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변화와 성장… 인간적 공감·배려로 ‘장애 ’ 허문다

이강은 2024. 5. 2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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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무대 뜨겁게 달구는 장애인 배우들
다운증후군 켈리의 삶 그린 ‘젤리피쉬’
무용수 출신 백지윤, 당찬 여주인공 연기
장애인 배우 권리 투쟁 그린 ‘인정투쟁…’
하지성 등 초연 배우 7명 중 6명 무대위
원작 주요 독백 수어·판소리로 푼 ‘맥베스’
농인 배우 연기 소리꾼의 음악으로 전달

영국의 작은 바닷가 도시에 사는 엄마 아그네스와 딸 켈리는 15년 동안 매일 산책로를 함께 걸었을 만큼 친밀하다. 다운증후군 딸에게 “너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극진히 돌봐 온 아그네스의 사랑과 헌신 덕분이다. 하지만 어느덧 27살이 된 켈리가 비장애 남성 닐과 사랑에 빠지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아그네스는 닐을 위험인물로 여겨 둘이 사귀는 걸 반대하고 켈리에게 장애인 도미닉을 새 남자친구로 소개한다. 엄마의 편견과 간섭에 실망하고 반발한 켈리는 결국 집을 나가 버리고 닐과 아이까지 낳아 기른다.

국내 첫 장애예술인 표준공연장인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22∼28일) 연극 ‘젤리피쉬’는 다운증후군 여성 켈리와 주변 인물이 겪는 삶의 변화와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다운증후군, 저신장·중증·청각 장애 등 다양한 장애인 배우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중요한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작품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다운증후군 배우 백지윤이 출연한 연극 ‘젤리피쉬’의 한 장면.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영국 극작가 벤 웨더릴이 글을 쓰고 2018년 영국 런던 부시 시어터에서 초연된 후 이듬해 영국 국립극장 등에 공연되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실제 다운증후군 배우가 켈리 역을 맡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공연제작사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이 손잡고 작품 개발 쇼케이스(시범 공연) 형식으로 올린 이번 무대에서도 다운증후군 무용수 출신인 백지윤이 발탁돼 켈리를 연기했다. 백지윤은 ‘프롬프터’(배우가 대사를 놓치거나 까먹었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무대 밖에서 대본을 읽어 주는 사람)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당차고 독립적인 켈리를 자연스레 연기했다. 직접 내한해 본 개막 공연에 만족감을 표시한 웨더릴은 다음날 언론 인터뷰에서 “장애를 가진 분들의 사랑 이야기나 장애가 있는 분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무대가) 더욱 특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젤리피쉬’엔) 장애인분들도 비장애인처럼 자유와 사랑을 원하고 존중받기를 원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 정수영과 김바다가 각각 아그네스와 닐 역을 맡아 열연했다. 도미닉 역은 정신장애인으로 설정된 원작과 달리 저신장 장애 배우 김범진의 몫이었는데 맛깔스러운 연기로 관객 웃음을 유발했다.

‘젤리피쉬’ 외에도 장애인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 잇따라 관객과 만난다. 이들 작품은 제작·공연 과정에서 장애인 배우와 관객이 출연하고 관람하는 데 최대한 어려움이 없도록 신경 썼으며, 장애 유무와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인간적인 공감과 배려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2019년 초연 당시 중증장애인 배우가 출연하고 호평을 받았던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는 28일부터 6월15일까지 스페이스111에서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을 공연한다.

‘인정투쟁’이란 인간 주체 사이의 사회적 투쟁과 갈등을 ‘인정을 둘러싼 투쟁’으로 바라보고 상호성을 강조해 인간과 사회를 성찰하는 개념이다. 극작가 이연주가 쓰고 연출해 2019년 초연한 이 작품은 예술가로서 권리가 부정당한 장애인 배우들의 투쟁을 다루면서 한국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도 상기시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초연 무대에 섰던 장애인 배우 7명 중 세상을 떠난 강희철 외에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연기상을 받은 하지성 등 6명이 다시 출연한다. 한 예술가의 여정을 통해 무대와 객석, 예술가의 권리 획득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까지 곱씹게 한다.

초연 때와 달리 이번에는 열린 무대를 지향해 객석 중앙에 무대를 뒀다. 관객은 다양한 높낮이의 4면 객석에서 걷거나 바닥을 구르는 배우 및 휠체어 바퀴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국립극장이 셰익스피어의 동명 원작을 재창작한 연극 ‘맥베스’ 출연진. 국립극장 제공 제공
국립극장이 6월 13∼16일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할 연극 ‘맥베스’에는 농인 배우 6명이 소리꾼 4명과 함께한다. 셰익스피어 원작 ‘맥베스’ 속 주요 독백을 수어와 판소리로 풀어내며 현대 정육점과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원작의 주요 독백을 16개 장면으로 연결한 뒤 농인 배우들의 연기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이미지와 소리꾼들의 음악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농인 배우 6명 중 5명이 여성으로 맥베스 등 원작 속 남성 인물들을 연기한다. 소리꾼들(김소진·김율희·이승희·추다혜)은 농인 배우들의 연기를 노래로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해설자 역할을 맡는다. 등장인물 모두 중간에 퇴장하지 않은 채 서로 죽고 죽이면서 무대 위에 쌓이고, ‘죽기 전까지 내려갈 수 없는 인생이라는 무대’를 만들어간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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