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김건우가 전한 진심,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요”

손동환 2024. 5. 2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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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4년 4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3월 21일 오전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인생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를 생각한다. 과거를 생각하는 대부분의 마음은 ‘후회’ 혹은 ‘미련’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때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이다.
하지만 김건우(광신방송예술고 A코치)는 예외다. “선수 시절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한 이유는 확고하다.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가 그 이유였다.

시작
김건우는 광신중과 광신정산고(현 광신방예고), 동국대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2012년 1월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 나섰다.(KBL은 2012년 10월에도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를 실시했다) 김시래(서울 삼성)-최부경(서울 SK) 등과 프로 무대를 노크했다.
김건우는 드래프트 당시 장신 슈터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높은 순번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프로에 입단하지 못할 뻔했다. 김건우가 받은 순위는 ‘2라운드 9순위’. 꽤 낮은 순번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1월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9순위로 서울 SK에 지명됐습니다.
순번은 문제 없었습니다. SK에 입단했다는 게 좋았죠. 대학생 때 연습 경기를 하면, SK의 색깔이 좋아보였거든요.
SK의 첫 인상은 어땠나요?
문경은 감독님(현 KBL 경기본부장)과 전희철 코치님(현 서울 SK 감독) 등 우상으로만 봤던 분들이 코칭스태프로 계셨습니다. 최고참인 (주)희정이형(현 고려대 감독)과 (김)동우형(현 창원 LG 코치), (박)상오형(현 천안쌍용고 코치) 등 TV에서만 봤던 분들이 고참이셨고요. 그런 분들과 하루하루 보낸다는 게, 저는 신기했습니다. 많이 떨리기도 했고요.
가장 잘해준 선배님은 누구였나요?
모두가 다 잘해주셨습니다.(웃음) 다만, 1명을 꼽자면, (박)상오형이에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상오형이 저희 학교에서 잠깐 운동했어요. 그때 제가 상오형한테 “형. 1대1 한 번 해요”라고 많이 쫓아다녔습니다. 상오형과 1대1을 하면서, 농구가 정말 많이 늘었죠.
그런 상오형을 프로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프로 생활할 때도 상오형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도 많이 좋아하는 형이고요. 저에게는 선배님 이상의 존재입니다.
데뷔 시즌(2012~2013)에는 정규리그 1경기 밖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출전 시간 역시 3분 8초였다)

개막 2주 전에 연습 경기를 하다가, 발목 인대를 다쳤습니다. 심하게 다쳐서, 시즌 중반에야 복귀할 수 있었죠. 2군에서 운동을 하면서, ‘내년에 모든 걸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장이셨던 (이)현준이형(현 서울 SK 코치)이 저를 좋게 이야기해줬고, 문경은 감독님께서도 열심히 하는 저를 좋게 봐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정규리그를 뛰었어요. 꿈만 같았습니다. 사실 정규리그에는 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데뷔 경기가 더 기억에 남았겠어요.
동부(현 원주 DB)랑 경기였을 겁니다. 그때 제가 진경석형(현 청주 KB 코치)을 막았습니다. 리바운드를 하나 잡았지만, 너무 시원하게 실점했어요.(웃음) 그렇지만 좋았습니다. 재미있기도 했고요.
본인의 기록과 달리, SK는 그때 정규리그 최다승(44승)을 달성했습니다. 챔피언 결정전에도 나섰는데요.
경기에는 거의 뛰지 못했지만, 정규리그 경기를 따라다녔습니다. 다만, 처음 따라다닐 때만 해도, ‘내가 정규리그를 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죠. 그렇지만 ‘나는 이 무대에 무조건 뛰어야 돼’라는 마음이 더 크게 들었습니다.
이유가 있으신가요?
대학교 때까지는 많은 관중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잠실학생체육관은 늘 많은 관중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왜 프로 선수를 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기다림의 미학
김건우는 두 번째 시즌 이후에도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다. 출전 경기와 출전 시간은 늘었지만, 팀 내 입지를 확실히 다지지 못했다. 늘 절벽에 서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건우는 버텼다. 그리고 기회를 기다렸다. 출전 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지 않았지만, 조금의 기회라도 물고 늘어졌다. 특히, SK가 2019~2020시즌 정규리그 1위를 할 때, 김건우는 프로 선수로서 가장 많은 기회를 얻었다.(43경기 평균 9분 18초 출전)
해당 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 자격 역시 누릴 수 있었다. 계약 기간 3년에 2020~2021시즌 보수 총액 1억 원. 그리고 2022~2023시즌 종료 후 SK 유니폼을 벗었다.

