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모욕당해 사표… 대통령, 현장 아우성 귀기울여야”

정해민 기자 2024. 5. 27.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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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한 응급의학과 전공의 전호씨·이형민 응급의사회장 공동 인터뷰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과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 전호씨가 23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2일 대통령실 민원실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편지와 수기집 '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을 전달했다. /남강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대화를 요구하면 당연히 응할 겁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이 (의사 중) 가장 할 말이 많아요.”

이형민(52)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과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레지던트 2년 차) 전호(34)씨는 26일 본지 인터뷰에서 “환자 생명이 초 단위로 결정되는 응급실에서 자긍심을 갖고 일하던 젊은 의사들이 왜 (정부 의대 증원 발표 후) 가장 먼저 사표를 던졌는지 대통령이 살펴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방문해 윤 대통령에게 편지와 함께 응급의학과 전공의(인턴·레지던트) 54명이 쓴 ‘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이란 책을 전달했다. 이들은 “대통령은 수기집을 꼭 읽어 주시고 현장의 아우성에 귀 기울여달라”고 했다. 다음은 이 회장과 전씨의 대담.

전호씨(이하 전)=대통령이 편지와 수기집을 읽고 대화를 요청하면 당연히 대화에 응할 것이다. 대형 병원에서 가장 많은 환자를 보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현장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든지 윤 대통령께 말씀드리고 싶다. 바이털(생명) 의사는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다. 다른 일을 하면 더 많이 벌 수 있고 훨씬 편하다.

이형민 회장(이하 이)=저희는 환자·보호자 만날 때가 가장 두렵지 대통령 만나는 것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매일 응급실에서 중환자를 본다. 해결하지 않으면 응급실은 난리가 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가운데)과 사직전공의들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윤 대통령에게 전달할 '응급의학과 사직전공의들이 윤석열 대통령께 드리는 글'과 '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책을 들어보이고 있다./뉴스1

◇”의대 증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전=의대 2000명 증원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바이털 의사와 중증 환자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증원이 아니라 ‘독의 구멍’, 즉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다. 예컨대 의사들이 악의 없는 실수를 해도 의사 면허를 박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때마다 위축이 된다. 10년쯤 전에 한 전공의가 응급 환자의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지 않아 대동맥이 찢어진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면허 취소를 당한 적 있다. 이제는 가슴 부위가 아프다는 환자는 전부 CT를 찍는다. 그러다 보면 초 단위로 숨 넘어가는 응급·중증 환자의 진료가 밀린다. 의사가 없어서 진료가 밀리는 게 아니다.

이=전공의들의 진정성을 대통령이 봐줬으면 좋겠다. 전공의들은 돈이 아니라 보람으로 이 일을 해왔다. 전공의 일은 누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지금이라도 정부의 의대 증원 백지화가 가능하다. 내년도 입학 정원을 포함해 2026학년도 정원 등도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전공의들을 악마화했다. (전공의들은) 그동안 안 해도 되는 일까지 해가면서 환자를 봤다. 국민 일부가 저희를 나쁘게 얘기하면 그전처럼 환자를 도와줄 수 없게 된다. 전공의들이 상처를 받았다.

이=정부와 의료계 간 의견이 맞지 않으면 의견을 조율하면 되는데, 정부는 의사들을 모욕했다. 지금 해결책은 하나다.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수리해줘야 한다. 그래야 전공의들이 다른 병원에 취직을 하든, 추후 전공의로 다시 지원하든 할 수 있다. 전공의들 (경제) 사정이 너무 어렵다. 사직서 수리를 안 해주는 것은 정말 치사한 것이다.

전=피와 오물을 견디면서 대형 병원에서 전공의를 하던 (바이털) 의사들이 환자 곁을 어떻게 떠나겠나. 사직서를 수리해달라는 건 환자를 안 보겠다는 게 아니다. 다른 곳으로 환자를 보러 가겠단 뜻이다.

한 병원의 전공의가 사표를 내고 수리가 되면, 이 전공의는 개원을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수련 병원(대형 병원)에서 자신의 전공과 연차에 맞는 의사를 구하면 그 병원에서 수련을 이어갈 수 있다. 가령 A병원의 내과 레지던트가 사표를 내고 수리가 됐을 경우, 그가 다음 전공의 모집 때 내과 레지던트를 구하는 B병원에 지원해 합격하면 전공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의료계 인사들은 “일부 수련 병원에선 수련 계약을 할 때 전공의에게 ‘중도 퇴직을 하면 다른 병원에서도 1~2년간 수련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기도 하는데 법적 효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정부는 브리핑 때마다 ‘응급실이 차질 없이 운영 중’이라고 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다. 전공의가 지키던 응급실은 대부분 축소 운영을 하고 있다. 지금 응급실은 엉망이다. 지금은 의료 대란 상황이다. 입원과 수술이 반 토막 난 대학 병원은 응급 환자를 예전처럼 받지 못하고 있다. 환자를 받아주던 중형 병원도 이젠 여력이 없어 환자들이 다시 대형 병원으로 몰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환자를 받아도 입원이나 수술을 할 인력이 없다.

전=죄송할 뿐이다.

◇중환자 1명, 경증환자 99명

이=응급실 뺑뺑이라는 말은 코로나 때 처음 나왔다. 옛날부터 응급실 뺑뺑이는 있었다. 경증 환자 응급실 쏠림과 의료 취약 지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주취자, (경미한) 교통사고 환자, 경증 환자 99명을 겪고 나서야 (위급한) 중환자 1명을 진료한다. 응급의학 교과서를 쓴 미국 전문의 주디스 틴티넬리가 7~8년 전 한국에 방문해 ‘빅5′(초대형 5곳 병원) 응급실을 보고 박장대소한 적이 있다. 은행에 있는 번호표 기계가 응급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경증 환자는 받지 않으면서 중증 환자를 무조건 받는 병원을 지정해야 된다. 119 유료화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전=요즘은 응급실 방문하는 환자들이 번호표도 불편하다고 해서 식당 대기줄처럼 카카오톡으로 알림을 받는다. 대기를 걸어놓고 근처에서 밥 먹는다고 늦게 오는 환자도 있다. 그러면 다른 환자 진료가 밀린다. 이게 과연 응급실이 맞나 싶다.

◇응급실 동기 1년 만에 피부 미용으로

전=초 단위로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삼도천(불교에서 말하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강)에서 환자를 건져낸다는 점이 멋있어서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다. 사명감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응급의학과는 ‘(전공의 생활) 견디면 나중에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론 버틸 수가 없다. 실제 같은 병원에서 수련받던 응급의학과 동기 7명 중 3명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1년 만에 그만뒀다. 지금은 전부 피부 미용을 하고 있다.

이=의사로서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힘들어도 참고 일하는 것이다. 바이털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상황에서 돈으로 보상해줄 테니 돌아오라고 해서는 맞지 않다.

☞전공의·전문의·전임의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해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을 ‘일반의’라고 한다. ‘전공의’는 의대 졸업 후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종합병원 등에서 수련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말한다. 레지던트를 거친 뒤 특정 분과에서 자격을 인정받으면 ‘전문의’가 된다. 이후 대형 병원에서 1~2년 세부 전공을 공부하며 진료하는 의사를 ‘전임의(펠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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