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전당? 전쟁터?…바람 잘 날 없었던 21대 국회

신진환 2024. 5. 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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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타협의 협치 실종…소모적 정쟁으로 얼룩진 국회
탄핵·불체포특권 '시끌'…이태원참사특별법 등 입법 성과

지난해 12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가결되는 모습. 여당의 불참 속에 야당 주도로 통과됐다. 이처럼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쟁점 법안을 두고 강하게 충돌해 왔다. /남용희 기자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출범한 21대 국회는 정쟁으로 얼룩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지난 4년 동안 여야는 각종 쟁점 현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치했다. 특히 이번 국회 중반에 정권이 바뀌면서 여대야소에서 여소야대로 원내 구도가 달라진 것과 무방하게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정국 주도권 다툼의 연속이었다. 대화와 타협의 협치는 실종됐고 대결과 충돌로 늘 긴장감이 흘렀다. 여야의 힘겨루기에 국회는 파행되기 일쑤였다. 당연히 생산성은 떨어졌다. '일하는 국회'는 헛구호에 그쳤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자초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21대 국회는 출발부터 심상치 않았다. 180석의 '공룡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정부 부동산 정책을 입법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통과를 주도했다. 임차인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가 포함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2년의 기본 임대 기간에 2년 한 차례 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2+2' 방식의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고, 갱신 시 임대료 상승 폭을 기존 임대료의 5%로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법안 처리 과정에서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거세게 반발했다. 과도한 재산권 침해의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공급 부족 현상에 따른 전세 대란과 임대료 상한에 따른 최초 전세가가 높게 책정될 것이라며 부작용도 우려했다. 실제 부동산 시장의 혼란과 왜곡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시행 1년 뒤인 2021년 7월 민주당에서도 불평등한 계약관계를 개선하는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야 간 논의는 흐지부지된 상태다. 오는 7월 이후 4년(2+2년) 만료 계약 전 법 개정 가능성은 작다.

2022년 4월 27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수완박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가결된 이후 언쟁을 벌이는 여야 의원들. /국회사진취재단

2022년 정권교체기에 벌어진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분리)'은 정국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민주당은 그해 4월 30일 검수완박의 두 가지 법안 중 하나인 검찰청법을 강행 처리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 수사 대상 범죄를 기존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범죄로 축소하는 내용이다. 국민의힘은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 나섰지만, 민주당은 살라미 전술(회기 쪼개기)로 무력화시켰다, 사흘 뒤 민주당은 검찰의 별건 수사를 제한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처리했다.

사회적 합의나 토론 등 공론화는 부족했다. 대신 꼼수가 등장했다. 국민의힘의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여야 간 쟁점 법안을 최장 90일 논의하도록 한 국회 숙의 기구) 소집을 무력화하려는 민주당 소속 의원의 위장 탈당 논란이 컸다. 민주당이 최근 '채 해병 특검법'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때는 지금과 180도 달랐다. 국민의힘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향해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국회의장과 면담하려는 야당 의원들과 의장실 관계자들이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뒤바뀐 여야의 대치는 계속됐다. 그해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두고서도 부딪혔다. 야권은 신속한 국조를 요구했고, 여당은 '선(先)수사'를 주장했다. 여야가 협의 끝에 국조특위를 가동했지만 조사 기간 이후 연장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 2일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 등을 위한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1월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여야가 합의사항을 반영해 쟁점을 해소한 결과였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지난해 2월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헌정사 최초다. 그러나 이 장관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으로 167일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더팩트 DB

경제 산업을 위한 입법도 이번 국회의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 국가전략기술분야 지원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지난해 3월 국회 문턱을 넘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여야가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8%에서 15%로 높이는 정부안을 민주당이 수용했다. 아울러 국회는 첨단모빌리티 활성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법안과 중견기업을 지속해 지원하기 위해 법률의 유효기간을 삭제한 중견기업특별법도 의결했다.

여야의 소모적인 정쟁은 쟁점 법안이나 국가적 재난에 국한되지 않았다. 정부를 겨냥한 민주당의 파상공세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21대 국회 후반기는 시끄러웠다. 과반 의석을 가진 야당은 입법을 주도하고 수적 열세인 여당이 끌려다닌 결과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이태원참사특별법, 쌍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때마다 국민의힘은 '입법 폭주' '의회 폭거'라고 비판하고, 민주당은 오만과 불통의 대통령이라고 각을 세웠다. 야당은 합의되지 않은 쟁점 법안을 상임위에서부터 본회의까지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고 여당은 표결에 불참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언근 전 부경대 초빙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대통령은 헌법상 권한인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조금 빈도가 잦다"라면서도 "대통령이 여야가 합의해 처리하지 않은 법안을 받아들이지 않다는 것을 잘못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전체적으로는 소모적인 정쟁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번 국회도 탄핵과 방탄 국회라는 오점을 남겼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등 외교 실책을 명분으로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2022년 9월)을 가결한 데 이어 이태원 이태원참사의 책임을 묻고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단독 통과(2023년 2월)시켰다.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은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았다.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사퇴했다. 민주당은 방송 장악을 이유로 탄핵을 추진했다.

지난해 9월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상정된 모습. 당시 백현동 개발 특혜 및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이새롬 기자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도 여전했다. 2022년 12월 뇌물·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노웅래 민주당 의원과 이듬해 6월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관련 윤관석·이성만 무소속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하영제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과 대조됐고,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힘뿐 아니라 야당인 정의당도 민주당을 비판했다. 지난해 9월 백현동 개발 특혜 등 의혹을 받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부결을 호소했음에도 당내에서 무더기 이탈표가 나와 두 번째 체포동의안을 피하지 못했다. 장기표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는 통화에서 "불체포 특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약속한 여당과 이 대표처럼 약속은 그때뿐"이라며 "22대 국회도 이번 국회처럼 헌법상 불체포 특권이 행사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실상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까지 여야는 전쟁을 치를 전망이다.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여야의 합의가 없더라도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탈표를 막기 위해 내부 표 단속에 신경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반드시 이번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일부 수정한 양곡관리법과 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예우를 위한 민주유공자법 등 쟁점 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공전을 거듭한 21대 국회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하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국회가 문재인 정부 때는 부동산 문제, 윤석열 정부 때는 소득 등 경제 양극화와 구조 개혁, 민생 안정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 윤리 강화를 위한 노력도 부족했다.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코인) 문제와 일부 의원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징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22대 국회는 윤리 강화와 민생을 더욱 신경 쓰고 노력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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