2013년 여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희 팀만의 8주 체력 훈련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정말 힘든 훈련이죠. 그렇지만 이 악물고 했습니다. 죽을 듯이 했죠.(웃음) 그게 문경은 감독님과 전희철 코치님께 ‘건우는 열심히 해’라는 생각을 심어줬던 것 같아요.
그 후에도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기회를 기다렸나요?
뛰어난 선배님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기회를 못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그렇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기회는 언젠가 온다. 어느 정도의 보상은 있을 거다’고 확신했습니다. 코치님과 형들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고요.
2019~2020시즌에 많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2019~2020시즌 종료 후에는 FA 자격도 취득하셨고요.
2019년 5월에 미국 훈련을 갔습니다. 그 전에 문경은 감독님과 미팅을 했죠. 너무 간절했기 때문에, “기회를 달라”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드렸습니다.
그때 감독님께서 “슛을 10개 던지면, 11개를 넣어야 해”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슈팅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였죠. 그래서 저도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신감도 있었고요. 그리고 기회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수 생활을 몇 년 더 했던 것 같아요.
2022~2023시즌 종료 후 은퇴하셨습니다.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지만, 이해도 됐습니다. 특히, (허)일영이형의 퍼포먼스를 보고, 그렇게 느꼈어요. 정말 다르더라고요. ‘내가 일영이형을 일찍 만났다면, 더 많은 걸 배웠을 건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러던 와중에, 모교인 광신방예고에서 지도자 제의를 받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죠. 그렇지만 (선수를) 마음 편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미련이 ‘1’도 없을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했거든요.(웃음)

터닝 포인트
프로 스포츠 선수는 누구나 새로운 인생과 마주한다. 선수만 평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건우도 마찬가지였다.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 생활을 마쳤기 때문에, 새로운 포인트와 마주할 수 있었다. 은퇴 직후 광신방예고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한 것.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모교에서 많은 걸 경험했다. 후배들의 현실을 지켜봄과 동시에, 아마추어 농구의 현실을 체감했다. 지도자로서도 한층 성숙해졌다.

프로에 오랜 시간 있다가, 학생 선수들을 접했습니다.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 같아요.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운동 분위기가 어색했습니다. 예전과 너무 달랐거든요. 운동 방식과 학생 선수들의 대학 진학 시스템, 학생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러나 여기 있는 학생 선수들 모두 농구를 좋아합니다. 각자의 목표도 확실해요. 그래서 저는 “너가 이런 목표를 갖고 있다면, 이렇게 연습해야 해”라고 다가섰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 선수들도 저에게 마음을 열어줬어요. 저 역시 지도자로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또, 지도자가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요.
반대로, 학생 선수들에게서 배운 점은 어떤 건가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학생 선수들의 말 속에서 ‘요즘 친구들이 이런 사고 방식을 갖고 있구나’라는 걸 배웁니다. 그 외에도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지도자로서 공부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이제 1년 밖에 안 되기는 했지만, 코트 전체를 보는 눈이 부족해요. 넓은 시야를 지닌 지도자로 거듭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와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선수들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또, 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김건우 코치가 가르치는 선수들이 많이 늘었다’는 평가도 듣고 싶어요.

“감사한 존재입니다”
‘뭐하고 지내세요?’의 마지막 주제는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김건우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농구 인생을 돌아봐달라”고 말이다.
김건우는 25년 넘게 농구공과 함께 했다. 코트에 있는 25년 동안, 숱한 일을 겪었다. 그러나 농구와 함께 한 시간을 감사히 여겼다. ‘농구’는 김건우에게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인생의 절반 이상을 농구와 함께 했습니다. 비록 선수를 그만뒀지만, 운 좋게도 코트에 아직 남아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음에, 농구는 저한테 ‘감사한 존재’입니다.
‘김건우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겠지만, 저 또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습니다.(웃음) 그렇지만 우여곡절 속에 많은 걸 배웠기에, 지금의 김건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앞서 말씀 드렸듯, 선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농구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저와 함께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후회 없이 내려놓을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실 건가요?
할 것 같기는 해요.(웃음) 하지만 이번 생에 그랬던 것처럼, 죽자 사자 운동할 겁니다. 미련 없이 선수 유니폼을 벗고 싶어서요.

일러스트 = 락
사진 제공 = KBL(본문 2~4번째 사진), 김건우(본문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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