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오로라, 우주로부터 지구가 보호받고 있다는 증거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2024. 5. 2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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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2일 강원도 화천에서 오로라가 관측되었다. 일반적으로 오로라는 북극권이나 남극권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니만큼 무척 이례적이었다. 오로라의 원인은 태양풍(太陽風)이다. 태양에서 방출된 고에너지 입자로 이루어진 태양풍은 지구 자기장이 대부분 막아내지만, 일부가 극지방으로 모여 대기와 충돌하며 오로라가 발생한다. 오로라가 중위도나 저위도까지 내려왔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태양풍이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로라가 관측된 것은 21년 만으로, 저위도 지역인 미국 남부에서도 오로라가 보였다. 그런데 오로라는 단순한 천문 현상이 아니다. 지구를 둘러싼 자기장이 태양풍에서 지구를 잘 보호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픽=송윤혜

태양풍의 강도는 평균 11년 주기로 많아졌다 적어지는 태양 흑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태양 흑점 활동이 최대가 되는 것을 극대기라고 하는데, 스위스 천문학자 루돌프 울프가 1755~1756년에 관측된 극대기를 제1주기라고 한 이후, 현재는 2025년에 있을 25번째 극대기로 가는 시점이다. 태양풍은 높은 에너지 입자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지구에서 전자기파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참고로 혜성이 태양에 근접할 때 태양 반대편으로 형성되는 긴 꼬리도 태양풍이 만들어낸 것이다. 관측 기록상 가장 강력한 태양풍은 제10주기였던 1859년이다. 당시 상황을 관측한 영국의 천문학자 리처드 크리스토퍼 캐링턴의 이름을 따서 이를 ‘캐링턴 사건’이라고 한다. 지구 전역에서 강력한 자기폭풍이 관측되었고, 심지어 쿠바나 하와이에서 오로라가 관측되기도 했다.

강력한 태양풍으로 발생하는 자기폭풍은 지구에 심각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2003년 불어닥친 제23주기 태양풍은 강했다. 국제 우주정거장에 있던 우주인들은 안전한 위치로 대피했고, 운행 중인 상당수 비행기가 항로를 변경했다. 인공위성 상당수가 궤도를 잃어 다시 복구하는 데 큰 노력이 들었고, 또 일부는 실종되었다. 지상에서는 스웨덴에 정전이 발생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변압기가 파손됐다.

2022년 2월에는 스페이스X가 발사한 위성 49기 중 40기가 태양풍으로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지난 5월 11일 하와이에서도 오로라가 관측되었는데, 이는 1859년 캐링턴 사건 이후 165년 만의 일이라 이번 25주기 태양풍 역시 상당히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아직 지상에서 큰 피해가 보고되지 않았지만, 흑점 활동의 극대기가 2025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태양풍의 발생은 수 분 내로 관측이 가능하고,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수 시간 혹은 여러 날이 걸리므로 기상청에서는 날씨 예보와 마찬가지로 우주 기상에 대해서도 예보와 특보를 발표한다.

흥미로운 것은 100년 전 우리 신문들도 태양풍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점이다. 1927년 10월 18일 조선일보는 도쿄에 통신기기가 마비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보도한다. 신문은 그 원인이 11년 주기로 활동하는 태양 흑점의 영향으로 발생한 자기폭풍이라며, 이러한 자기폭풍은 태양에서 방출된 전기 입자가 만드는 오로라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굉장히 정확한 이해이다. 지구에 부딪히는 고에너지 입자는 태양풍만 있는 것이 아닌데, 이 역시 100년 전 우리 신문들이 보도했다.

1911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빅토르 프란츠 헤스(Victor Franz Hess)는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며 대기의 이온화가 증가하는 것을 관찰한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증가한다는 것은 지구 바깥에서 강한 에너지가 오고 있다는 의미이다. 처음에는 이를 태양풍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지만, 태양에서 발생한 에너지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라는 것이 알려지자 이를 ‘우주선(宇宙線, cosmic ray)’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936년 3월 25일부터 조선일보는 4회에 걸쳐 우주선에 관한 최신 연구를 상세히 소개하며 우주선의 근원은 태양계를 훨씬 벗어난 “멀고 먼 성간(Interstellar Space)”에서 오는 것이라며 ‘인터스텔라’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그해 말 헤스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인터스텔라에서 날아오는 엄청난 에너지 입자의 근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대 과학은 조금씩 그 신비를 풀어내고 있다. 아마도 초신성이나 태양보다 훨씬 큰 천체가 폭발하면서 분사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 우주선을 막아주는 것이 태양풍이다. 2018년 11월, 보이저 2호가 태양계를 벗어났다고 NASA가 발표한 근거가 바로 태양풍과 우주선이다. 태양의 영향이 끝나는 지점에서 태양풍 입자들은 급격히 줄고, 대신 우주선이 늘어난다. 따라서 태양계의 범위는 태양풍이 미치는 영역이다. 주목할 점은 태양계의 바깥에 태양풍과 우주선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 2019년 보이저 2호는 무려 수만 도에 이르는 온도로 형성된 이 플라스마 보호막을 관측했다.

이처럼 태양풍은 성간우주에서 날아오는 강력한 우주 방사선에서 태양계를 보호한다. 동시에 지구 자기장은 태양풍에서 지구를 보호한다. 자기장이라는 방어 장치가 없다면 태양풍은 지구 대기를 우주로 밀어냈을 것이다. 화성에 대기가 없는 이유는 화성의 중력이 작기도 하지만, 화성의 자기장이 지구 자기장의 1/800에 불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구의 생명체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우주의 과학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아름다운 오로라를 보면서, 지구 자기장이 우주로부터 지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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