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헤어질 결심, 안전한 이별은?

이지은 2024. 5. 2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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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다 14회 Ⅰ] 헤어질 결심, 안전한 이별은?

얼마 전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아직도 옥상으로 나가는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20대 의대생이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현장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잔혹하게 살해한 20대 의대생.

대입 수능 만점자 출신의 의대생은 왜 전 여자친구를 살해했을까?

경찰에 호송되는 의대생 최 모 씨


자신과 만나던 여자친구를 살해한 남성들, 그들에게 안타깝게 목숨을 빼앗긴 여성들.

이들과 한때 만났던 여성들은 잔혹한 범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지난해 서울 금천구 교제 살인 현장

故 이효정 씨 / 교제 폭력 피해자
엄마, 엄마, 엄마

故 이효정 씨 어머니
왜? 말을 해

故 이효정 씨 / 교제 폭력 피해자
엄마, 나 빨리 앞으로 와줘.

故 이효정 씨 어머니
무슨 일 있어?

故 이효정 씨 / 교제 폭력 피해자
○○이가 나 때렸어.

故 이효정 씨 어머니
또 ○○이랑 있어?

故 이효정 씨 / 교제 폭력 피해자
○○이가 나 엄청 때렸는데 나 여기 문제 생겼어

- 지난 4월 1일 故 이효정 씨 통화 녹음 -

통화 이후 딸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엄마와 아빠 모습

故 이효정 씨 어머니
쟤가 없다는 게 진짜 믿어지지가 않아요. 없는 게 맞나? 지금 저렇게 사진 속에 있는데 내 옆에 없는 게 맞나

딸이 엄마에게 말했던 이름, 딸이 고등학교 때 만났던 전 남자친구였습니다.

딸 주변에 전 남자친구가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딸에게 폭언을 했다는 남자친구.

부모는 몇 번이고 헤어지라고 말했었습니다.

故 이효정 씨 어머니
걔가 욕을 그렇게나 많이 했답니다. 걔 욕 진짜 잘하거든요. 효정이 막 울고 있고 내가 가니까 또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있고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故 이효정 씨 아버지
'효정아 아빠가 노파심에 물어보는데 행여라도 또 ○○이 만나는 거 아니지' 하면 '아니에요. 아빠 나 헤어졌어요.'라고….

언어 폭력은 교제 폭력이 본격화되기 전에 나타나는 행태입니다.
배상훈 / 프로파일러
처음의 경우는 보통 큰 소리 그러니까 일종의 언어적인 걸로 시작하죠. 그런데 그게 차츰차츰 이게 아니라 툭 튀어나갑니다. 그래서 갑자기 한 대를 심각하게 때리면서 그러고 내가 널 사랑해서야라는 쪽으로 합리화를 시키죠. 이게 가스라이팅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두 대 때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헤어진 줄 알았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간호사를 꿈꾸며 대학에 합격했지만 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故 이효정 씨 아버지
이 친구가 대학교 하향 지원을 해가지고 딸 대학교에 지원을 했다는 거예요. 갑자기 이제 소름이 확 끼쳤죠.

故 이효정 씨 어머니
항상 멍이 있었어요. 그리고 까져 있는 것도 있고 근데 물어보면 맨날 넘어졌다 그러고
주로 얼굴 아니면 뺨을 때리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그 다음에 애를 머리 끄덩이 들고 집어 던지고 ….

효정 씨는 왜 남자친구의 잦은 폭력을 부모에게조차 숨기려 했을까?
이은의 / 성폭력 사건 전문 변호사
이거를 누군가한테 말하려면 수치심을 극복해야 해요. 남들은 다 사랑하는 관계, 존중하는 관계인데 나만 그런 관계에서조차 폭력을 당하는 사람이라는 거를 입 밖으로 내가 꺼내놓아야 하는 거에요. 이게 쉽지 않아요. 피해자들이 이 말을 누군가에게 하기까지 되게 시간이 걸립니다.

지난 4월 1일 아침, 잠에서 깬 효정 씨 어머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故 이효정 씨 / 교제 폭력 피해자
여보세요.

故 이효정 씨 어머니
얼마나 맞았어?

故 이효정 씨 / 교제 폭력 피해자
많이.

故 이효정 씨 어머니
그 애는 어디갔어 지금?

故 이효정 씨 / 교제 폭력 피해자
옆에 있어. 나 자는데 갑자기 찾아와서 때렸어.

