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비발디 ‘봄’과 AI가 편곡한 2050년 서울의 ‘봄’을 듣는다면 기분은?

이강은 2024. 5. 2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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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28일 정동제일교회와 30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선보여
협연자로 나선 바이올리니스트 임가진 “AI 편곡 ‘사계’ 되게 우울…‘봄’도 봄 같지 않아”
임가진, 공연 마친 후 단원끼리 격려하며 포옹하는 문화 산파역…“그런 문화 확산에 자부심 느껴”
“츠베덴 음악감독은 절대 포기가 없는 분”
서울시향, AI가 완성한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미완성한 교향곡도 일부 들려줘

봄 내음 가득한 퇴근길에 클래식 명곡 비발디(1678∼1741)의 ‘사계’ 중 ‘봄’을 듣는 기분은 어떨까. 5월의 봄이 찬란하게 느껴질 것이다. 인공지능(AI)이 2050년 서울의 봄 날씨 예측치를 반영해 편곡한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듣게 되도 과연 그럴까. 

서울시립교향악단이 ‘과거와 미래의 교향곡: AI의 선율’을 주제로 올해 첫 ‘퇴근길 토크 콘서트’를 28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와 30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개최한다. 서울시향이 2016년부터 시작한 이 콘서트는 특별한 주제와 함께 해설과 인문학 이야기를 곁들여 시민 누구나 클래식 공연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한 공연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과 단원들이 연주를 마친 후 관객에게 인사하는 모습. 임가진(둘째줄 왼쪽 두 번째) 제2바이올린 수석이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서울시향은 이번 공연에서 비발디의 ‘사계’ 중 ‘봄’ 1악장과 ‘사계 2050’ 프로젝트를 통해 AI가 원곡을 편곡한 비발디의 ‘(불확실한) 사계, 서울 변주곡 봄’ 1악장을 들려준다. ‘사계 2050’은 기후변화 위협을 일깨우기 위해 세계적 디지털 디자인 혁신기업 AKQA가 작곡가 크로스웨이트,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기후변화 연구 전문가 등과 협업한 프로젝트다. 서울 변주곡은 온실가스 배출 저감 없이 현재 추세가 유지되는 기후변화 시나리오(RCP 8.5)가 예측한 2050년 서울의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비발디의 ‘사계’를 편곡한 것이다. 

‘봄’ 1악장 원곡과 AI 편곡 비교 연주에는 임가진(50) 서울시향 제2바이올린 수석이 협연자로 나선다. 지난 24일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만난 임가진은 “대중적으로도 아주 유명한 비발디의 원곡과 달리 AI가 2050년 기후를 예측해서 편곡한 ‘사계’는 되게 우울하다”며 “‘봄’도 봄의 주제는 따 왔는데 전혀 봄 같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어 “AI가 편곡도 무지 어렵게 해 마치 새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연주하기도 매우 까다롭다”고 덧붙였다.

그가 잠깐 시연한 원곡과 AI곡의 같은 마디를 들어보니 실제로 느낌이 극명하게 차이 났다. 경쾌하고 따스한 선율에 봄의 정취가 실린 장조의 원곡과 달리 단조의 AI곡은 불협화음 속에 불길하고 황량했다. 임가진은 “말(가사) 없이도 감동을 줄 때가 있는 게 클래식 음악의 큰 매력”이라며 “(AI가 편곡한 ‘봄’을) 듣는 사람들이 그로테스크(기괴)하게 느끼고 ‘뭐지? 봄이 왜 이렇게 됐지?’라는 의문만 갖게 해도 성공한 연주가 될 것 같다”고 했다. AI가 만든 곡은 처음 연주해본다고 한 그는 “AI의 편곡 악보를 보니 편곡뿐 아니라 작곡 능력도 상당할 것 같다”고도 했다.  

임가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음악원과 줄리아드 음대(학사), 맨해튼 음대(석사) 졸업 후 부산시립교향악단(1999∼2005년)을 거쳐 2006년부터 서울시향의 간판 연주자 중 한 명으로 활약하고 있다. 무대에서 열정적인 연주를 하다가도 연주가 끝나면 환한 표정과 미소를 지으며 지휘자나 협연자, 관객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대 위의 임가진을 보면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진다는 관객들도 있다. “무대에 오르면 나(연주자)의 시간이 아니에요. 작곡가를 빛내주고 시간과 돈을 들여 찾아와준 관객을 위한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밝은 기운을 준다는 평은) 너무 좋은 칭찬이네요. 환하게 웃는 건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자라 표현하는 게 익숙해 그런 것 같습니다.”

서울시향을 비롯해 국내 교향악단 단원들이 무대에서 연주를 마친 후 서로 반갑게 안거나 악수하며 격려하는 문화도 임가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공연은 마치 전쟁을 치르듯 단원들이 협력해서 최선을 다하는 건데 종료 후 형식적인 인사만 살짝 하고 퇴장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는 게 임가진의 얘기다. “그래서 서울시향에 온 후 제2 바이올린 파트에 먼저 제안했어요. ‘우리라도 공연 끝나면 서로 웃으며 악수하거나 안아주자’ 하고 그렇게 했더니 곧 다른 파트도 따라 하더라고요. 그게 서울시향의 트레이드마크(상징)가 됐고 지금은 다른 교향악단도 하잖아요. 제가 되게 자부심을 느껴요.(웃음)”
바이올리니스트 임가진. 서울시향 제공
그는 부산시향 시절 인연을 맺은 부산의 아동복지시설 희락원도 꾸준히 돕고 있다. 제자들과 함께 희락원 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악기 연주를 지도한 것이다. 음악치료 프로그램도 개설하고 현재는 법인 감사까지 맡고 있다. “아이들이 악기를 하나 잡으면 자신과의 약속, 선생님과의 약속이 생겨요. 자신감이 올라가고 학업을 비롯해 계획적인 삶의 태도 등 악기를 배우며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납니다. 제자들이 30명 정도를 가르치고 있는데 음악을 전공하고 싶은 친구도 몇 명 있어요.” 

그는 명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의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과 관련, “(음악을 위해서라면) 절대 포기가 없는 분”이라며 “바이올린에 대해 잘 알고 상당히 유명한 연주자였기 때문에 바이올린 단원들에게 연주 노하우도 많이 전수해준다”고 말했다. 

임가진에게 음악은 어떤 존재일까. “연주를 준비하는 동안 고통을 주지만 관객과 나눌 때는 최고의 행복을 줍니다. 음악은 파도 파도 끝이 없어 계속 파야 하는 깊은 우물 같아요. 깊을수록 물이 맑아질 것을 기대하며 소리를 찾아가려 합니다.”

서울시향은 퇴근길 콘서트에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1악장과, 미국 작곡가 루카스 캔터가 AI로 작곡한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 3악장도 들려준다. 이어 AI가 완성한 베토벤의 미완성 교향곡 10번 3악장과 베토벤 교향곡 제2번 3악장을 연주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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