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도움 필요한 아이들의 보루가 돼야죠”

전지현 기자 2024. 5.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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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전담 공익변호
‘온마을로’ 참여 변호사들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24일 열린 ‘온마을 반상회’에서 강정은 변호사(왼쪽) 등 참석자들이 아동·청소년 권리옹호활동을 공유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사비 털어 소년사건 맡는 건 한계
삼성생명 등 후원으로 활동 숨통
학대·폭력에서 주거·교육권까지
다양한 문제 풀 시스템 만들어야

아이들은 태어나서 자란다. 운이 좋은 아이는 성인이 되기까지 ‘법 없이도’ 살아간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이주배경 아동 중 일부는 한국에서 태어났는데도 부모의 체류자격 문제로 출생신고에서부터 애를 먹기도 한다. 보호자로부터 방임·학대를 당하는 아이들도, 범죄에 연루돼 가·피해자가 되는 아이들도 있다.

아동·청소년 사건을 전담으로 공익변호 활동을 하는 강정은 변호사(40)는 “해야 할 일은 넘쳐나는데, 함께 활동할 동료가 없다”는 게 고민이었다고 한다. 사회적 발언권이 약하고 아직 투표권도 없는 아동·청소년이 법적으로 겪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다.

강 변호사가 속한 ‘사단법인 두루’가 삼성생명·사회복지공동모금회 후원을 받아 ‘아동·청소년 인권옹호 생태계 조성을 위한 법률지원사업: 온마을 LAW’(온마을로) 사업을 2022년 5월부터 시작한 이유다.

‘온마을로’는 아동·청소년 권리옹호 활동을 하는 변호사에게 활동비를 지급하는 3개 연도 사업이다. 지금껏 변호사 52명이 참여했다. 이 사업이 있기 전 공익변호를 전업으로 활동하는 변호사 150여명 중 아동·청소년 분야는 10여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권리옹호 활동 446건이 진행됐고, 아동·청소년 349명이 법률지원을 받았다.

‘온마을 변호사’들은 부모의 방임으로 초중고 교육을 받지 못한 청소년 임영화씨(가명)를 대리해 8세 때 이미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으나 국가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국가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두루는 이 사건이 아동학대 피해에 대해 국가와 공공기관의 책임을 소송으로 물은 첫 사례라고 했다.

강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사건에서 변호사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이 당사자와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제든지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어른 중 한 명이라고 느낄 수 있게 다가가려 하지만, 아이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아동과 관련한 법률 문제는 아동의 탓인 경우는 거의 없는데도,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고를 지레 포기하거나 만나기로 했다가 나타나지 않는 일도 잦다”고 했다. 용기를 낸 아동·청소년이 법정에서 증언해야 할 때엔 “피해자로서 진술하는 것은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과정이며, 느끼고 겪었던 일을 잘 말하면 된다”고 다독인다고 했다.

온마을로의 재정적 지원은 변호사들에게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는 숨통이 되었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2차 연도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열린 ‘2024 온마을 반상회’에 참석한 한 변호사는 “제 사비와 시간을 들여 소년사건을 맡다가 더는 힘들어서 못하겠다 싶을 때 사업 지원을 받았다”며 “덕분에 맡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날 모인 변호사들은 아이들에게 ‘학교’와 ‘가정’ 이외에 믿을 수 있는 다양한 거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에서 활동하는 정훈태 변호사는 “지역아동센터나 마을공동체처럼 아이들이 범죄에 빠지거나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다양한 보루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비서울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그런 공간이 더 적다는 게 고민”이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변호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출생등록, 아동학대와 성폭력, 성착취 등 폭력, 탈시설과 주거권, 교육권 등 다양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시스템을 함께 만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사단법인 두루는 27일까지 온마을 변호사 3기 지원자를 모집한다. 3기에는 비서울 지역에 대한 지원·관계기관과의 연계 활동을 늘리고 유엔 고문방지위원회 대한민국 심의 대응 등 국제연대 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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