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노인과 바다'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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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인에 사는데 소년기를 보낸 부산이 고향이다.
가끔 부산에 가는데 지난해 친구들은 엑스포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부산역에서 부산항터미널로 이어진 다리에는 포스터가 줄지어 붙고 택시 기사들도 "득표를 위해 초청한 아프리카의 장관들을 태웠다"고 들떠 있었다.
엑스포 유치가 무산되고 올해 두 개의 장면이 부산의 처지를 말해주는 듯해서 친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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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인에 사는데 소년기를 보낸 부산이 고향이다. 가끔 부산에 가는데 지난해 친구들은 엑스포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부산역에서 부산항터미널로 이어진 다리에는 포스터가 줄지어 붙고 택시 기사들도 “득표를 위해 초청한 아프리카의 장관들을 태웠다”고 들떠 있었다.
엑스포 유치가 무산되고 올해 두 개의 장면이 부산의 처지를 말해주는 듯해서 친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테러를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중상은 아닌 데도 곧장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것. 그리고 유세 중이던 한동훈 국민의힘 위원장 앞에 ‘노조 사람들’이 나타나 “산업은행이 왜 부산에 가야 하는데!” 하고 시위를 벌인 일이다. ‘노조’ 하면 진보주의를 떠올리는 나로서는 뜻밖의 일이었다.
부산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내가 자라서가 아니다. 제2의 도시로서 지방소외 시대를 대변하는 것 같아서다. 친구들은 부산을 ‘노인과 바다’라고 한다. “시내에는 주로 노인이 오가고 보이는 건 바다뿐”이라는 뜻이다.
부산은 지난 세기만 해도 국제상사 동국제강 동명그룹 같은 재벌급 기업이 있었다. 지금은 100대 기업에 하나도 들지 못했고, 1,000대 기업으로 넓혀야 28곳이 있다고 한다. 그 무렵 부산대는 “서울대 다음의 국립대”였는데 연세대나 고려대에 갈 친구들이 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말이 무색하다. 이러니 부산에서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썰물’이 이는데 지난해 옮긴 1만1,260명 중에 67%가 2030세대라고 한다. 부산에서 법원장을 지내고 변호사가 된 선배는 “기업이 없어서 소송도 없다. 로스쿨을 나오면 서울로 많이 가는데 사내 변호사 자리가 있어서다”고 했다.
수도권 집중은 지금 시대가 서울이, 지방이 아니라 도쿄 상하이와 경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워싱턴이 수도인데 뉴욕이 잘나가고, 파리 베를린 캔버라가 있는데 마르세유 함부르크 시드니가 유복한 경우는 왜 그런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동안 부산에서 나온 그 숱한 시장과 국회의원들은 다 뭘 한 것인가?
부산 하면 떠오르는 인물 셋을 들라면 마운드에서 산화한 최동원 투수, 아프리카에서 순교한 이태석 신부, 일본에서 희생한 이수현 의인을 꼽는다. 선이 굵은 상남자들이다. 이런 인간미와 선선한 날씨 때문인지 통계를 보면 부산을 떠난 청년의 73%가 “일자리만 있으면 부산에 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1톤 트럭에 세간을 싣고 서울로 와 짐을 푸는 아가씨가 “부산에는 저희가 일할 데가 없어예. 제가 지금 웃어도 웃는 게 아이라예” 하다가 글썽이는 다큐를 보면 마음이 짠하다. 부산이 이러니 광주 목포 전주 대구 다른 곳은 말해 무엇 하겠나.
부산을 ‘노인과 바다’라고 할 때는, 헤밍웨이가 그린 산티아고 노인이 큰 청새치를 잡았지만 밤새 상어에게 다 뜯기고 뼈만 데리고 돌아온 쓸쓸함이 배 있다. 변호사 선배는 부산의 미래에 대해 “막막하다”고 했다. 부산은 얻을 수 있었던 많은 기회를 어느 결엔가 뺏기고 만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부산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된 ‘친구’에서 동수(장동건)가 숱하게 칼에 찔려 가며 호소한 마지막 말은 이 시대 부산 자신의 목소리인지 모른다. “…고마해라…마이 무따 아이가. (그만해라. 많이 먹었잖아)”라는 말이 애잔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권기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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