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이것이 시네마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 나오는 그림의 의미

신정선 기자 2024. 5. 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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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69번째 레터는 독자 여러분께 사과 먼저 드립니다. 앞서 발송된 68번째 레터 서두에 67번째 레터 도입부가 잘못 얹혀 들어갔습니다. 백수진 기자가 잘 써서 올렸는데, 이런이런. 발송 처리 과정에서 오류가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두 사람이 눈을 더 부릅뜨고 챙기겠습니다. (아, 안야 테일러 조이의 큰 눈이 오늘따라 더욱 부럽군요) 꾸벅.

그럼,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받은 걸로 하고~ ^^ 오늘의 주인공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입니다. 이 영화를 한 줄로 줄이면? ‘이것이 시네마다!’ 영화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꼭 보세요. 강력히 추천합니다. 영화에 등장한 그림에 대한 제 해석(감독은 왜 많고 많은 명작 중에 그 그림을 넣었는가?)도 아래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복수의 집념. 구원을 향해 질주하는 대서사시. 꼭 보세요.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이 연사 외칩니다.

일전에 ‘퓨리오사’ 일부 장면 시사회를 했을 때 제가 무척 기대된다고 레터 보냈던 거 기억하시나요. 전체 영화는 어떨지 모르겠다 어쩌구 했었지요. 다 봤더니 어땠느냐, 크~~! 기대만큼이나 좋았습니다. 이 영화엔 어지간한 건 다 있습니다. 액션, 카타르시스, 시련, 복수, 좌절, 희생, 스릴, 유머, 심지어 로맨스까지! 느낌표 남발하면 사람이 참 없어보이던데 이 영화는 절로 그렇게 되네요.

저는 특히 전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의 잘린 팔이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 무척 궁금했는데요, 조지 밀러 감독님이 궁금증을 확실하게 풀어주시더군요. 왜 그 팔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느냐, ‘왕좌의 게임'의 제이미 라니스터가 생각났거든요. 모든 걸 가진 금발의 기사였지만 오만하고 방탕했던 제이미가 각성한 기사로 다시 태어날 때 희생해야만 했던 건 그의 오른손이었습니다. 검을 다루는 전사인 그로선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그걸 이겨내야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모든 영웅 서사가 그렇듯.

퓨리오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수와 귀향을 하고 영웅이 되기 위해선 희생이 필수불가결.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데, 이 장면에 신체 훼손이 들어가다보니 좀 보기 힘들긴 했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라 참고 봤습니다. 안야 테일러 조이가 참 잘해냈어요. 대사가 별로 없는 이 영화에서 눈 크기가 그 정도 되지 않았다면 스토리 전달이 됐을지 모르겠네요.

만약 전작인 ‘분노의 도로’를 안 보셨다면, 잘 됐습니다. ‘퓨리오사’가 ‘분노의 도로’보다 앞선 이야기(프리퀄)거든요. 이번 기회에 극장에서 ‘퓨리오사’를 보시고 ‘분노의 도로'(웨이브와 쿠팡플레이에 있습니다)를 보시면 이해가 더 잘 되실 겁니다. 8년 만에 나온 프리퀄인데 어쩜 이렇게 앞뒤가 빈틈없이 꽉 물리게 짜놨는지 감탄스럽더군요. 흥행 성적에 따라 급조한 영화가 아니라는 거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한 감독이 자신만의 확고한 비전으로 만들었을 때만 이런 수준의 영화가 나옵니다. (여러분은 모르실 거에요. 본인이 무슨 얘길 하는지 본인도 모르는 감독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하.)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 등장하는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힐라스와 님프들'(1896). 님프의 유혹에 빠져 물에 잠긴 힐라스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오.

다만, 이런 건 있었어요. ‘분노의 도로’를 보고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보니 ‘퓨리오사’를 보고 그때만큼 충격적으로 엄청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는 점. 우리가 박찬욱이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대해 기대하는 수준과 신인감독 A, 중견 감독 B의 영화에 대해 기대하는 수준이 동일하진 않은 것과 비슷하죠. 모든 감독마다 각자 감동의 역치가 다르다고나 할까요. 만약 ‘퓨리오사’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고 느끼셨다면 ‘분노의 도로’ 탓(?)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절대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퓨리오사’는 조지 밀러라는 거장만이 가능한 시네마의 경지를 보여주는 걸작임에 틀림없다고 이 연사,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퓨리오사’는 저희 지면에 백수진 기자가 리뷰를 쓰기도 해서(링크는 레터 맨 아래에 붙이겠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다른 얘기를 해볼게요.

영화에 그림이 한 점 나오는데요, 가스타운 보스가 심심풀이로 그리던 그림입니다. 어떤 작품인지 모르셨다면? 바로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의 유화 ‘힐라스와 님프들'(1896)입니다. (위의 사진을 봐주세요) 헤라클레스와 함께 원정을 떠난 미청년 힐라스가 물을 떠오려고 나섰다가 호수에서 님프의 유혹에 빠져 물 속으로 잠겨버린다는 신화를 그린 작품이죠. 헤라클레스가 뒤늦게 그를 찾아 나섰지만 영영 찾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림은 영국 맨체스터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데, 2018년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뉴스가 터졌습니다. 맨체스터갤러리 측에서 ‘남성 화가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작품'이라며 갤러리에서 내려버렸거든요. 심지어 갤러리 상점에서 팔던 엽서까지 싹 다 없애버렸고요. 그런데 박수 받을 줄 알았던 이 결정은 오히려 거센 비판을 받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미술사 명작 중 상당수가 창고행이죠). 당황한 갤러리 측은 며칠 만에 그림을 다시 걸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름다운 작품인데요,

그럼, 왜 밀러 감독님은 저 그림을 선택했을까요. 언제나 그렇듯 제 해석입니다만, 아마도 감독님은 인류 문명이 절멸한 황폐한 세상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매혹과 감탄은 여전하다는 뜻을 담아 ‘힐라스와 님프들'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미(美)에 대한 인류 공통적인 공감을 일깨우는 그림인 거죠. 저 그림이 워터하우스의 작품이고, 워터하우스는 라파엘전파풍의 그림을 많이 그렸고 어쩌고 그런 미술사 지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봤더라도 누구나 생각할테니까요. ‘와, 아름답구나.’ 흉포한 세상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이라. 전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조지 밀러 감독님은 그만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희망이 확고한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래에 조지 밀러 감독님의 최신 인터뷰 영상 붙일게요. 끝부분에 하신 말씀을 들으니 어떻게 나이 여든에도 저렇게 해맑은 표정이신지 이해가 되더군요. “왜 영화를 아직도 하냐고요? 여전히 궁금한 게 많아서요. 영화는 변하고 있잖아요. 천년을 해도 마스터 못 해요. 이해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네, 감독님, 앞으로도(백살까지!) 끊임없이 호기심을 불태워서 계속 영화 만들어주세요~ 멋진 영화 만들어주신 감독님께 감사, 레터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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