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림 감독, '더 에이트 쇼'에 녹여낸 창작자의 고민 [인터뷰]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2024. 5. 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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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에이트 쇼'를 보다가 불편했다는 사람들의 반응을 더러 찾아볼 수 있다. 주최 측에게 재미를 줘 시간을 얻어내야 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갔기 때문이다. 결국 재미란 무엇이며 얼마나,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더 에이트 쇼'의 한재림 감독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고민을 작품에 녹여내며 시청자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더 에이트 쇼'는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런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더 에이트 쇼' 연출을 맡은 한재림 감독은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만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한재림 감독은 '더 에이트 쇼'를 통해 처음으로 드라마 제작에 도전했다. 영화와 드라마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더 에이트 쇼'는 공개 직후 국내 1위, 글로벌 2위를 차지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재림 감독은 작품을 사랑해 준 시청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아 기뻐요. 그래도 더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OTT는 처음인데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이다 보니 떨리고 설레더라고요. 영화가 즉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온다면 OTT는 서서히 반응이 일어나는 느낌이에요."

'더 에이트 쇼'는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 게임'과 '파이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두 작품의 특색을 합치고 각색하는 과정에서 한재림 감독은 콘텐츠 생산자로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고민을 이입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머니게임'을 제안받았는데 서바이벌이지만 많이 비켜나간 작품이더라고요. 보통 서바이벌 장르의 주인공은 능력이 있는 영웅인데, 여기서는 현실적인 인물이라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가 있더라고요. 추가로 서바이벌 장르를 비틀고 싶었는데 '파이 게임'이 한 명도 죽으면 안된다는 설정을 통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더라고요. 그 두 개를 합쳐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색을 하는 데 '파이 게임'에서 주최 측에게 재미를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결국 제가 하고 있는 일이더라고요. 그러면서 결국 '재미가 뭘까'라는 주제로 가게 됐어요. 저를 비롯한 콘텐츠 생산자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하면 보상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잖아요."

'더 에이트 쇼'를 감상한 후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주제 의식은 계급에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각색하는 과정에서 생산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 한재림 감독은 조금 더 다양한 의미를 담았다.

"저는 창작자로서의 제 고민을 담은 것 같아요. 지금은 '도파민의 시대'이고 재미있는 것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예전에는 콘텐츠를 통해 질문도 던졌는데 그런 것이 없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어요. 단순히 재미만 줄 것인가, 사유하고 고민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인가의 갈등 속에 있는 거죠. 뭐가 옳다는 건 아니에요. 저조차도 유튜브와 숏폼에 익숙해져서 극장에서 힘들 때가 있거든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시네마'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어요." 

그러다 보니 표현의 수위에서 더 많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장면이 무엇인지 알지만 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더 에이트 쇼'의 의미와 반대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재림 감독은 여전히 그 결론을 찾아가는 중이다.

"만들면서 도덕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어요. 어떤 장면을 넣으면 좋아하겠다고 예측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장면을 넣으면 이 작품을 배신하게 되는 거죠. 예를 들어 8층과 6층의 정사 장면을 넣으면 자극적이고 재미있어 할 걸 알지만 보여주지 못한 것이죠. 고문 장면 역시 윤리적으로 맞는 판단일까 싶었어요. 그런데 폭력을 통해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게 아니라 자극의 끝에는 결국 고통과 혐오만 남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넣은 거죠. 이런 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저도 답을 찾지 못해서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이러한 관점에서 7층의 원래 직업이 영화감독이라는 지점은 의미심장하다. 자신이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번번이 퇴짜 맞았던 7층은 '더 에이트 쇼'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쓰며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제가 7층처럼 똑똑하지도 않고 잘생기지도 않았지만, 관객에게 어떻게 재미를 줄 것인가 고민하는 지점에서는 굉장히 많은 것이 투영되어 있어요. 재미를 줘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다 주는 게 맞는 건가?' '어디까지 가야 하나' 이런 고민들이요. 예전에는 의미도 찾고 질문도 있어야 하는데 순수한 오락거리만 되어도 문제가 없고 오히려 더 선호하는 시대에서 영화감독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있는 거죠."

또한 광대였던 1층이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것 역시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1층의 직업은 광대잖아요. 사실 찰리 채플린을 떠올렸어요. 마지막에 1층이 영사기를 떼어내는데 영사기는 결국 '진짜 같은 가짜'를 보여주는 장치잖아요. 광대의 죽음이 곧 '시네마'의 죽음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마지막 음악 역시 '모던 타임즈'의 주제곡이고 '힘을 내요'라는 대사도 가져왔어요." 

/사진=넷플릭스

일부 시청자들이 결말에 대해 불편하거나 기분이 나빴다는 반응을 보인 것 역시 어느 정도의 의도가 담겨있었다. '더 에이트 쇼'에서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이 창작자로서의 고민이 녹아있다면 결국 이를 보는 주최 측은 '더 에이트 쇼'를 보는 시청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기분 나쁘라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러한 반응이 '기분 좋게 해주지 않았다'라고 느껴져요. 지금의 콘텐츠들이 가끔은 서비스업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럼 나는 서비스업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기는 거죠. 다른 서바이벌은 주최 측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보다가 빠져나오면 죄책감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요. 그런데 '더 에이트 쇼'는 내가 주최 측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느 순간 스스로를 건드리게 되는 거죠. 같이 고민해 보자는 지점도 그런 부분이에요."

물론, 콘텐츠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재림 감독의 질문이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한재림 감독은 결국은 자신의 고민을 시청자의 입장으로 치환해 의미를 확장했다.

"저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입장에서 이야기했지만, 보통 직장인들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시대에는 결국 남과 상관없이 살 수 없잖아요. 그렇다면 나는 주변에 어느 정도까지 미소를 지으며 어느 정도까지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고민해 볼 수 있다는 거죠. 제 입장에서는 관객이 저의 상사니까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고민했던 거고요."

'더 에이트 쇼'를 마친 한재림 감독은 차기작으로 웹툰 기반의 시리즈 '현혹'을 준비 중이다. 한재림 감독은 아직 '더 에이트 쇼'에 담은 고민의 답을 찾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그 고민을 내려놓고 조금 더 순수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음 작품 역시 시리즈물로 준비 중인데 매력이 있어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고 멜로물이라 '더 에이트 쇼'의 고민은 덜 들어가고 장르적이고 순수한 시리즈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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