- 지난 4월 1일 故 이효정 씨 통화 녹음 -

이후 경찰 조사에서 헤어진 남자친구 김 씨는 효정 씨 자취방에 들어와 자고 있던 효정 씨를 1시간가량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효정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뇌출혈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입원 치료 열흘 만에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교제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들은 그 순간 어떤 상태일까?

배상훈 / 프로파일러
이 여성이 잠을 자고 있는데 집에 침입해서 갑자기 자는 여성을 심각하게 거의 죽을 정도로 때렸어요.

그러니까 그런 감각이 없다고 본인의 손에 감각이 사라진다고 해요. 피해자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사정을 하고 잘못했다 그랬다고 합니다. 잘못했다고 하면 그래 잘못했으니까 맞아야지 또 때리는 거죠. 이게 두 가지가 상승 곡선, 꽈배기 상승 곡선을 그린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미 그때 되면 이미 늦죠.

딸이 떠나고 나서야 이런 폭행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수차례나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던 딸.

하지만 남자친구는 딸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문을 열라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숨지기 전 효정 씨는 경찰에 12차례나 신고를 했지만 끝내 남자친구의 폭행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할 때마다 연인 간 사소한 다툼이나 쌍방 폭행으로 흐지부지되기 일쑤였습니다.


故 이효정 씨 아버지
자 앞으로 너하고 이제 헤어졌어 안 만날 거야 했는데 그게 하루 이틀도 못 가 그러다 보니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아.

故 이효정 씨 어머니
남자가 그래 나를 그렇게 막 때려 때리다가 내가 뭐 하나 이런 거 한 개 들고 이렇게 때리면 이런 거는 쌍방 폭행이라고 보면 안 된다고 봐요. 정당방위 나를 보호해야 되잖아요.

교제 폭력을 개인 간의 문제로 치부하는 우리 사회 인식이 범죄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배상훈 / 프로파일러
'이거는 별거 아닌 폭력이야 연인 사이에 이럴수도 있어. 굳이 앞길이 창창한 사회생활하는 남자를 왜 처벌해야 해' 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의 교제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을 떠받히고 있는 근거죠.

지난 8일 한 여성의 SNS 계정에 짤막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동생이 남자친구가 휘두른 흉기에 살해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족들의 고통을 이해해달라는 당부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의대생 살해 피해자 유족 SNS 게시글


여자친구를 만나자며 불러내 옥상에서 살해한 최 모 씨.

이 남성은 대입 수능 만점자 출신으로 현재 서울의 한 의대 재학생으로 확인됐습니다.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의 말에 최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했고 이를 막으려던 여자친구가 그만 희생됐습니다.

배상훈 / 프로파일러
이 사건은 가해자의 신상 때문에 언론에 많이 보도됐을 뿐이지 보통의 교제 폭력 살인과 크게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자살을 시도했다는 둥 아니면 다른 어떤 액션을 취했다는 것은 수사적으로 고민해 봐야할 부분이지 다른 어떤 특이점이 아주 특별한 사건은 아닙니다.

피해자는 이미 이별을 통보한 지 꽤 됐어요. 사실은 연인관계는 아니에요. 이미 헤어진 그런데 이제 이 가해자는 그것에 대한 지속적인 미련,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시켜달라는 지속적인 폭력적 요구를 해온 것이죠.

지난 1년 동안 교제 중이거나 이미 헤어진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은 알려진 것만 49명.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요구했던 게 범행의 주된 동기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요인이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이은의 / 성폭력 사건 전문 변호사
보통 폭력이 이제 다툼이든 둘 사이의 관계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폭력적인 행위들이 있었던 관계에서 그 다음 단계라는 게 생기는 거예요. 정말 한 번도 안 그러다가 헤어지자고 했더니 이런 상황이 생겼어요. 저는 이런 사건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배상훈 / 프로파일러
심리적으로 상당히 특별한 성향일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오차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말하자면 교제 폭력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자존감이 낮고 그리고 자신을 무시하고 소유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에 대한 반복적인 내적 폭력성이 발현됐다 이렇게 보는 게 맞거든요. 의대생, 수능 만점자라는 후광효과에 가려져 그거를 못 본 거죠. 다른 사람들이.

남녀의 만남, 비극으로 끝나기 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난해 교제 폭력으로 신고된 사건은 7만 7천여 건, 3년 전보다 57%가량 늘었습니다.


