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불법 로비·지역유착…부산 중견 건설사 비리 백태

차근호 2024. 5. 2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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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다툼 사주 일가 반목에 최악의 '오너 리스크'
재판 중 관련자 속속 추가 기소, 남아 있는 수사에 이목 집중
부산지검 동부지청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경영권을 둘러싼 부산 중견 건설사 사주 삼부자의 갈등이 비자금으로 시작해 불법 로비, 뇌물 등으로 확대되면서 지역 사회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회사 자금 유용과 탈세, 은행 직원들에 대한 금품 살포, 지자체 공무원에 대한 뇌물, 재개발 조합 임직원에 대한 특혜 분양, 수사·세무 당국에 대한 불법 로비 등의 혐의가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발단은 가족간 경영권 다툼

2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사주 일가의 가족 간 불화가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10월이다.

창업주인 아버지로부터 2002년 대표이사직을 물려받아 경영하던 장남 A(55)씨가 회사에서 축출되는 일이 발생했다

2020년 10월 장남 A씨가 돌연 대표이사에서 물러났고, 이듬해 3월에는 회사에서 아예 퇴직 처리됐다.

그 자리에는 차남 B(51)씨가 선임 됐다.

대표 자리에서는 쫓겨났지만, 그래도 회사 지분의 51%를 가지고 있던 장남에 대한 나머지 가족들의 공격은 이어졌다.

누나 C씨는 2015년 A씨에게 지분을 12%가량 넘긴 것은 무효라며 주장하고 나섰고, 차남이 대표이사를 차지한 회사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장남의 지분은 39%밖에 되지 않는다며 주주 명부를 변경해 버렸다.

2022년 5월에는 일선에서 물러났던 아버지(88)까지 복귀해 차남과 함께 대표이사로 중임했다.

장남은 법정 다툼으로 반격을 노렸다.

누나에게 지분을 사들인 게 유효하다고 주장했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법원은 장남의 손을 들어줬다.

아버지와 차남을 대표이사로 선임한 주주총회를 취소해 달라는 장남의 소송과 관련해서도 1심 법원은 장남의 주장이 옳다고 판시했다.

회사의 대표이사는 다시 장남으로 바뀌었다.

장남의 반격에 아버지와 차남은 '경찰 수사' 카드를 꺼냈다.

이에 장남도 맞고소에 나서면서 집안 분쟁에 검경이 개입하게 됐다.

비자금 [연합뉴스TV 제공]

82억원 비자금, 13억원 세금 포탈 드러나

수사에 들어간 검찰은 차남과 아버지가 그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82억원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2014년 8월부터 분쟁이 발생하기 전인 2020년 10월까지 하도급 업체에 부풀린 공사비를 지급하고 이를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만들었다고 봤다.

부풀린 공사비로 허위 세금계산서를 받아 2016∼2019년까지 법인세 13억6천500만원을 내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장남은 2018년 11월부터 2019년 9월까지는 자기 아파트 구입을 위해 계열 법인의 자금 42억원을 자기 계좌에 이체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약 40억원을 동생에게 허위 급여 명목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창업주인 아버지도 경영일선에 복귀한 뒤 장남과 같은 방식으로 5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는다.

차남이 대표로 있던 계열사의 보수 공사 대금 8천600만원을 대납하고, 자금회수 등 조치 없이 차남의 회사에 50억원을 사적으로 대여하기도 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회사 자금을 쌈짓돈처럼 마음대로 유용하고 회사 재산 전반을 사유화해 왔다"고 밝혔다.

청탁 [연합뉴스TV 제공]

비정한 가족들…"구속수사·세무조사 하라" 로비

이들 삼부자는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비정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아버지와 차남은 자신들의 고소로 장남이 경찰 조사를 받자, 장남을 구속해달라며 브로커를 통한 로비에 나서기도 했다.

2023년 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기업인이자 브로커인 D씨를 통해 전직 경찰관에게 3억1천500만원을 전달하고 경찰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들 부자의 로비에도 장남은 경찰 수사 당시에는 구속되지 않았지만,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이후 구속됐다.

검찰은 브로커 등이 실제로 경찰에 로비했는지와 관련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달 초 검찰이 사건 규명을 위해 부산경찰청 등을 압수 수색을 한 정황을 볼 때 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차남은 장남이 대표로 복귀한 회사에 대해 조속한 세무조사를 해달라며 로비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와 세무사 등 3명에게 로비 명목으로 5천500여만원을 건넨 정황을 포착한 검찰이 이들도 기소했다.

뒷돈ㆍ청탁 (PG) [연합뉴스 일러스트. 재판매 및 DB금지]

은행, 공무원, 재개발 조합에 뇌물·특혜

사주 일가는 공동주택 신축이나 재개발 등 사업과 관련해 인허가 부서 공무원, 은행, 재개발 조합 임직원 등에게 뇌물을 준 사실도 드러났다.

사주 일가는 2020년부터 2023일까지 해당 건설사의 거래 은행 직원 10여명에게 명절 떡값 등의 명목으로 수년간 총 8천여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과 선물,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직원 중 부서장 2명은 지난해 7월에 이 건설사가 은행에 담보로 제공한 신탁 계좌에서 70억원을 인출할 수 있도록 대출 조건을 변경해줘 은행에 손해 발생 위험을 높인 혐의를 받고 있다.

울산시 5급 공무원 등 2명은 공동주택 신축사업과 관련한 편의 제공 목적으로 각각 350만원과 2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남 양산시 5급 공무원도 2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재개발조합의 전 대표는 허위 급여 명목으로 이들에게 7천32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

해당 조합장과 이사, 사무장 등은 정상 분야가 보다 1억1천370만원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구입하는 특혜를 누리기도 했다.

재판과 향후 수사 방향은

검찰은 사주 일가족에 대해 올해 2월 첫 기소를 시작한 이후로 관련 사건이 마무리될 때마다 추가 기소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관련자 6명을 구속기소 했고 총 28명을 재판에 넘긴 상태다.

1심 재판을 맡은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는 사주 일가 비자금 사건에 대해서는 현재 2차례 공판을 진행했다.

은행 직원들에 대한 사건도 비자금 사건과 합쳐지면서 공판이 열렸다.

재판 도중 지병을 앓고 있던 사주 일가의 아버지(88)는 지난 3월 30일 사망하면서 지난달 17일 공소기각 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남아있는 쟁점은 구속수사, 세무조사를 위한 사주 일가의 전방위적 로비가 실제로 경찰과 세무공무원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다.

하지만 조만간 검찰 정기인사가 예정돼 있어 수사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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