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절차 끝나가는데…교수들은 여전히 '나홀로 투쟁'…왜?
극심한 진통 끝에 의대 증원 절차가 마무리되고 있지만 의대 교수들의 투쟁 의지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의대생과 전공의 보호라는 명분 외에도 의학 교육의 혼란, 임상 진료 공백 등 의대 증원의 후폭풍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교수들의 강경 투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선배 의사'의 행동에도 의대생과 전공의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의료 교육 및 현장에 걸맞은 '청사진'을 정부와 의대 교수가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전날 긴급 공동 성명서를 내고 "서울고등법원 항고심 3개와 대법원 재항고심의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결정 이후에 2025년 (의대) 모집 요강이 확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4일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제2차 대학입학전형위원회를 열고 전국 39개 의대 모집인원을 포함한 2025학년도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 변경 사항을 승인했다. 내년도 의대 정원은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확정됐다. 교육부는 이달 30일 수시·정시 등 구체적인 시행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후 각 대학이 31일까지 입시 요강을 홈페이지에 공표하면 의대 증원 절차는 사실상 마무리된다.
그러나 의대 교수들은 공동 성명문에서 "각 대학의 모집 요강 발표를 법원 결정 이후로 늦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대교협 승인은 말 그대로 승인일 뿐"이라며 "재판부가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할 경우 의대 모집 인원은 3058명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법원에는 "30일까지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에 관한 결정을 내려주기 바란다"고 요청하면서 언론에는 "의대 증원 확정이라는 보도는 오보이다. 혼란이 없도록 신중한 접근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의대 교수들은 사직·휴진 등 대정부 투쟁의 선봉에 서왔다. 지금도 전의비를 주축으로 주 1회 휴진이 이뤄지고, 전의교협은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행정소송을 주도하고 있다. 전의교협은 지난 23일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의학교육 정책 위원회 활동에 전면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나 의대생, 전공의 단체가 최근에 주로 성명문이나 입장문을 발표하는 것과 달리 의대 교수들은 실제 행동에 나서며 정부를 압박했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결정 이후 학교를 떠난 제자와 병원을 이탈한 '후배 의사'(전공의·전임의)를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이들이 보다 적극적인 투쟁에 나서는 이유다. 문제는 사직과 휴진 등 '선배 의사'의 행동에도 의대생과 전공의는 요지부동이란 점이다. 의대생은 동맹휴학, 전공의는 집단사직의 해결책으로 의대 증원의 '원점 재검토'만을 고수하는 상황이다.
박종훈 고려대 의대 교수는 지난 23일 '대한민국 의료 이용의 문제점과 해법'을 주제로 열린 미디어포럼에서 이 이유로 '배신의 경험'과 '와해한 조직'을 들었다. 박 교수는 "현재 전공의들은 본과 3~4학년인 문재인 정부 때 (파업으로) 힘든 경험을 했다"며 "자신들을 투쟁의 전면에 내세웠던 그 당시 전공의나 의료계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방치했다. (그 경험으로) 현재 전공의들을 컨트롤할 할 수 있는 힘은 의료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보건복지부가 처음부터 집단행동을 선동할 경우 가만두지 않겠다며 완강한 입장을 보이는 바람에 전공의 조직이 와해했다"며 "협상 창구가 없고 나간 전공의가 누구 말을 듣고 언제 돌아와야 하는지 (복귀를 위한) 출구전략이 없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대 교수들은 이번 의대 증원 정책의 실질적인 피해자일 수 있다. 과도한 학생 수 증가에 따른 의학 교육의 혼란과 전공의 이탈, 전문의 부족에 따른 진료 부담을 모두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의료계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아는 의대 교수들이 이번 사태로 도출된 의료 현안의 '맞춤 대안'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정부와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박 교수는 "과잉 의료와 과잉 공급, 과잉 진료를 해결하지 않고 의사 수 문제를 논의하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참담하고 비통하다"며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건강보험 제도 개선, 실손보험 정비 등 지속 가능한 건강한 의료의 청사진을 만들어갈 때"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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