이은의 성폭력 사건 전문 변호사
교제 폭력 자체가 늘어났다기보다 신고를 하는 어떤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나. 빨리 신고하고 차단하고 나를 보호하는 게 필요하다는 인식도 늘어난 걸로는 보여요.

교제 폭력 신고자 대부분은 여성들입니다.

하지만 폭력을 신고하는 것만으로는 극단적 상황을 막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지난 2년동안 교제폭력에 대해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150여 건의 교제폭력 관련 판결문을 들여다봤습니다.

교제폭력으로 기소된 가해자에게 법원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77번 선고했습니다.

156건의 교제폭력 판결의 절반에 가깝습니다.


'반성하고 있다', '피해자와 합의했다', '초범이다'는 점 등을 판결에 고려했다고 써있습니다.

또, 가해자가 주의력 결핍장애로 감정조절이 어려웠을 것이라며 심신미약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전과가 있거나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이은의 / 성폭력 사건 전문 변호사
'내가 너 몇 대 좀 쳤다고 내가 뭐 이렇게 세게 처벌받지 않아' 라는 게 또 학습이 돼요. 그렇다라고 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이 적정한 형량을 부과하고 있지 않다.

교제 폭력으로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

지난 2021년 스토킹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은의 / 성폭력 사건 전문 변호사
스토킹 처벌법이 마치 데이트 폭력이나 교제 폭력을 다 포함하는 법으로 착각하는 게 있는 거예요. 데이트 폭력의 어떤 한 일환으로 교제 폭력의 한 일환으로 스토킹이 있을 수 있죠. 그런데 모든 교제 폭력이 스토킹은 아니잖아요. 이미 교제하고 있는 관계인데 교제하는 동안에 스토킹을 한다라는 건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교제 폭력은 스토킹 처벌법만으로 이걸 의율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인터넷의 한 카페.

남자친구들과 어떻게 헤어지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몰래 이사하기, 큰 돈 요구하기 등 잇따르는 폭력이나 끔찍한 사건들을 염두에 둔 방법들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이은의 / 성폭력 사건 전문 변호사
이사를 가라고요? 회사, 학교 어떡할 거죠? 내 가족은? 나만 나가면 되나. 가족에게 위해를 끼치면 가족이 다 이사를 가야 되나요?

배상훈 / 프로파일러
그걸 그런 식으로 어설프게 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진짜 그건 큰일 납니다. 왜냐 숨기는 것 자체가 그 가해자한테는 일종의 협박 수단이기 때문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배상훈 / 프로파일러
몇 가지 원칙은 있습니다. 알려라. 가족이든 가해자 가족, 피해자 가족, 본인 가족 다 알려라. 최소한 이 정도 10명 이상한테 친구들한테도 다 알려라.

무엇보다 상대방이 폭력적 행동을 처음 보였을 때 관계를 신속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배상훈 / 프로파일러
자기 분을 못 이겨서 벽을 치면 반드시 헤어지라고 합니다. 자기 얼굴로 올 거라고 그 주먹은. 그래서 거기가 기준점입니다.

이은의 / 성폭력 사건 전문 변호사
우리가 자꾸 사회적으로 뭔가 이 상대방이 한 폭력을 실수처럼 받아들이고 이 사람을 잘 보듬어주면 이 폭력 마저도 계도할 수 있는 것처럼, 변화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데 그거는 굉장히 잘못된 접근이다.

효정 씨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전 남자친구 김 모 씨가 지난 20일 결국 구속됐습니다.

김 씨는 이날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법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효정 씨 유가족은 김 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故 이효정 씨 아버지
법이 허락하는 한에서 최대한의 처벌을 통해 가해자에게 그의 행동이 가져온 유가족의 아픔과 딸의 슬픔을 명확히 인식시켜주시길 바랍니다.

효정 씨 가족은 긴 법정 싸움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창원지법 통영지원 앞 피해자 유가족 기자회견

故 이효정 씨 어머니
이거는 아빠가 백화점에서 사준 건데 그때 이거 되게 예뻤었거든요. 이거 태워주려고요.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교제 폭력, 반복되는 희생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배상훈/ 프로파일러
개인이 개인을 통제 못합니다. 사회적으로 처벌을 하고 가둬두고 치료를 강제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과거에 부부 간의 강간을 인정하는 판결에서도 아무리 친밀한 관계에서도 특정한 폭력적인 수준을 넘어설 때는 공적인 것이 개입돼야 한다고 보 법률적으로 정했고 사회적 합의가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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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writte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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