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 뜨자 퓨전한식 셰프 변신한 이 남자…“꽃모양 타르트쉘 맛에 빠져보세요”[푸디人]

안병준 기자(anbuju@mk.co.kr) 2024. 5. 2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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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인-30] 배요환 두리 셰프 (feat. CJ제일제당 ‘퀴진케이’)

‘부캐’

부(副)캐릭터의 준말로, 평소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캐릭터로 활동할 때 요즘 흔히 쓰는 말이죠. 이런 부캐가 너무 잘되어 ‘본캐’를 넘어서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요즘 화젯거리인 ‘뉴진스님’이나 한때 인기절정이었던 일본 유흥업소 출신 컨셉의 ‘다나카’가 대표적이죠.

서울 강남구 ‘퀴진케이(Cuisine K) 팝업 레스토랑’에서 ‘두리(DOORI)’를 운영중인 배요환 셰프도 딱 이같은 인물입니다.

2014년 초 동서울대학교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시절 칵테일, 커피, 와인 등을 공부했습니다. 2012년에 조주기능사를 획득했고, 같은 해에 전국대학생칵테일 대회에서 2등을 차지했죠. 그러나 그는 와인에 더 끌렸다고 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회사에 입사해 약 1년여 정도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1년간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아고다와 다양한 회사에서 데이터 관련 업무를 약 3년가량 했다네요. 요식업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은 무언가 공허하기만 했죠.

“여행을 다니면서 제가 요리를 좋아한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됐어요.”

결국 배 셰프는 2021년부터 회사를 다니는 가운데 ‘두리와인’이라는 와인클래스를 열며 부캐를 시작했습니다. ‘두리’는 아내인 이효재 매니저와 함께 기르는 강아지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네요. 또한 “한식과 양식 ‘둘이’ 만나 펼쳐지는 새로운 미식 경험을 선물하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배 셰프는 8명 이내의 소그룹을 구성해 와인 소셜 다이닝을 진행했습니다. 블라인드 와인 테이스팅을 통해 고객의 와인 취향을 찾아주고 제철 재료를 사용한 한식 퓨전 요리를 선보였죠.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배 셰프의 와인 지식과 남다른 손맛으로 제공하는 요리가 입소문을 타면서 와인클래스는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게된 그는 2022년 9월 회사를 그만두고 아예 ‘부캐’를 ‘본캐’로 하기로 마음먹었죠

흔히 셰프들은 요리학교를 나와 유명 레스토랑에서 수련 과정을 겪지만 배 셰프는 이런 과정을 겪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정통’이 아닌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셈이죠. 스펙이 중요시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셰프에 도전하겠다고 한 그의 결정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겁니다.

‘퀴진케이’와의 운명적 만남
서울 강남구 ‘퀴진케이(Cuisine K) 팝업 레스토랑’에서 운영중인 두리의 내부 모습. 안병준 기자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진 배 셰프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CJ제일제당의 한식 셰프 양성 프로젝트 ‘퀴진케이(Cuisine K)’였죠.

CJ제일제당은 한식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 젊은 한식 셰프를 육성하는 ‘퀴진케이’를 운영 중입니다. 요리대회 후원, 한식 팝업 레스토랑 운영, 한식 파인 다이닝 실습(K-스타쥬), 한식 명인과 유명 셰프와 함께하는 식자재 연구 클래스(마스터 클래스), 해외 유명 요리학교 유학 지원, 한식 교육 과정 개설 등 5개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죠.

그중 배 셰프는 영셰프로는 처음으로 한식 팝업 레스토랑 운영을 하게 된 것입니다. CJ제일제당은 한식 팝업 레스토랑 운영팀에게 메뉴 개발 컨설팅, 운영공간, 마케팅 무상 지원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발생한 수익은 운영팀이 전액 갖게 해주죠. 오너 셰프를 꿈꾸는 영셰프에게는 막대한 투자금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자기 음식을 고객들에게 선보일 기회라는 점에서 최고의 조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배 셰프는 이런 특전을 실력으로 쟁취했습니다. 소설한남 엄태철 셰프 등 한식과 외식 전문가들이 상품성과 한식 메뉴 차별성 등을 기준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배 셰프를 선발한 것이죠.

“젊은 셰프들에게 고객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게 의의가 있어요. 현실적으로 영셰프들이 본인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조건에서 요리에 전념하기는 쉽지 않죠.”

요리를 세팅하고 있는 배요환 두리 셰프. 안병준 기자
“일도 요리, 여가도 요리…요리에 미쳐 행복”
두리의 13가지 코스요리
배 셰프는 아내 이효재 매니저와 한국의 다양한 식재료를 모던하게 해석한 13가지 코스 요리와 와인·전통주 페어링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13가지 코스를 짤 때 가진 한식퓨전 요리법 약 70여가지로 꽉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팝업을 준비하면서 1번부터 13번까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게 꾸미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코스로 나오는 몇 가지의 요리를 살펴보면 배 셰프의 치열한 고민이 잘 담겨 있습니다.

