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쫓겨서 시작한 자영업…실패한 도박이었다

권용휘 기자 2024. 5. 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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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노후 안녕할까요…누구나 올드 푸어 <4> 자영업자 노후실격 사회


- 노후 대비책 못 세운 은퇴자 등
- 편의점·슈퍼·식당 등 창업 나서
- 과다경쟁·물가상승·펜데믹 여파
- 매출 급감에도 못 접고 추가대출

- 국회, 국민연금 체납 조사 결과
- 88만여 명 못 내…자영업자 추정
- 전문가 “폐업 후 대출 상환 연장
- 동시에 노후 지원대책 필요”주장

김덕훈(58) 씨가 10년 전 경남 창원에 있는 조선소에서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26일 부산 연제구 한 주택가에서 만난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30여 m 앞 건물을 바라봤다. 김 씨는 한 건물을 가리켰다. 왕복 2차선 도로를 끼고 있는 3층 건물로 1층에는 강아지 미용실이 있었다.

이숙경(왼쪽 사진) 씨와 조숙희 씨가 점포를 정리하는 모습. 금리·물가 상승에 고정비는 오르고 매출은 줄자 자영업자 상당수는 노후 준비를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김태훈PD


건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짙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건물 앞에 다가서자 골목길로 빠르게 꺾어 들어갔다. 그는 주저앉아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였어요.”

‘저기’에는 불과 반년 전만 해도 대기업 계열 편의점이 있었다. 회사에서 잘린 후, 방황 끝에 스스로 만든 일자리다. 경북 깡촌 출신인 그에게 ‘점빵 주인’이라는 직업도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린시절 그에게 카스테라빵 사탕 설탕 라면 하드 등 그가 원하는 모든 게 있는 점빵은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와 같은 세계였다. 그리고 주인은 그 모든 걸 가진 왕국의 군주처럼 보였다.

편의점도 그를 왕처럼 만들어 줄 거라 기대했다. 아니, 왕까지는 아니라도 노후를 유지하게 해줄 돈이 끊임없이 나올 화수분이 될 거라 믿었다. 처음에는 장사가 제법 잘 됐다. ‘1+1’ ‘2+1’ 행사 제품도 많이 확보해 단골도 꽤 생겼다. 아주 잠깐이지만 추가 점포를 낼까도 고민했다.

반년 정도 지났을까? 주변에 편의점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월 매출은 5000만 원, 4000만 원, 3000만 원, 2000만 원으로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손님은 그대로인데 가게만 늘었으니. 결국 ‘초저매출점포’로 분류돼 본사 지원도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계약 기간도 못 채우고 장사를 접었다. 가맹비와 시설투자비 등으로 투자한 적금과 퇴직금은 고스란히 날아갔다. 최후의 보루라고 하는 국민연금도 넣지 못해 노후가 막막하다. 편의점 두 곳 중 한 곳은 망한다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때 왜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먹고 살려면 다른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협박 당하듯 쫓겨서 시작한 자영업, 그것은 이미 실패한 도박이었다.

편의점은 은퇴자의 단골 창업 종목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편의점 3644곳이 문을 닫았다. 편의점 점주는 본사와 보통 5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2018년 개점한 편의점이 6943개였으니 절반이 문을 닫은 셈이다. 당시 편의점 신규 창업자 40~50%가 50대와 60대였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김 씨와 같은 이유로 얼추 1800명에 달하는 장노년층이 장사를 접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영업에 매달리는 5060세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노후 준비를 못하고 자영업에 매달리는 50·60대를 만나게 된다.

“요즘에 눈을 뜨면 드는 생각은 ‘내가 뭘 깰 수 있지. 어디서 얼마나 돈을 빌릴 수 있을까?’ 입니다. 당장 오늘 하루가 급해서 노후는 너무 먼 것 같아요. 잊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들고 있는 게 국민연금 뿐인데 금액이 워낙 적어서 안 챙기고 있어요.”

