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학- 철학실종시대, 사라진 강원 동학사를 찾아서] 1. 프롤로그- 왜 다시 동학인가

김진형 2024. 5. 2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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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살고 싶었기에’ 강원에서 움튼 생명·평등의 꽃
19세기 조선 백성 삶 피폐 ‘새세상’ 열망
1860년 최제우 동학 창도→반란 혐의
2대 교주 최시형 강원 피신 사상 재건
35년간 200여곳 돌며 교세 확장·정립
1880년 ‘동경대전’ 초판본 인제서 발간
1894년 1·2차 동학농민혁명 발생
홍천·정선·강릉·평창 등 도 전역 전투
인간 평등·생명 소중함 뿌리 혁명 꿈꿔
강원 기반 활발한 활동 불구 관심 부족
▲ 1893년 11월 전북 정읍 고부면 송두호의 집에서 전봉준 등 20여명이 모여 고부 농민 항쟁을 결의했던 사발통문. 1968년 공개됐으며 주모자를 알 수 없도록 동그란 사발을 이용해 서명했다.

디지털 시대 전환으로 세계는 더 촘촘하게 연결됐지만 정신 문명이 기술의 발전을 제어하지 못하면서 공동체성을 잃고 있다. 물질만능주의와 생명 경시, 기후 위기를 늦추는 길도 보이지 않는다. ‘속도의 위기’를 맞이한 현대사회가 맞이한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철학이 실종된 시대, 우리 민족으로부터 나온 동학 사상에서 대격변에 대처할 실마리를 찾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우리 민중의 깨우침이자 생명사상의 원류로 평가되는 동학의 가치는 강원은 물론 영호남, 충청 등 지역을 가릴 것 없이 보편주의와 평등사상을 선도했다. 3·1운동을 비폭력으로 주도한 주축세력도 바로 동학이었다. 동학의 동시대성을 찾는 ‘다시 동학’ 시리즈는 이같은 물음에서 시작됐다. 강원의 땅에서 싹틔운 동학을 통해 인본주의와 민주주의, 생명사상의 뿌리를 찾을 예정이다. 우리 민족으로부터 나온 사상이 세계를 구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희망의 서사에 독자를 모신다.

 

<싣는 순서>

1. 프롤로그- 왜 다시 동학인가
2. 홍천 자작고개 <상> 핏물이 자작자작- 강원 최대의 동학군 희생지
3. 홍천 자작고개 <하> “늙은이도 어린이도 다 죽였다”- 차상찬의 기록을 중심으로
4. 강원에서 완성된 동학 - 정선·강릉·양양·고성 강원의 민중혁명을 돌아보다
5.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을 따라서 - 인제 동경대전 발간지에서 원주·횡성·영월까지
6. 타 지역 동학 발상지를 찾아서- 전북 정읍, 충남 우금치 등
7. 타 지역 동학 발상지를 찾아서- 경북 경주, 전남 나주 등
8. 일본에 남은 동학의 역사, 히로시마를 가다
9. 강원에 남은 동학사상의 물결 - 무위당 장일순, 김지하 등 원주 생명사상의 뿌리와 발전
10. 에필로그. 생명사상과 민주주의, ‘다시 동학’




■암담했던 현실에도 개벽은 온다

19세기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책이 빨라지는 시기, 조선은 아직 열리지 않은 세계였다. 실학자들의 사상은 중앙 정치권의 학문 탄압으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실종돼 사회 변혁을 가져오지 못했다. 천주교는 모진 박해를 받고, 매관매직이 성행했으며 정부와 탐관오리들의 세금 착취는 그 정도가 심해졌다. 전염병과 기근 또한 백성들의 삶을 옥죄었다.

▲ 해월 최시형

백성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민중들의 열망도 높아져 갔다. 수운 최제우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요구를 인지, 27세부터 37세까지 방황과 구도 끝에 1860년 동학을 창도했다. 하늘을 모시고 나와 세상을 조화롭게 만든다는 ‘시천주(侍天主)’를 기반으로 한 한국사상의 탄생이었다. 1864년 반란 모의 혐의로 최제우가 참수된 뒤에도 동학의 가르침과 주문은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을 통해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최시형은 강원도로 피신해 동학 사상을 재건해 나갔고, 그로부터 30년 뒤인 1894년, 조선은 ‘개벽’의 시기를 맞았다.