코스의 시작은 살짝 구워 잘게 썬 연근위에 레몬·마늘·꿀을 콩물과 섞은 소스를 올린 뒤 쑥갓과 차빌을 타르트쉘에 올린 요리입니다.

입맛을 돋우기 위해 쑥갓을 살짝 토치 불꽃으로 지져주는데 그 향이 입맛을 자극하네요. 허브 종류인 차빌은 향신료인 고수를 잘 못먹는 손님들을 위해 종종 대신 쓰이는데 그는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쑥갓과의 배합이 가장 좋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배 셰프는 꽃모양으로 직접 만든 타르트쉘의 비법은 “절대 비밀”이라며 귀띔조차 해주지 않았습니다. 타르트쉘은 입에 오래 남지 않으면서도 버터 향만 살짝 나고 사라져야 음식과 조화가 잘 이뤄진다고 하네요.

또한 육회에 많이 쓰이는 한우 우둔살을 다져서 매실고추장이 근간인 소스와 버무린 뒤 잘게 썬 마늘쫑 장아찌와 트러플, 분말감태, 브리오슈 크러스트를 타르트쉘에 올린 요리도 선보입니다.

직접 만든 타르트쉘을 이용한 전채요리. 안병준 기자
메인 요리 중 하나인 대구 요리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충실히 따랐습니다.

대구살을 구운 다음에 남은 자투리는 정향과 파슬리로 우린 허브우유·알배추·프로슈토와 함께 다져 ‘브랑다드’를 만들고요. 소스에는 배 셰프의 특제 비법이 담겨있습니다.

“화이트와인, 서양 양파인 샬럿, 버터를 넣고 만든 프랑스 전통 소스인 뵈르블랑에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36시간 우린 육수를 섞어 만든 소스예요. 그래서 이름을 ‘다시블랑’이라고 지었죠. 그리고 여기에 부추오일 살짝 섞어줬습니다.”

구운 대구살 위에 브랑다드를 올리고 하얀 다시블랑 소스를 주위로 미술작품처럼 뿌려줍니다. 그리고 겉면에 버터를 바르고 토치로 살짝 그을린 케일을 올려주면 완성이죠. 토치로 그을리는 이유는 버터와 결합시켜 채소의 풍미를 더욱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네요. 봄철에는 케일 대신 봄동을 썼다고 하는데 캠핑장에 가서 꼭 한번 따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훈연한 케일을 올린 대구살 요리. 안병준 기자
요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디저트는 눈과 입을 동시에 사로잡았네요.

제일 아래에 치즈 케이크 무스를 깔고 라즈베리랑 우유로만 만든 아이스크림을 위에 얹습니다. 부부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보니 사랑스러움이 넘쳐서 위에 올린 과자인 튀일도 하트 모양이네요.

튀일과 아이스크림 사이에 떠다니는 잼 같은 게 있는데 ‘한라봉 쿨리’입니다. 한라봉 쿨리는 즙을 낸 한라봉과 샴페인을 한번 끓여서 알코올을 날린 소스라고 합니다. 제일 위에는 딜허브 세 종류와 직접 말린 딜 플라워(허브에서 나는 꽃)로 예쁘게 장식했네요.

단순히 디저트만 제공하면 재미가 없겠죠?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개함에서 색상별로 준비된 디저트 스푼을 고르는 깨알재미까지 선사해줍니다. 디저트 스푼은 식물성 소재인 셀룰로오스로 만들어져 ‘제로웨이스트’를 고려하는 배 셰프의 철학이 잘 반영되어 있네요.

코스 마지막을 장식하는 디저트. 안병준 기자
디자인 감각이 남다른 아내 이효재 매니저는 메뉴판 등을 직접 디자인하고 배 셰프가 요리를 위해 홀을 비운 사이에는 적극적인 성격을 무기로 고객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아이스브레이킹’ 역할을 담당합니다.

“저희는 고객과 스몰토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고객과 라포를 형성하고 취향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런 저희 노력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이번 팝업 레스토랑에 벌써 3~4번 오시기도 하셨어요. 최근에는 팝업 근처에 살다가 이사를 가신 손님이 있었는데 다음 달에 영업이 끝난다고 하니까 가족을 모두 데리고 오셔서 같이 사진 찍고 사인도 해드리는 등 따뜻한 경험도 했습니다.”

두리의 요리
요리가 좋아서, 요리에 미쳤고, 지금은 ‘지박령’처럼 매장에 매여있지만 요리를 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행복하다는 배 셰프. 평범한 길을 마다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녹여낸 그의 요리가 궁금하다면 다음달 16일까지 서울 강남구 소재 ‘이노플레이’ 1층을 찾아가 보세요.

이미 ‘두리’ 팬덤이 형성되어 있어 예약이 쉽지는 않지만 한번 가보면 ‘두리’의 매력에 푹 빠질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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