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재용 ‘경영권 불법 승계’ 항소심 27일 시작... 檢, 1300쪽 항소 이유서에서 1심 무죄 판결 반박

이현승 기자 2024. 5.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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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의 첫 준비 기일이 27일 열린다.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면서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세를 조종했다는 등 19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지만 지난 2월 1심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검찰은 사흘 만에 항소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 부정과 부정 거래 행위에 대한 증거 판단, 사실 인정 및 법리 판단에 관해 1심 판단과 견해차가 크다”는 게 이유였다.

검찰은 이런 취지의 항소 이유서를 지난 3월 재판부에 냈는데 조선비즈가 최근 항소 이유서를 입수했다. 1300쪽 분량의 항소 이유서에서 검찰은 1심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항소심에서 이 회장 측과 치열한 공방을 예고했다.

검찰의 항소 이유서에는 “원심 판결은 재벌들이 지배력을 승계하기 위해 함부로 계열 회사를 합병해도 되고 그 과정에서 수조원 상당 분식회계를 저질러도 된다는 부당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재벌 봐주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유럽 출장을 마치고 3일 오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 檢 “이재용, 안정적 승계 위해 불법 행위”...1심 재판부 ‘전부 무죄’

검찰은 지난 2020년 9월 이 회장과 전현직 임원 10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 19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삼성은 2015년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양 사를 합병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제일모직 지분만 23.2% 보유한 상황에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각종 불법 행위에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작년 11월 결심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19개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이재용의 경영권 강화 및 삼성그룹 승계만이 이 사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 단정할 수 없고, 이재용과 삼성 미래전략실이 합병을 전단적으로 결정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합병비율이나 시점 등도 삼성물산과 그 주주들에게 부당하다고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고, 합병 판단에 있어 은폐나 조작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도 했다.

또 재판부는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회계 부정 혐의와 관련해 2019년 검찰이 압수한 18테라바이트(TB·1TB는 1기가바이트의 1024배 용량) 규모 백업 서버 등의 증거 능력을 모두 부정했다. 검찰이 압수한 자료의 선별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변호인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삼성이 제일모직 기업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로직스 회계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면서, 로직스 공장 바닥 등에서 찾아낸 회사 서버와 업무용 컴퓨터 자료를 증거로 제출했다. 이 자료에는 로직스·에피스 설립,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등과 관련해 회사 내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문건과 이메일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 檢, 1심 재판부 강하게 비판 “형식적, 단편적 논리만 설시”

검찰은 3월 법원에 제출한 항소 이유서에서 재판부가 삼성 변호인 측 의견을 편향적으로 받아들여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1심 재판에 출석한 증인 79명 중 54명, 68%가 삼성그룹 관계자이거나 합병에 관여한 회계법인 관계자였다고 했다. 증인 신문 시간도 변호인에게 검사보다 최소 3~4배 많이 할애됐다고 했다.

검찰은 또 재판부가 판결문을 ‘급하게’ 작성했다고도 했다. 재판부가 2월 5일 판결을 선고한 이후 특별한 이유 없이 판결문을 8일에 공개한 점을 들어 “판결 선고 이후에도 판결문이 완성되지 않아 판결문 공개를 미룬 것은 아닌지 강하게 의심된다”고 했다.

검찰은 법원이 로직스와 에피스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전자정보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80여쪽을 할애해 반박했다. 검찰은 로직스에서 압수한 백업 서버에 있는 68개 폴더 중 회사 직원과 변호사 참관 하에 사건과 관련있는 12개를 선별해 압수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압수된 전자정보는 파일개수 기준 전체의 11.48%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 다른 압수품인 노트북 26대와 외장 하드디스크 2대에 저장된 파일 개수가 거의 300만개에 달해 하나씩 열람하는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고도 설명했다. 이에 전자정보 일체를 압수했지만, 탐색·복제·출력 과정에 회사 직원과 변호사가 계속 참여했고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은 재판부가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변호인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검찰 주장을 배척했다고도 주장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변호인은 2019년 5월 21일경 선별 절차를 거쳐 유관 정보만 압수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보이는 점”이라고 했는데, 이는 변호인 의견서에 적힌 내용일 뿐 근거가 없다고 했다. 심지어 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했다고 주장한 날짜는 2019년 5월 22일인데, 이날은 참관이 진행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은닉됐던 대규모 자료가 한번에 발견되고 저장 매체까지 압수가 필요한 경우, 도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선별 절차를 거쳐야 적법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형식적이고 단편적인 논리만 설시하고 있다”며 법원을 비판했다.

한편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 김선희 이인수 부장판사)는 27일 오후 3시 이 회장 항소심 첫 공판 준비 기일을 진행한다. 준비 기일은 본격적인 재판을 앞두고 검찰과 피고인 측의 입장 확인을 통해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 조사를 계획하는 절차다.

항소심에선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가 유죄 인정의 자료로 쓰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결정하는 데 경영상 필요성이 고려되지 않아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한 양측 공방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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