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홍삼 먹어요, 비타민 먹지”

석남준 기자 2024. 5. 2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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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기능식품 매출 4년새 1조 넘게 늘었지만 홍삼은 4200억 줄어

건강기능식품 ‘부동의 1위’ 홍삼이 울고 있다. 소비자들은 건강기능식품 구매에 예전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홍삼 제품도 계속 쏟아지고 있지만, 유독 홍삼 인기가 예전만 못한 탓이다. 전체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우상향하는 가운데 홍삼 시장은 거꾸로 내림세다. 홍삼이 역성장 늪에 빠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다른 제품보다 가격이 비싸고 ‘올드(old)’한 이미지에 맞춤형 영양제가 쏟아지며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과거 영광에만 안주해온 홍삼이 갈 길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러스트=김현국

◇중고 시장에 홍삼이 쏟아진다

“미개봉 새 제품 홍삼 스틱 팔아요.” “(가격 내림) 홍삼 스틱 180포 일괄 구매하실 분.”

26일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인 ‘당근’에 접속해 보니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만 홍삼 제품을 판매하겠다는 글이 일주일 사이에 50개 넘게 올라왔다. 이 플랫폼의 인기 검색어로 ‘홍삼’이 가장 먼저 떠 있었다. 정부가 지난 8일부터 1년 동안 30만원까지 건강기능식품의 개인 간 거래를 허용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대기업 직원 박모(43)씨는 “거래처에서 받은 홍삼 세트를 명절 때 부모님에게 선물했는데, 부모님도 안 드셔서 홍삼 제품 3개를 당근에 내놓았다”고 말했다.

홍삼의 처지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매년 성장세다. 2019년 4조8936억원이었던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2020년 5조원을 돌파(5조1750억원)했고, 작년에는 6조2022억원으로 커졌다. 반면 2019년 1조5939억원이었던 홍삼 구매액은 해마다 감소해 작년에는 1조1675억원까지 줄어들었다.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20일까지 한 대형마트의 건강기능식품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급증했는데, 홍삼은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홍삼이 잘 나갈 때는 명절 때 판매되는 건강기능식품의 98%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최근 수년 동안 명절마다 그 비율이 5%포인트씩 빠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 설 명절 때 대형마트의 건강기능식품 판매량 중 홍삼이 차지하는 비율은 80%까지 떨어졌다.

◇영양제 한 주먹씩 먹는 2030, 홍삼은 외면

최근 아침·점심·저녁마다 영양제를 한 주먹씩 먹는 2030 세대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홍삼은 외면받는다. 서울 중구의 한 투자은행에 다니는 30대 정모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비타민, 유산균, 아르기닌, 루테인, 오메가 3 등 영양제를 10개 넘게 먹는다”며 “젊을 때부터 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하는데, 홍삼은 가격도 부담스러워 손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해외 직구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해외에서 값싸고 다양한 영양제를 주문하면서 홍삼 제품을 찾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김현국

작년 기능성 원료 판매액 순위에서 홍삼이 1위 자리를 지켰지만, 라이벌의 추격이 거세다. 홍삼은 작년 1조1675억원어치가 팔렸는데, 2위 비타민이 9424억원으로 바짝 뒤쫓고 있다. 유산균 시장도 커지면서 프로바이오틱스가 3위(8348억원)를 차지했다.

◇자구 노력 부족한 홍삼 업체들

국내 홍삼 시장의 76%를 점유한 KGC인삼공사를 비롯해 홍삼 업계의 자구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삼이 정점을 찍고 하향세를 보인 게 어제오늘 벌어진 일이 아닌데,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식음료 기업들은 소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신제품을 개발하고 해외 시장을 뚫으려 발버둥을 치는데, 홍삼 업계는 관광객 면세 매출과 명절 선물 시장을 따놓은 당상처럼 여기며 안이하게 대처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명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섭외하고, 짜 먹는 방식, 젤리형 등 제형을 바꾸는 수준에서 신제품을 내놓을 뿐 근본적인 변화를 통한 소비자 트렌드 따라잡기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시장의 변화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홍삼 사업을 하는 업체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홍삼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2010년대에 홍삼 판매 업체가 250개에 달했는데, 최근에는 150개까지 줄었다”고 말했다.

KGC인삼공사는 최근 “글로벌 종합 건강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자사 제품만 판매하던 KGC인삼공사 온라인, 오프라인 매장에는 최근 다른 회사 제품을 들여놓기도 했다. KGC인삼공사는 글로벌 시장 확대 전략을 묻자 “중국 기업과 협업해 현지 맞춤형 제품을 출시하고, 미국에서 홍삼의 효능을 홍보하기 위해 미국 대학과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글로벌 온·오프라인 유통망 확대를 위해 협업 강화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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