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차등 아닌 차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시행될까

허시언 기자 2024. 5. 2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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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 결정 위한 심의 시작
최저임금 차등적용 주장 또다시 제기
"업종·연령 등 따라 최저임금 낮추자"
"차별 시작하면 끝없이 차별하게 돼"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국제신문에 입사하기 전 음식점, 편의점, 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중 근무시간 대비 편의점이 제일 벌이가 적었죠. 최저임금이 정해져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요? 점주들이 하나같이 “편의점은 최저임금 안 챙겨줘요”라며 적은 월급을 줬거든요. 그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일을 했지만요, 지금은 똑같은 시간을 들여 노동을 하는데 ‘특정 업종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더 적은 돈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난 2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할 최저임금위원회 첫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가 지난 21일 시작된 가운데, 최저임금 차등적용 여부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지금까지 최저임금은 국적, 나이, 업종, 지역 등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똑같은 금액을 적용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는 노동자가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 2024년 기준 최저임금 9860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최저임금법에는 ‘업종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르게 줄 수 있다’고 명시돼있긴 하지만, 노사 이견으로 인해 실제 차등적용된 사례는 최저임금 제도가 처음 시행된 1988년 딱 한 번뿐이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적용하자는 주장이 또다시 제기됐습니다.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한 요구는 이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었습니다. 일의 종류나 사업 규모에 따라 사업주의 임금 지급 능력이 떨어지는 업종은 최저임금 문턱을 낮춰 주자는 것. 경영계에서는 “최저임금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지불 능력을 넘었다”며 꾸준히 차등적용을 주장해왔습니다. 지난해에는 지급 능력이 떨어지는 편의점과 택시운송업, 숙박·음식점업 등 3개 업종에 대한 차등화를 요구했지만 부결된 바 있습니다.

노동계는 상가 임대료나 프랜차이즈 가맹비, 원자재·원료비 가격 상승, 제품·서비스 수요 감소가 경영 악화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주요 원인은 외면한 채 가장 손쉽게 손댈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려 하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죠.

양대 노총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한국노총은 “최저임금을 차별의 수단으로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시대와 맞지 않는 업종별 차등적용, 수습 노동자 감액적용, 장애인 노동자 적용 제외 등 차별 조항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노총은 “최소한의 생계조차 보호받지 못한다면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최소한의 임금을 강제하는’ 최저임금제도의 의미가 사라진다. 최저임금의 기준은 사용자의 지급 능력이 아니라 노동자가 최저 생활이 가능한 임금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올해는 상황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외국인 돌봄 서비스 시행을 앞두고 최저임금 적용에 대한 이견이 있는데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을 65세 이상 노인으로 확대하자는 요구까지 나오면서 논란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서울시의원 38명이 “노인은 최저임금법 적용에서 제외하자”며 ‘최저임금법 개정 건의안’을 발표했습니다. 노인들의 구직이 어려운 상황인 만큼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도 노인 채용이 가능하도록 해 노인 일자리 활성화를 도모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하지만 비판이 커지자 노인을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게 최저임금법을 개정해달라는 건의안은 잠정 유보됐습니다. 최저임금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노인 차별을 조장한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죠.

하지만 외국인 돌봄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국내 가사도우미 임금이 홍콩이나 대만에 비해 4배 이상이라면서 돌봄 서비스 업종에 한해 최저임금을 낮추자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임금 부담을 낮추면 저출산과 고령화로 돌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윤석열 대통령도 한은 보고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면서 “내국인 가사도우미와 간병인의 임금 수준은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문제의 대안으로 “국내에 이미 거주 중인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 이민자 가족분들이 가사·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제시했죠.

노동계는 즉각 반대 의견을 내놨습니다. 한국노총은 “우리나라 돌봄 서비스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외면하고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 임시방편식 정책은 불필요한 사회 갈등과 분열을 야기할 뿐이다. 돌봄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민주노총도 “이주 노동자의 노동을 값싼 노동으로 인식해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이주 노동자를 밀어 넣겠다는 발상은 차별적이며 반인권적인 태도다. 돌봄 노동자들은 이미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노출돼 있어, 더 낮은 임금과 더 열악한 노동조건의 이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시행되면 사회적으로 취약한 일자리들이 불평등 노동시장에 내몰리게 될 것이 뻔합니다. 고령, 여성, 청년,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노동시장 취약 집단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 분명하죠. 무노조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교섭력이 없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등적용 대상을 하나둘씩 늘리다 보면 결국 모두의 임금이 하락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이란 제도가 무색해지는 일입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19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22대 총선 당선인들과 만나 “외국인, 어르신이 차별받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여성, 장애인, 청년 나아가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차별하는 비극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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