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점에 다시 서게 된 이정후

김형준 SPOTV MLB 해설위원 2024. 5. 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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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부상으로 메이저리그 첫 시즌은 실패
샌프란시스코가 좋은 성적 내고 사장이 건재하다면 향후 팀 내 입지 문제 없을 듯

(시사저널=김형준 SPOTV MLB 해설위원)

메이저리거 이정후(25)의 첫 시즌이 다소 허망하게 조기 종료됐다. 팀이 시즌의 25%를 소화한 시점에 일어난 시즌 아웃이다. 출발이 좋았던 이정후에게 불의의 부상이 닥친 것이다.

5월9일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자신의 파울 타구에 왼발을 맞아 타박상을 입었다. 세 경기를 쉬고 돌아온 13일의 복귀전.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경기에서 1회초 수비 2사 만루 상황에서 홈런성 타구를 잡기 위해 뛰어올랐다. 하지만 포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펜스에 충돌한 어깨를 잡고 쓰러졌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 ⓒAP 연합

1200만 달러 몸값에 270만 달러치 활약

이정후는 2018년 KBO리그 포스트시즌 도중 다이빙 캐치를 시도했다가 왼어깨가 탈구되는 부상을 입은 바 있다. 어깨를 감싸는 관절와순이 찢어져 이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회복에 최소 6개월이 필요한 큰 수술이었지만, 이정후는 넉 달 만에 돌아와 이듬해 개막전에 나섰다. 그런데 6년 전과 같은 부상을 또 당한 것이다.

찢어진 관절와순을 다시 봉합한 이정후는 이로써 잔여 경기 출장이 불가능해졌다. 재수술은 회복 기간이 더 길고, 첫 수술보다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전문의의 소견이다. 이정후는 메이저리그 데뷔 세 번째 경기에서 빠르게 첫 홈런을 신고했다. 하지만 좌우중간을 가르는 특유의 2루타는 나오지 않았다. 공을 띄우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15경기 연속으로 장타가 없었던 이정후는 바랐던 2루타가 나온 경기에서 타박상을 입었고, 부상에서 돌아온 날 시즌이 끝났다.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를 영입한 이유 중 하나는 스타성 있는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성적과는 별개로 샌프란시스코 팬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덕분에 샌프란시스코는 관중 수가 지난해 대비 세 번째로 많이 늘어난 팀이 됐다. 하지만 시즌을 일찍 마감함으로써 성공적인 데뷔 시즌이 되지 못했다.

선수들의 전체 승리기여도(WAR)를 전체 연봉으로 나눌 경우 승리기여도 1.0당 연봉은 800만 달러 정도다. 지난해 김하성은 연봉이 700만 달러였지만 승리기여도 4.3을 기록해 3460만 달러치의 활약을 펼쳤다. 반면 이정후는 승리기여도 0.3으로 270만 달러치의 활약에 그쳤다. 올해 받는 돈이 1200만 달러니까 몸값을 하지 못한 것이다.

1883만 달러의 평균 연봉이 팀 1위이기 때문에 첫 시즌부터 잘해야 했던 이정후는 스즈키 세이야(시카고 컵스), 요시다 마사타카(보스턴)의 데뷔 시즌과 비슷한 성적이 필요했다. 구장의 유불리가 반영되는 조정 OPS에서 스즈키는 113, 요시다는 109로 첫 시즌에 평균인 100을 넘긴 반면, 이정후는 89에 그쳤다.

이정후의 장점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유지됐다. 삼진이 두 번째로 적었고, 헛스윙도 두 번째로 적었다. 메이저리그 최초로 리그를 바꿔 2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한 루이스 아라에스(샌디에이고)만이 이정후보다 좋았다. 하지만 이정후는 장타를 만들지 못했다. 이정후는 KBO리그에서 장타 비중이 30%였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16%에 그쳤다. 안타 생산이 잘된 것도 아니었다. 아라에스는 공을 강하게 치지 않더라도 안타가 될 수 있는 발사 각도 8도에서 32도 사이 타구가 44%에 달한 반면, 이정후는 29%에 그쳤다. 공을 강하게 치면 땅볼이 되고, 공을 외야로 날리면 강한 타구가 나오지 않는 모습이 반복됐다. 이정후에게 새로운 스윙이 필요한 이유다.

