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년생 김서경'···이 가짜 '민증'에 술집·클럽·편의점 다 뚫렸다

장형임 기자 2024. 5. 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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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신분증 위조 의뢰해보니]
신청 13분만에 동영상까지 완성
QR코드로 진위 확인 가능하지만
바쁜 업장서 일일이 스캔 어려워
미성년자 사용·적발 2년새 2배로
"위조 힘들게 기술 강화해야" 지적
[서울경제]
불법 업체에 의뢰해 만든 위조 모바일 신분증. QR코드와 개인정보·사진 모두 가짜다. 장형임기자

“영상 구매하실래요, 사진으로 하실래요? 10~20분 내로 바로 제작 가능해요. 양식 채워서 보내주세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한 불법 신분증 업자에게 정부24가 제공하는 ‘주민등록증 모바일 확인서비스’ 위조를 문의하자 즉각 ‘신청 양식'이 돌아왔다. 업자는 증명사진·주소·이름·생년월일을 요구한 뒤 “사진 속 옷 포토샵도 가능하며 추가금 5000원이 든다”고 덧붙였다. 신청서를 작성하자 곧 “완성했다”며 계좌번호로 돈을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 인공지능(AI)으로 합성해 만든 증명사진, 지도상 존재하지 않는 주소지를 제공했지만, 실제 정부24 모바일 신분증과 똑 닮은 위조 신분증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13분 남짓이었다. 동영상 버전을 선택한 덕분에 ‘QR코드 스캔’용 30초 카운트다운까지 실시간으로 진행돼 감쪽같은 모습이었다.

‘축제의 계절’을 맞아 곳곳에서 대학축제·페스티벌·일일호프 등이 열리는 가운데 온라인 상 위조 신분증 제작·판매가 판을 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신원 확인이 비교적 느슨하게 진행되는 행사에 미성년자나 신분을 속인 성인이 참가할 경우 범죄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3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X를 비롯해 텔레그램, 카카오톡 오픈채팅 등 익명성이 높은 SNS에서는 신분증 제작을 대가로 돈을 받는 계정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여러 제작 업체에 접촉해 가격을 문의해보니 대부분 실물 신분증(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 제작에는 40~50만 원, 모바일 신분증(정부24·카카오 인증서 등)에는 2만 5000원~3만 원을 요구하고 있었다. 실제로 신분증 위조를 의뢰·제작·사용했다가 적발되는 경우는 최근 3년 사이 급격히 증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만 19세 미만의 ‘문서·인장 범죄’ 피의자 수는 2021년 656명에서 2022년 875명, 지난해는 1229명으로 늘어났다.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많은 미성년자가 연루된 셈이다.

위조 모바일신분증은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모바일 신분증 검증 어플리케이션’이나 가게의 바코드 스캐너로 QR코드를 직접 찍어보면 곧바로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QR코드 스캔까지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로 기자가 관악구 서울대학교 근처 편의점에서 주류를 구매해보자 직원 A씨는 위조 신분증을 몇 초간 훑어본 뒤 곧바로 결제를 마쳤다.

A씨는 “최근에 젊은이들이 다들 지갑을 안 들고 다녀서 결제할 때 보면 모바일과 실제 신분증의 비율이 1:1 수준”이라고 말했다. QR 코드 스캔을 건너뛴 이유를 묻자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나이 파악이 쉬워서 그랬다”며 “정말 동안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나이를 맞춘다. 앳되어 보이면 했을 것”이라고 변명했다. 바꿔 말하면 미성년자여도 성숙해 보이기만 하면 단속의 빈틈을 노릴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비정기적으로 근무하는 B(27)씨 역시 “신분증 검사는 무조건 하지만,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으면 바쁘다 보니 휙 보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며 “(모바일 신분증이) 움직이기까지 하면 의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는 호프집을 운영한다는 C씨가 "(QR 코드) 한 번 스캔하려면 어플에서 서너 번씩 필요한 정보를 선택해야 한다. 단체 손님 몰리는 상황에서 일일이 스캔하기 불편한데 안 하자니 께름직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대학생 D(24)씨도 “요새는 술집이나 노래방에서 모바일 신분증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지만 생년월일 정도만 보지 스캔하는 건 본 적이 없다"는 경험을 전했다.

지난달 말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현재 소상공인들이 미성년자에게 술·담배를 판매했더라도 CCTV 등으로 신분증을 확인한 사실만 증명되면 행정처분은 면제되고 있다. 가짜 신분증에 속은 가게 주인이 영업 정지까지 당하는 상황이 부당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다만 신분증 단속 부담을 덜어준 만큼 행정·수사기관 측이 위조 신분증 범죄를 더욱 강력히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 교수는 “모바일 신분증 확산으로 편리함을 높이고 무고한 영세업자를 구제하도록 법을 개정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가짜 신분증 위조를 기술적으로 최대한 어렵게 하면서 판매·사용 행위에 대한 처벌 수준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형임 기자 j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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