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어르신들에게 혼난 어느 40대의 고백

방민준 2024. 5. 2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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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구력 20여년의 S는 스스로 어떤 골퍼와도 어울려 라운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40대 중반이라 아래위 15세 정도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극복하며 어울릴 수 있고 기량 면에서도 80대 초반을 치니 싱글이나 90대를 치는 사람과도 즐겁게 라운드할 수 있었다.



 



골프 품격을 따지자면 2등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규칙을 엄수하고 동반자를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누구나가 동반하기를 원하는 골퍼임을 자부했다. 중소기업을 알차게 경영하는 그는 기업경영 측면에서는 물론 골프에서도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두어 주 필드행을 거른 그에게 주말 라운드는 매우 기다려졌다. 한번 라운드 한 적이 있는 거래처 C사장이 주선한 것으로, 친구들과 함께 오겠다고 했다.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친구들이라면 60대 전후일 것이니 자신이 주도하는 라운드가 될 것이 뻔했다.



 



오랜만에 부담 없는 라운드로 평소의 기량을 발휘할 기회였다. 사교 골프에서 벗어나 신기록을 경신해 가는 골프 강자로 변신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약속한 골프장에 가기 전에 들른 연습장에서의 샷도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좋은 계절에 좋은 동반자들과의 라운드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높았다.



 



클럽하우스에서 동반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60대 중초반의 분들로 C사장과 P라는 분은 구력 20년에 80대를 넘나든다고 했다. K라는 분은 골프채를 잡은 지 2년 남짓으로 90대를 넘나든다며 방해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S는 C사장의 제안으로 타당 1,000원, 배판일 경우 2,000원으로 정한 친선형 내기에 동참하기로 했다. 세 사람은 스크래치로 하고, 늦게 배운 K씨에게 7개의 핸디캡을 주었다. 내기가 조금 싱겁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어쩌면 신기록 달성을 위해서는 부담 없는 내기가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기대와 낙관은 첫 홀 티샷을 마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C씨와 K씨는 교과서적인 스윙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나름의 스윙으로 티샷을 페어웨이 한 가운데에 안착시켰고 P씨는 나이를 의심케 하는 부드럽게 정갈한 스윙으로 역시 페어웨이를 지켰다. S의 티샷도 멋지게 날아 좋은 지점에 떨어졌으나 '어 이 어르신들 보통이 아니시네?'하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티샷이 너무 좋았든지, 모두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지 못하고도 안정된 어프로치와 퍼팅으로 모두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첫 홀의 결과를 보고 오늘 라운드가 심상치 않을 것임을 예견할 수도 있었는데 S는 동반자들의 나이만 생각했지 그들의 구력과 골프사랑을 간과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물론 이것이 실수임은 세 번째 홀을 마치면서 뼈저리게 후회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P씨는 비거리도 짧고 이렇다 할 장점이 눈에 띄지 않았으나 집중도가 탁월해 잘 막아 나갔고 C씨는 간혹 흔들리면서도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의 핸디캡을 지켜나갔다. K씨는 자신의 구력에 맞게 욕심부리지 않고 고수들로부터 한 수 배운다는 자세로 겸허하게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말하자면 모두 자신의 골프를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S의 플레이는 정반대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른들보다 비거리가 더 길어야 하고 스코어도 좋아야 한다는 욕심이 생기면서 엉키기 시작했다. 스윙은 하다 말고, 방향성도 잃어 티잉그라운드에 서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전반 나인을 끝낸 뒤 스코어는 초보인 K씨와 함께 50을 넘어 있었다. 반면 P씨는 3오버, C씨는 5오버였다.



 



스코어카드를 들여다본 S는 헛웃음을 지었다. 수년래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스코어였고 참담함 또한 처음 겪는 것이었다. 가벼운 내기였음에도 지갑은 얇아졌다.



이런 감정의 회오리 속에 후반 라운드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반면 세 동반자는 운동을 한다며 카트 타기를 거부하며 가볍게 뛰기도 하고 숲속으로 사라진 S의 공을 찾아주느라 열심이었다.



 



추락에 추락을 거듭한 끝에 18번째 홀을 벗어나면서 S는 모자를 벗고 세 어른께 머리를 숙이고 손을 내밀었다.



"어르신들 정말 무서웠습니다. 이런 경험 처음입니다." 그것은 거의 신음이자 비명이었다. 깊은 깨달음의 인사이기도 했다.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르신들과 다시 겨뤄보고 싶습니다."



 



어르신들과의 라운드 경험을 소상히 털어놓은 연습장 후배가 언제가 될지 모를 설욕전에 대비해 전과는 달라진 자세로 연습하는 모습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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