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혼인은 무효" 관대해진 법원[법조인사이트]
최근 가정법원 혼인무효에 폭넓은 재량 발휘
혼인 기록 지우기 위해 악용 수단 우려도
혼인무효라도 가족관계등록부에 무효 기록은 남아
초혼 후 사이가 나빠진 부부는 이왕이면 '이혼'보다 '혼인 무효'를 선호한다. 다시 운명의 커플을 만날 경우 재혼 과정에서 어려움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A씨와 B씨 커플의 사례는 운이 좋은 케이스로 봐왔다. 이혼을 인정하돼 '혼인무효'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혼인무효' 인정 판례를 만들어내 앞으로는 혼인을 무효화하는 경우가 더 수월해 질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법원은 혼인무효 인정을 함에 법률의 문언적 해석에 충실히 해 왔다.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해도 무효사유가 있는지 까다롭게 살피다보니 혼인무효로 인정되기 쉽지 않았다.
여기서 혼인 무효와 관련해 빈번히 문제가 되는 것은 당사자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었던 때에 해당하는지이다. 혼인신고를 할 당시에는 그래도 혼인에 대한 생각이 있었으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혼인신고를 무르고 싶은 사정이 나타나 혼인 신고하게 된 과거의 사유를 부각시켜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과거 법원은 이러한 형태의 혼인무효 소송에서 혼인 신고당시 혼인의사가 있다고 해 혼인무효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 전원합의체는 이날 이혼했더라도 당사자 간에 실질적 합의가 없었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혼인을 무효로 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혼한 부부의 혼인을 무효로 돌릴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입장에서 40년 만에 대법원의 기존 입장이 변경된 것이다.
대법원은 "혼인 관계를 전제로 수많은 법률관계가 형성돼, 그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며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즉, 대법원도 혼인무효가 당사자간 복잡하고 치열한 분쟁의 종식에 해결기능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사례는 '혼인한 상태에서 자녀 한 명을 뒀고, 이들은 3년 뒤에 이혼조정을 통해 이혼신고를 한 이후, 15년 뒤에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당초 하급심은 “단순히 여성이 혼인했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돼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만으로는 혼인무효를 구할 확인의 이익이 없다”면서 사건을 각하했었다.
혼인무효가 됐다고 하더라도 과거 혼인했던 기록 자체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혼인사실 자체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혼인무효가 됐다는 기록이 남는 것이다. 아파트 등기부등본에 과거 근저당권 설정과 관련된 기록이 모두 남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극히 예외적 사유가 아니면 가족관계등록부가 재작성 되지는 않는다.
혼인 한 기록조차도 전혀 남지 않게 하려면 ‘가족관계등록부의 재작성에 관한 사무처리지침’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가 재작성 돼야 한다. 이론적으로 혼인무효사유가 한쪽 당사자나 제3자의 범죄행위로 인한 혼인신고의 경우에만 가능한데 사실상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wschoi@fnnews.com 최우석 변호사·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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