중견수 수비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 이정후는 수비(OAA)와 어깨에서 정확히 평균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구장들이 모두 다르게 생긴 외야 펜스는 물론 기온·바람·공기의 밀도, 햇빛의 방향 등이 천차만별임을 감안하면, 갈수록 좋아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중견수 수비에 부담을 느끼는 장면이 여러 번 있었고, 결국 부상으로 이어졌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타구는 더 빠르게 날아온다.

샌프란시스코의 이정후(가운데)가 5월12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입은 후 라커룸으로 들어가고 있다. ⓒAP 연합

수비 부담 덜한 좌익수로 옮기는 게 더 유리

중요한 건 향후 이정후의 팀 내 입지가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다. 6년 1억1300만 달러 계약은 양날의 검이다. 최고 대우를 받은 탓에 성공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다. 반대로 보장 금액이 큰 계약은 선수를 지키는 보호막이 된다. 내일 방출하더라도 보장 금액을 다 줘야 하는 구단으로서는 좋은 활약을 할 때까지 기회를 주고 성장시킬 수밖에 없다.

위험한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박병호가 입단했을 때 미네소타 트윈스의 단장은 박병호를 성남고 재학 시절부터 지켜본 테리 라이언이었다. 하지만 박병호를 영입한 그해, 미네소타는 크게 부진했고 라이언은 해임됐다. 이듬해 박병호는 시범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새로운 단장은 박병호를 마이너로 내려보냈다.

2022년 12월, 보스턴은 요시다와 5년 90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보스턴의 하임 블룸 사장은 요시다의 성공을 확신했다. 하지만 요시다는 후반기에 무너졌고, 블룸은 해임됐다. 새로 온 사장은 요시다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전임 사장이 영입한 선수는 실패하더라도 신임 사장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 된다.

샌프란시스코의 파르한 자이디 사장은 이정후를 영입하기 전에 3년 연장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재계약 첫해라도 잘릴 수 있는 게 냉혹한 승부의 세계다. 자이디가 해임되고 새로운 사장이 온다면, 이정후의 입지도 나빠질 수 있다. 따라서 팀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자이디가 자리를 지키는 게 이정후에게 유리하다.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를 영입한 건 루이스 마토스(22)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자이디가 애지중지한 마토스는 지난해 데뷔했지만 공수에서 모두 실망스러웠다. 이정후가 부상을 당하고 나서 다시 중견수로 출전하기 시작한 마토스는 처음으로 선발 출전한 날 야마모토를 상대로 3점 홈런을 때려내더니, 5월18일 경기에서 5타점, 19일 경기에서 6타점을 올려 두 경기 11타점이라는 팀 타이 기록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정후는 마토스의 실패를 바라야 할까. 오히려 마토스가 중견수로 성공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이정후가 수비 부담이 덜한 좌익수를 맡으면 공격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배리 본즈의 마지막 시즌인 2007년 이후 18년 연속으로 개막전 좌익수가 바뀌었다. 올해 개막전에 나섰던 선수도 팀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본즈의 뒤를 잇는 좌익수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좌익수 수비를 더 잘할 수 있다면 좌익수가 되는 편이 낫다.

이번 부상이 뼈아픈 건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시행착오의 기회가 날아갔기 때문이다. 150타석밖에 출전하지 못하고 첫 시즌을 끝낸 이정후는 내년이 데뷔 시즌이나 다름없게 됐다. 하지만 어떤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지를 확인했기 때문에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타자인 이정후는 메이저리그 첫 시즌을 실패했다. 하지만 첫 시즌은 첫 시즌일 뿐이다. 예전 첫 번째 수술을 받은 후 이정후는 더 뛰어난 선수가 됐다. 하지만 이번에 도전해야 하는 대상은 세계 최고의 리그인 메이저리그다. 그렇게 이정후는 다시 출발점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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