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노동자로 계급사회 비판 …'미국판 기생충' 칸 심장을 쥐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5. 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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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프랑스 칸영화제 결산
션 베이커 영화 '아노라'
올해 칸 황금종려상 수상
여성·하층노동자 분투기
마약 두목의 성전환 다룬
'에밀리아 페레즈' 2관왕
25일(현지시간) 제77회 칸영화제 시상식에서 션 베이커 감독(가운데)이 조지 루카스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받고 있다. 맨 오른쪽은 각본상을 받은 코럴리 파지트 감독, 그 옆은 그레타 거윅 심사위원장, 맨 왼쪽은 여우주연상을 받은 카를리 소피아 가스콘. AFP연합뉴스

올해 '칸의 뮤즈'는 성매매 여성과 하위 노동자의 쟁투를 통해 '세계 사회의 계급성 문제'를 그려낸 미국 섹스 코미디 영화 '아노라'를 선택했다.

25일(현지시간) 제77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심사위원장 그레타 거윅(영화 '바비' 감독)은 올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미국 영화 '아노라'를 낙점했다고 밝혔다. 이날 션 베이커 감독은 '스타워즈의 아버지' 조지 루카스 감독에게서 금빛이 찬란한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받았다.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 베이커 감독은 "영화가 극장에 나올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저는 제가 영화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칸영화제에서 미리 살펴본 황금종려상 수상작 '아노라'는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던 여성 스트리퍼 아노라(영화 약칭 '애니')가 러시아 권력자의 아들 이반과 장난으로 결혼해 그야말로 '신데렐라'가 된 이후의 이야기다. 플레이스테이션과 섹스에 빠진 철없는 21세 청년 이반은 그저 '섹스토이'를 만들 목적으로 애니와 결혼했다.

그러나 고용주 아들의 혼인 사실을 알게 된 하수인 3인이 아노라를 찾아와 결혼을 무효화하려 한다. 애니는 몸부림치며 이에 저항한다. 이 과정을 보던 이반은 그냥 집을 나가버린다. 애니는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또 하수인 셋은 해고되지 않으려 이반을 찾는 어색한 여정을 함께 떠난다. 결말부에 이르러 이반이 있던 장소를 알게 되면 관객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아노라와 하수인 셋이 러시아 권력가와 이반의 하위 계층을 이룬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게 만든다. 권력자는 그저 평온한 삶에 정주하고, 오직 살아남으려는 하층민들만이 분투한다는 점에서 기택-문광 부부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판 기생충'이다.

베이커 감독은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젊은 감독으로, 그의 영화 속에는 주로 성노동자, 소외계층, 사기꾼이 가득하다. 그러나 '아노라'에서 보듯이 그의 작품은 온통 웃음으로 가득하다. 베이커 감독은 칸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땐 유머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아노라'에 이어 올해 칸에서 무려 '2개의 트로피'를 가져간 화제작이 있으니,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였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 두목의 성전환 수술'이란 도발적 소재를 다룬 영화다.

이날 여우주연상을 받은(같은 작품의 다른 배우 3인과 공동 수상), 마약 카르텔 두목 델 몬테 역의 스페인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호명 직후 칸 시상대에서 눈물을 펑펑 흘려 큰 박수를 받았다. 성전환자를 연기했는데, 배우인 그녀 스스로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인 영향이 컸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변호사 리타가 납치돼 한 마약 두목 앞에 끌려가고, 그로부터 "난 여자가 되고 싶다"는 고백을 받은 뒤 방콕, 텔아비브 등지를 다니며 두목의 성전환을 돕는 내용이다. 검은 이빨에 턱수염이 가득한 두목은 젊은 변호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내가 그 상상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상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내 '그림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는 '성을 바꿀 경우 인간의 자아는 이전과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칸 각본상은 코럴리 파지트 감독의 '더 서브스탄스'가 차지했다. 데미 무어가 전라 노출을 감행한 이 영화는 중년 여성 스파클이 '한 번의 투약으로 젊어진 자아를 만날 수 있는 선택'을 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새로운 존재인 '젊어진 자아'와 마주친 '나이 든 자아' 스파클은 삶을 일주일씩 공유해야 하는데, 한 자아가 깨어 있을 때 다른 자아는 의식을 잃는다. 두 자아는 서로를 경멸하고 혐오한다. 상대 자아는 '내가 없애버리고 싶은 나 자신'이란 점에서 영화는 심오한 주제를 형성한다.

칸 남우주연상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친절의 종류'의 주연 제시 플레먼스에게 주어졌다.

이 영화는 3개의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에 압축한 작품인데, 제시 플레먼스가 연기한 남성 대니얼은 아내 리즈의 실종으로 괴로워한다. 그러나 아내가 조난 끝에 귀가했는데, 아내는 이전의 아내와 다른 것 같다. 실종 전에 신던 신발은 작아졌고, 불가능했던 임신까지 했기 때문이다.

대니얼은 아내 리즈가 다른 여성이라고 믿기 시작하고, 급기야 정신질환으로 거식증에 걸린다. 어느 날, 대니얼은 리즈에게 "배가 고프다"며 "손가락을 잘라 요리해 달라"고 말한다. '손가락 요리'를 해야만 리즈는 대니얼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것. 영화는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번 시상식에서 특별상은 이란 정권의 탄압을 받아 교도소 생활을 했고 급기야 유럽으로 망명한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이 받았다. 그의 작품 '신성한 무화과의 씨앗'은 교도소 공무원 이만이 '사건 기록을 읽지도 않고 사형선고에 서명해야 한다'는 걸 알고 갈등하는 이야기다. 칸영화제 심사위원회는 본상이 아닌 특별상 수여로 이란 정부와의 정면 충돌은 피해 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제77회 칸영화제 본상 수상작 7편의 리뷰는 기자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칸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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