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주연상 4명 이변... 올해 칸, ‘여성주의’가 휩쓸었다

신정선 기자 2024. 5. 26. 19:5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5일 폐막한 제77회 칸 영화제에서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에 출연한 여배우 4인이 공동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왼쪽부터 아드리안나 파즈, 조이 살다나, 설리나 고메즈,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사진은 지난 18일 현지 시사회에 참석했을 때 모습이다. 가스콘은 성전환 여배우 최초로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AFP 연합뉴스

올해 칸의 선택은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 연대를 위한’ 영화였다. 25일 폐막한 제77회 칸 영화제에서 여성주의가 시상식을 휩쓸었다. 특히 여우주연상은 4명이 공동 수상하는 이변을 기록했으며, 칸 영화제 사상 최초로 성전환 여배우도 수상자에 포함됐다.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단 9명은 심사위원장인 그레타 거위그(영화 ‘바비’)를 포함해 여성이 5명, 남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4명이었다.

그래픽=이철원

올해 칸 본선 경쟁 부문에 오른 22편 중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미국 감독 숀 베이커의 ‘아노라’(Anora)가 차지했다.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콜걸 아노라가 러시아 백만장자의 아들 이반을 만나 결혼하지만 러시아 시부모가 뒤늦게 아들의 충동적인 결혼을 알게 되면서 신데렐라 동화가 악몽으로 변한다. 심사위원장 그레타 거위그는 “‘아노라’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웃게 했다가 어느새 무너뜨린다”고 소개했다. 인디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숀 베이커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30년간 꿈꿔왔던 상을 마침내 받았다”며 “이 상을 과거, 현재, 미래의 성 노동자들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아노라’는 봉준호 감독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의 해외 배급사였던 네온의 출품작이다.

영화 '아노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숀 베이커가 25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칸에서 열린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시상식 후 포토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AP 연합뉴스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은 인도의 30대 여성 감독 파얄 카파디아의 ‘올 위 이매진 애즈 라이트(All We Imagine As Light)’에 돌아갔다. 신분과 계급이 다른 여성 간호사 3명이 여행을 떠나며 겪은 애정과 상실의 파동을 다뤘다. 카파디아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가치인 여성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성으로 성전환하고 싶은 멕시코 카르텔 보스가 주인공인 영화 ‘에밀리아 페레스(Emilia Perez, 감독 자크 오디아르)’는 3등상인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을 가져갔다. 특히 여우주연상은 출연 여배우 4명(아드리아나 파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설리나 고메즈, 조이 살다나)이 공동 수상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성전환 여배우인 가스콘은 수상 인터뷰에서 “세상에는 성전환 여성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 상을 모든 성전환 여성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거위그 심사위원장은 “4명 각자일 때도 빛났지만, 그들이 함께할 때 더욱 탁월했다”고 공동 수상의 의미를 밝혔다.

나이 들어 가는 여배우에 대한 대중의 잔인한 시선을 묘파한 ‘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를 쓰고 연출한 여성 감독 코랄리 파르자는 각본상을 받았다. 할리우드 여배우 데미 무어가 주연했으며 ‘성형 시술에 대한 공포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감독상(미겔 고메스)을 받은 ‘그랜드 투어(Grand Tour)’는 영국 외교관인 에드워드가 약혼녀 몰리를 떠나 세상을 탐색하는 여행기다. 싱가포르, 오사카, 상하이 등을 떠도는 에드워드에게 몰리는 끊임없이 전보를 치며, 둘은 여정 속에서 삶의 유한함과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다. 미국 배우 제시 플레먼스는 ‘가여운 것들’의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Kinds of Kindness)’에서 사업가, 경찰관, 양성애자 등으로 열연해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올해 정치적 색채가 약했던 칸 영화제는 이란에서 망명한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을 위해 특별각본상 부문을 신설하고 그의 용기를 치하했다. 라술로프 감독은 영화 ‘더 시드 오브 더 새크리드 피그(The Seed of the Sacred Fig)’에서 이란 신정주의를 지지하는 아버지와 갈등을 빚는 10대 두 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여성과 자유주의를 강조했다. 라술로프 감독은 여배우에게 히잡을 씌우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징역 8년형과 태형, 재산몰수형 등을 선고받은 뒤 유럽으로 망명해 이번 영화제에 참석했다. 라술로프 감독은 “이란 영화인의 목소리가 전 세계인들에게 들리기를 바란다”고 소감에서 밝혔다.

올해 명예 황금종려상은 배우 메릴 스트리프, 조지 루커스 감독,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가 받았다. 이날 시상식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루커스 감독은 오랜 친구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으로부터 상을 건네받으며 “저는 캘리포니아 포도밭에서 자라다 영화를 만들게 된 꼬마일 뿐”이라며 “명예로운 상에 더없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