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교 집단폭행 대응 후 남은 '진상 부모'란 주홍글씨 [視리즈]

김다린 기자 2024. 5. 2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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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일산 지역 초교 집단폭행 사건 후➋
틱 증상 있단 이유로 따돌림
집단 폭행으로 사건 커졌지만
중재하지 않고 부추긴 교사들
학폭위로의 이관 막아선 학교
내밀한 갈등 못 다루는 학폭위
학교 내 갈등이 결국 법원으로

# 학교 내 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이른바 '학폭위'가 열립니다. 그런데 학폭위가 관련 조치를 끝내더라도 소송전으로 번지는 경우가 잦습니다. 학폭위가 사건을 예방하긴커녕 학생들의 교육과 치유조차 제대로 못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측이 되레 사소한 다툼으로 취급하거나 '쌍방폭행'으로 유도하는 경우도 숱합니다.

# 우리는 그런 사례 중 하나로 지난해 8월 고양시 일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집단 폭행 사건을 다뤘습니다. 당시 학교는 피해 학생을 보호하지 않은 채 '부적응자' '범죄자'로 내몰았는데, 이 내용을 '視리즈 일산 지역 초교 집단폭행 사건 후' 1편에서 살펴봤습니다. 이번엔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視리즈 '일산 지역 초교 집단폭행 사건 후' 두번째 편입니다.

학교폭력 사건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숱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8월, 고양시 일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같은 반 친구 11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여러 미디어에서 보도하면서 제법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더스쿠프도 당시 피해학생의 아버지 A씨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다뤘습니다. [※참고: 더스쿠프 통권 582호 커버스토리 기사 "대박이에요 어머니…" 일산 지역 초교 학폭사건과 담임의 눈가림]

해당 사건은 학폭위가 가동하면서 마무리 됐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학폭위가 끝난 지 한참이나 흐른 지금도 A씨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당시 담임교사와 교장과 교감, 괴롭힘 주모자의 부모, 사건을 수사했던 사법경찰관 등을 상대로 '법적 영역'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중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 학교 측에서 학폭위를 열지 못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입니다. A씨의 아들인 피해학생이 쌍방폭행을 했을 수도 있고, 평소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었으니 '맞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까지 늘어놨습니다.

심지어 피해 학생이 평소에 다른 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허위로 언급하며 사건을 학폭위로 이관하지 못하게끔 회유했습니다. 이 학교에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약자에게 더 가혹한 은폐 = 학교가 이런 중상모략을 짤 수 있었던 건 B군이 학교 내에서도 '약자'인 학생, 그중에서도 위협에 노출되기 쉬운 '장애학생'이란 점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지난해 벌어진 집단폭행은 일종의 '파편'에 불과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죠. 당시 5학년이던 B군은 학급 내에서 공공연하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B군이 약을 먹는다"란 소문이 학교에서 확산하면서부터였습니다.

원래 B군이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고 있는 건 담임교사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전 학급 학생에게 이 사실이 퍼져있었습니다. 학교 내 괴롭힘 사건이 늘 그렇듯, 처음엔 장난식이었지만 놀림의 정도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A씨의 하소연을 들어보실까요? "아들은 4학년까진 큰 사고 없이 학교를 다녔습니다. 틱 증상도 밖에서 알아챌 만큼 심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5학년 진학한 다음엔 불안함이 커졌는지 증상이 악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담임의 교육 방식이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아들의 담임은 교실 내에서 서열화를 꾀했습니다. 반장 등 책임 있는 학생에게 숙제를 검사시키고 방과 후 청소를 시키는 권한을 줬습니다. 교실 안의 권력 구도를 학생에게 넘겨준 것이죠. 아들은 그 어떤 학생보다 방과 후 청소를 많이 했습니다. 이미 학급 내에서 '약을 먹는 문제아'로 찍힌 상황에서 아들은 괴롭히기 손쉬운 타깃이었을 겁니다. 이런 문제를 중재해야 할 사람이 바로 담임이었지만,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습 과정을 제대로 쫓아오지 못한다며 '눈엣가시' 취급했습니다. 같은 반 학생들의 따돌림도 갈수록 더 심해졌고요."