개화기 들어 조선은 운명적 사건을 맞이한다. 지방 관리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1차 동학농민혁명이 벌어진 것이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이 주원인이었고 전봉준을 필두로 한 동학군은 4월 27일 전주성을 함락했다. 다급했던 고종 정권은 청에 동학군 토벌을 위한 군대를 요청했고, 일본도 톈진조약에 따라 조선 출병을 통보했다. 일본 출병을 예상하지 못한 조선은 5월 7일 동학군과 전쟁을 중지하는 전주화약을 맺었으나 이미 늦었다. 양국의 군대가 조선 땅에 상륙함에 따라 청일전쟁을 초래했다. 히로시마 대본영을 통해 8000명의 군사를 조선에 급파한 일본군은 개화와 내정개혁을 구실로 6월 21일 경복궁을 점령했다. 동학군 토벌 전 국권 침탈 야욕을 명백히 드러낸 셈이다.

동학농민군은 같은 해 9월 다시 일어났고, 최시형의 총기포령을 통해 2차 혁명을 일으켰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제폭구민(除暴救民)’을 기치로 일본군을 조선에서 몰아내기 위해 펼친 구국운동이었다. 우리 민족 스스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절박한 소명의 실천이기도 했다

일본군 진중일지에 따르면 동학농민군 참전자는 30만명, 사망자는 적어도 3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천도교 창건사에서는 사망자가 20만명, 오지영이 쓴 동학사에서는 30∼40만명에 달한다는 내용도 있다. 조선 관군과 일본군으로부터 목숨을 빼앗긴 동학군의 첫 번째 행동강령은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재물을 손상하지 마라’였다.
 

▲ 수운 최제우

■생명사상의 뿌리, 강원도 동학사의 재발견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민중의 힘으로 열었던 근대사의 중요한 이정표인 동학농민혁명은 프랑스·러시아 혁명과 비견될 혁명으로 평가되지만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특히 강원도는 1864년 최제우의 처형 이후 2대 교주 최시형이 근거지로 삼고 조직을 재정비한 지역으로서 큰 의미가 있지만 강원지역 동학사에 대한 연구나 조명, 지자체와 국가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지역민에게도 자랑스러운 역사로서 널리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충청지역과 영월, 정선, 양양, 홍천, 인제, 원주 등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오지 마을 200여곳을 35년간 옮겨다니며 동학을 체계화하고 전파했다. 최시형의 노력으로 인해 동학은 전국적인 세를 형성했고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한 교조신원운동이 이어졌다.

강원지역 곳곳을 다니며 100년을 앞서 세상을 내다본 최시형의 행적을 보면, 강원도에서 동학의 사상이 완성됐고 꽃을 피웠다고 해도 무방하다. 동학의 대표 경전인 ‘동경대전’ 초판본이 1880년 최시형에 의해 인제 갑둔리에서 발간됐으며 초기 동학의 역사서인 ‘최선생문집도원기서’도 정선에서 완성됐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홍천, 정선, 강릉, 평창 등 강원도 전역에서 동학군의 전투가 벌어졌다.

▲ 의암 손병희

단순히 민중혁명과 전쟁사적 시각으로 동학을 바라본다면 그 의미는 좁아진다. 동학사상은 하늘을 모신다는 태도 아래 해월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을 하늘처럼 모신다)’, 의암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상으로 이어졌다. 버려지고 짓밟혔던 모든 민중을 깨우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변곡점이었다.

특히 인간의 평등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뿌리로 사상을 실천했던 최시형의 행적은 동학혁명을 단순히 계급투쟁의 성격으로만 볼 수 없도록 만든다. 민중의 일반적인 생활 태도와 세계관, 공동체적인 삶까지 탄력있고 현대적으로 연결한다. 하늘·사람과 함께 만물을 공경하는 해월의 ‘삼경(三敬)’ 사상은 원주로 이어져 생명사상으로 발아했고, 무위당 장일순·박경리 소설가·김지하 시인 등에게로 계보가 전해졌다.

▲ 동학 대표 경전 ‘동경대전’

박맹수 전 원광대 총장은 “동학농민군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동학에 왜 뛰어들었냐고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사람 대접을 해줬기 때문’이라고 증언한다. 바로 동학의 평등사상”이라며 “혁명에는 이념적 지향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동학사상이 없었다면 농민군은 그저 반란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형진 동학학회 회장은 “눈 앞에 보이는 가치에만 매몰되고 생명 경시가 만연화된 세상에서 동학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구체적인 정신적 가치와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며 “생명이 깃든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동학의 정신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사상”이라고 강조했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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