를 이용해 제조하기 때문에 복제가 어려워 후발 주자가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더욱이 미국 의약품 처방 시장은 병원과 민간 보험사가 장악하고 있어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바이오시밀러가 성공하기 어렵다고 봤다. 2년 전인 지난 2022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특허 관련 소송 건수는 10건으로 지난해(25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그런데 가격을 낮춘 바이오시밀러들이 예상과 달리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면서 특허 분야의 짧은 평화가 깨졌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첫 바이오시밀러인 ‘바이우비즈’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바이우비즈는 스위스 노바티스의 황반변성 치료제 ‘루센티스(성분명 라니비주맙)’의 복제약인데, 지난 2022년 6월 미국 시장에 출시한 지 3개월 만에 시장의 10%를 장악했다. 알렉시온이 삼성바이오에피스에 특허 소송을 제기한 것은 솔리리스 시장에서도 바이오시밀러가 성공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알렉시온은 벌써 바이오시밀러 방어 전략을 준비했다. 솔리리스의 주성분인 에쿨리주맙은 물질 특허가 2021년 만료됐지만 미국 시장에 출시된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는 없었다. 알렉시온이 솔리리스의 용도 특허를 늘리는 방식으로 바이오시밀러 출시를 막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쟁자와 협약을 통해 출시 시기를 조정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인 암젠도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했지만, 알렉시온이 암젠과 오는 2025년 3월까지 바이오시밀러를 출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합의했다.

특허 방어 전략도 더 독해지고 있다. 미국 특허 전문 변호사인 국내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제넨텍, 리제네론, 알렉시온 같은 신약 개발 회사들이 물질 특허 만료를 앞둔 바이오 의약품의 특허를 잘게 쪼개서 대응에 나서고 있다”며 “특허 함정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변호사는 ‘잠수함 특허(submarine patent)’가 대거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잠수함 특허는 ‘숨겨 놓은 특허’를 뜻한다. 미국 특허청이 특허 등록 검색이 잘 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특허 출원을 계류시키고있다가 해당 기술의 출원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제3자가 투자를 한 후에 특허를 받은 후 소송을 걸어 로열티를 받아내는 특허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은 미국 특허청에 등재된 특허 정보를 토대로, 특허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복제약을 개발한다. 잠수함 특허가 있는지 모르고 시장에 진출했다가 역으로 공격을 당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MSD는 면역 항암제인 ‘키트루다’의 특허를 방어하기 위해 잠수함 특허 128개를 쌓아 놓았다고 한다”며 “리제네론은 황반변성 치료제인 ‘아일리아(성분명 애플리버셉트)’ 바이오시밀러가 오는 2027년까지 미국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장치를 했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기만 하면, 돈을 쓸어 담던 호시절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리제네론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아일리아로 약 12조 7000억원(93억8000만 달러) 매출을 올렸다. 회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아일리아를 방어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리제네론은 올해 초 삼성바이오에피스가 37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2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로 개발한 ‘오퓨비즈’에 대한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시장 출시 시점은 미지수다. 리제네론이 미국에서도 지난해 12월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맞불 작전으로 리제네론을 상대로 미국과 독일에서 용도와 제형 특허 무효 심판을 제기한 상태다. 리제네론은 국내 셀트리온에도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얀센과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스텔라라(성분명 우스테키누맙)‘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두고 특허 소송을 벌였다. 스텔라라의 물질 특허는 지난해 만료됐고, 유럽 특허는 오는 7월 만료를 앞두고 있다. 스텔라라의 지난해 매출은 약 14조 6700억원(108억 5800만 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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