담임이 B군을 평소에 어떻게 대했는지는 "B군이 아이들을 집단으로 때렸다"는 최초 보고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담임은 학교에서 피해학생이 손을 내밀 수 있는 가까운 구원자란 점에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학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지도자로서 갈등의 해소자 역할을 하고 교실 내 권력관계를 일찍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선 담임이 오히려 따돌림을 용인하는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집단폭행'의 비극으로 번졌던 겁니다.

학교폭력 예방을 다루는 비정부기구 푸른나무재단의 김석민 학교폭력SOS센터 팀장은 "학폭 사건은 온전히 학생의 잘못이라기보단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방관하는 환경이 문제일 때가 많다"면서 "피해 학생의 아픔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방관자가 아닌 방어자가 돼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진상 부모란 주홍글씨 = 학폭위에선 당연히 이런 내용들이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학폭위는 사건을 사후적으로 처리하는 행정적 절차에 불과하니까요. 교원은 징계 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습니다. A씨는 직접 나섰습니다. 먼저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감사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도 교육청으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사법부의 힘을 빌리게 됐습니다. 담임과 교장, 교사 등을 상대로 여러 장의 고소장을 날렸습니다. 평소 B군을 문제아로 취급한 점을 들어 아동복지법 위반(정서적 학대), 학폭 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무유기, B군의 병력을 멋대로 공개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B군을 성추행범으로 몰아간 공갈ㆍ명예훼손 등 갖가지 이유였습니다.

과거엔 B군을 따돌리던 학생들의 부모가 고마운 조력자가 됐습니다. 당시 폭행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던 학교 측이 이들 부모에게 접촉했는데, 많은 증거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진술서를 써주고, 문자 내역을 공유해 줬습니다.

그런데도 사건 처리는 지지부진합니다. 예상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A씨는 "경찰 수사는 어른의 잣대와 기준으로 가벼움과 무거움을 따지게 됩니다. 학교 안의 문제는 학교 밖에선 사소한 문제로 취급받는 것 같습니다."

현재 A씨는 학교 내에서 진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아들을 구하고자,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았으면 해서 사방팔방 움직였을 뿐인데, 그런 낙인이 찍혔습니다.

"제가 엮이면 안 되는 사이코패스란 얘기도 들리고, 엄청난 재력가라고도 하더군요. 인맥이 빵빵한 이른바 뒷배가 있는 사람이란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혹자는 그런 소문을 내는 게 학교 측이란 얘기도 합니다. 괴롭힘을 주도했던 한 학생의 부모로부턴 제가 스토커를 하고 있다며 맞소송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변호사나 로펌도 끼지 않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생업도 마다하고 말입니다. 제가 재력가였거나 뒷배 있는 사람이었으면 이러지도 않았겠죠."

학교폭력은 피해학생과 부모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사진=뉴스]

A씨는 학폭위가 결론을 낸 시점에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도 괜찮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법적 다툼으로 사건을 키운 이유는 간단합니다. A씨가 생각하기에 진짜 범인은 당시 B군을 때린 학생들이 아니라 학교와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학교 측이 B군을 향한 집단 따돌림을 인지하고 대처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이었습니다. 이는 학폭위 심의 숫자가 매년 늘어나더라도 학폭이란 비극이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이유입니다.

학폭에 대처하는 학교의 무력함, 교육부의 방임을 몸으로 체감한 A씨는 올해부터 학교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피해 학생의 온전한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입니다.

소송 결과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면, A씨는 소송 과정을 정리해 여러 방면으로 알릴 계획입니다. A씨와 B군이 겪은 지옥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다만, 이 기간에 겪는 고통은 온전히 A씨와 B군의 몫입니다. 학폭이 남긴 또다른 상처입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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