수영구 팔도시장에서 10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54세 이숙경 씨는 “자영업을 하면 부자로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월급쟁이 시절 바라봤던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고급 국산차의 상징이었던 ‘그랜저’는 타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돈을 많이 버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가게를 시작해보니 쉽지가 않았다. 대기업 대형마트와 경쟁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그래도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는데 더 지독한 복병이 나타났다. 수년 전 코로나19가 확산한 후에 온라인 판매가 급격하게 성행했다. 매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만큼 줄었다. 사정은 계속 나빠진다.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서 30% 내려갔다. 지난해부터 물가와 금리가 함께 오르면서 서민들이 슈퍼에서 보다도 싼 데만 계속 찾으러 다니는 듯했다.

이 씨는 자영업자 셋 중에 한 명이 60세가 넘는 환갑 사장님이라는데 왜 그때까지도 저렇게 골치 아픈 자영업을 하고 있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답은 하나 뿐. 노후 대책이 안 돼 있으니까. 당장 그거라도 해야지 살 수 있으니까. 그녀 역시 다르지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하루도 쉬지 못하는 일, 집에 가도 발 뻗고 자지 못하는 이 일을 60세 넘어서 70세까지 하고 그래도 과연 그만둘 수 있을지 걱정이다. 노후 대비책은 국민연금 뿐인데, 이것만으로는 노후를 보내기 어렵다. 이 씨는 또 생각한다. 집을 깨서 주택연금을 받아야 하나?

52세 조숙희 씨는 광안대교가 바라보이는 건물에 들어선 가게에서 9년째 고기구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월세가 300만 원이고 관리비는 150만 원이다. 종업원 인건비까지 합하면 고정지출이 무려 800만 원에 달한다.

장사는 신통치않다. 지난 23일 만난 조 씨 점포의 예약자 명단은 비어 있었다. 보통 1~3월이 비수기고, 4월부터 매출이 오르기 시작해 가정의달인 5월은 장사가 잘 돼야 하는데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 조 씨는 “코로나19 때는 정말 어려웠다. 그러나 이 시기를 보내면 잘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고, 그 희망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광안리가 일명 ‘핫플’로 바뀌었는데도 남의 일”이라고 푸념했다.

매출은 주는데 고정비는 올라간다. 얼마전 월세를 많이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통보를 받았다. 빚을 내 건물을 올린 건물주는 금리가 오른 만큼 세를 올린다고 하는데 그때문인 것 같았다. 조 씨는 “가게를 내놓은 상태인데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장사가 안 되니 포기하는 건 ‘먼 미래의 일’인 노후다.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적금을 넣고 있었는데 깨진 지 오래다.

▮“퇴로 열고 노후 지원해야”

올해 초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보고서 ‘자영업자의 국민연금 장기가입 유도 방안’(박충렬)을 보면 국민연금에 가입한 2199만7000명 중 306만4000명이 최소 가입기간인 10년을 못 채운 납부예외자였고, 88만2000명이 13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한 장기체납자였다. 모두 합하면 17.9%로 5명 중 1명은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였다.

보고서는 이들 대부분을 자영업자로 지목한다. 직장가입자는 연금보험료가 임금에서 원천공제되기 때문에 체납되는 경우가 드물고, 실직하지 않는 한 납부예외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납부예외나 장기체납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큰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지원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며 “자영업자가 폐업한 후에도 일정 기간은 자영업자의 지위를 인정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실제 강원 속초 고성 강릉 등 지자체는 1인 자영업자에게 1년 동안 납부한 국민연금의 50%를 지원한다.

부산여대 이정식(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는 이대로 두면 자영업자 출신 빈곤층이 쏟아져 나온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자영업자는 매출이 급감하는데도 장사는 유지해야 한다. 신용보증재단 등에서 자영업자 자격으로 빌린 대출이 있어 사업자를 반환하는 순간 일시금으로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며 “결국 폐업도 힘들고 장사를 유지하려면 다시 빚을 내야 해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극한 상황에 몰린다. 이런 상황에 노후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편의점을 접은 김 씨는 요즘 조선소 일을 다시 알아보고 있다. 벌이는 최저임금에 준하지만 재기할 수 있는 길은 이것 뿐이다. 그렇게 돈을 모아 다시 자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누가 칼들고 협박 하냐느고요? 이것 말고 노후를 보낼 길이 달리 없습니다. 또 실패하면 거리에 나앉겠지요.”

영상= 김채호 김태훈 김진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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