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 전기요금 지원 정책에… 소상공인들 ‘분통’

조재현 기자 2024. 5. 2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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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목소리 제대로 안 듣고 설계… 지원금 지급 두 달 이상 늦어져
그래픽=이철원

정부는 올 초 소상공인 126만명에게 최대 20만원의 전기 요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처음으로 시행했다. 최근 전기 요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소상공인 부담이 커지자 에너지 요금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겠다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국회와 정부는 예산 2520억원을 편성했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소상공인들에게 온라인 신청을 받았는데 두세 달 넘게 지원금 지급이 감감무소식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경기 화성시에서 한 네일숍을 운영하는 A씨는 “3월 초에 신청했는데 두 달 넘도록 ‘검증 중’으로만 나온다”며 “한 달 월세 50만원 내기도 버거운 상황에 전기 요금 20만원이라도 줄여보려는데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고 했다. 경남 김해시에서 반려동물용품점을 하는 김모씨도 “신청 두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통장에 지원금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정부가 희망 고문하는 거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그래픽=이철원

지원 대상 여부를 확정하기 위한 심사가 길어졌기 때문인데 관련 기관 사이 정책 협조가 되지 않은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국회와 정부가 관련 예산 편성 때 지원 대상자를 주먹구구식으로 산정하면서 예산을 과도하게 편성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는 신청 기간을 한 차례 늘렸는데도 신청자가 예상에 못 미치자 지원 대상자 확대를 검토하고 나섰다.

◇지원 늦어진 소상공인들 ‘분통’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월 서민들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줄이겠다면서 소상공인에게 전기 요금 20만원 지원금 신청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2월 15일 기준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연 매출 3000만원 이하 소상공인이 대상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지원 대상인지를 국세청과 한전에 확인한 뒤 전기 요금을 깎아주거나,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소상공인들 사이에선 “신청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도 지급 대상자인지조차 확정되지 않고 있다. 언제쯤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중기부는 애초 “온라인 신청 후 한 달 안에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신청한 지 석 달이 넘도록 지급 여부조차 확정되지 않은 경우가 속출한 것이다. 5월 22일까지 신청 인원은 57만명인데, 이 중 지급이 확정된 경우는 31만명(54.3%)에 그쳤다. 나머지 26만명(45.6%)은 여전히 대상자가 맞는지 심사를 받는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세청·한전 등 관계 기관에 폐업 여부나 연 매출 자격, 사업장용 전기 요금을 내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해 두세 달 이상 심사가 길어졌다”고 했다. 한 자영업자는 “코로나 때 각종 지원금은 신청 하루 이틀이면 통장으로 입금됐는데, 이번 전기 요금 지원 사업만 유독 심사에만 수 개월이 걸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국회·정부가 부실하게 정책 설계… 정부는 뒤늦게 “대상자 넓히겠다”

총선을 앞두고 국회와 정부가 촘촘한 정책적 설계 없이 지원 대상자와 예산을 과도하게 부풀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지원 대상자에 대한 정확한 시뮬레이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정책이 추진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는 “소상공인의 에너지 비용 경감을 위한 특별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전기 요금 인상분을 한시적으로 지원하자는 여야 공감대가 형성됐고, 국회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전기 요금 지원 대상 소상공인을 126만명으로 추정하고, 이들에게 20만원씩 총 2520억원을 예산으로 편성했다. 하지만 126만명은 휴·폐업 중인 소상공인까지 포함한 수치였다. 22일 기준 신청자는 57만명으로 45.2%에 그쳤다. 정부는 신청 기한을 4월 말~5월 초까지로 했지만, 신청이 저조하자 6월 말까지 연장했다. 정부는 뒤늦게 사업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대상자가 실제로는 약 76만~82만명(약 60~65%)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했다. 예산 약 1000억원이 남게 되는 셈이다. 그러자 정부는 지급 대상의 연 매출 기준을 현재 3000만원에서 더 높여 대상자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단기간에 정책이 설계되면서 구체적인 검토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심사를 신속히 진행하고, 남은 예산도 활용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계속 논의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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