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필요로 존재하는 주한미군…‘철수 으름장’엔 냉철하게

한겨레 2024. 5. 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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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문장렬의 안보 다초점
주한미군 철수론
‘더 많은 분담금’ 요구했던 트럼프
재선 가능성에 정책 현실화 ‘공황’
미, ‘철수 카드’ 활용해 이익 극대화
안정적 주둔 ‘주문’에서 벗어나야
지난 2월29일 경기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순환배치부대 임무 교대식에서 미 육군 제3기병연대가 성조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한미군 철수론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왜 ‘지금 또’냐는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시 발언과 재선 가능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부자인 한국이 방위비분담금(사실은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금’)을 너무 적게 낸다고 하면서 5배로 인상할 것을 주장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서인지 한·미 정부는 2025년 말까지 유효한 현행 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의 후속이 될 12차 협상에 지난 4월 서둘러 착수하여 11월 미국 대선 전에 마무리하려 한다.

트럼프보다 더 구체적인 발언을 한 사람은 트럼프 정부에서 국방부 부차관보를 지냈으며 트럼프가 재선하면 안보보좌관을 맡을 것으로 거론되는 엘브리지 콜비다. 그는 지난 6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의 주 임무는 중국 억제로 전환해야” 하고 주한미군은 ‘인질’이므로 만일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다면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터득한 ‘철수론’ 효용

트럼프와 콜비의 발언에 대한 한국 내의 반응은 주한미군 철수를 “환영한다”는 소수의 진보적 시민단체를 제외하면 우려와 불만 일색이다. 주류 언론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단순한 우려를 넘어 거의 ‘공황’ 수준이다. 주한미군 철수론은 극단적 의견이며 한국전쟁이 나기 1년 전에 미군이 철수하고 한국을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을 연상케 하는 “자다가 벌떡 일어날” 말이라는 것, 냉엄한 국제안보 현실에 맞춰 극히 신중히 처리해야지 ‘안보 도박’은 안 된다는 것, 현실화할 경우 한국은 ‘국난’에 몰릴 것, 그래서 반드시 막아야 할 것 등이다. 주미 한국대사관도 방위비 관련 트럼프 측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합리적 수준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수십년간 보아온 이 징그럽도록 익숙한 풍경이 한국에서 다시 펼쳐지는 것을 보고 트럼프나 콜비 그리고 미국의 정치인들과 미군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만 해도 불쾌하지만 아마 ‘아직도’ 한국이 그렇게 약한가라는 놀라움과 조소, 그리고 어떤 ‘활용법’에 대한 상상이 아닐까.

미국은 처음부터 주한미군 자체를 활용해왔지 ‘철수론’을 활용하지 않았다. ‘철수론’이란 실제 철수도 가능하지만 그러지 않고 철수하겠다는 암시나 엄포, 협박과 같은 언설이다. 주한미군은 1949년 6월 완전 철수부터 2005년 1만명 감축까지 6회에 걸쳐 큰 변화를 겪었고 최근에는 2만8500명 규모가 유지되고 있다. 감축이나 철수는 철저히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에 따른 것이었고 동맹국인 한국과 사전 협의는 없었다.

탈냉전기에 주한미군에 큰 변화가 일어날 ‘뻔’했다. 미국의 세계전략이 변화하고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도 질적으로 변함에 따라 ‘한국 주도의 한국 방위’ 논의가 이루어졌다. 아이러니는 바로 그때부터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이 의도적으로 ‘철수론’을 활용하지는 않았겠지만 한국은 미군 철수보다는 돈 주면서 붙잡아두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1991년 첫해 분담금 1073억원은 이제(2023년) 그 12배로 뛰었다.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은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한-미 동맹이라는 ‘종교’의 ‘주문’(呪文)이 되었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주한미군의 철수보다는 ‘철수론’을 활용해 한국과 협상할 때 큰 이익을 취해왔다. 필자가 1996년부터 실무자로 참여했던 ‘한-미 미사일 회담’(한국의 미사일 능력 제한을 놓고 미국과 벌인 협상)에서 미국 쪽은 한국 쪽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간간이 언급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루어진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FOTA) 회의에서도 미국 쪽 협상대표(리처드 롤리스)는 주한미군 철수론을 가끔 꺼내 들었다. 당시에는 북핵 문제 이외에도 용산기지 이전, 주한미군 재배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등의 난제가 겹쳐 있었는데 모든 것이 미국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터득한 주한미군 철수론 활용법은 한-미 협상에서 미국에 거의 ‘만능의 보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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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해보지 못했던 비용·편익 평가

한국처럼 군사동맹 문제가 안보와 국방은 물론 경제와 외교(대북 포함) 문제까지 전 영역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점하는 ‘중견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지적 사항’에 충실하게 이 문제를 ‘극히 신중히’ 접근해보자. 기본적으로 미군 철수 여부는 주한미군이 전쟁의 억제와 전시 승리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평가에 달려 있다. 비용 문제 역시 중요한 평가 요소다. 한국이 ‘어느새’ 국력과 군사력에서 세계 선두 그룹에 들어섰지만 불행히도 지금까지 어떠한정부나 정당도 ‘공식적으로’ 이런 ‘비용 대 편익’ 평가를 해보지 않았다.

불행에는 다 이유가 있다. 미군의 주둔과 한-미 동맹 강화는 외교·정치·군사·경제 분야의 일부 기득권 세력에게는 확실한 이익이 되면서 미군 철수와 동맹 약화는 국민 다수에게 막연한 불안의 근원이다. 80년 가까이 사정이 이러했는데 어떤 정부나 정치 주체가 주한미군 철수론에 입이라도 벙긋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제 달라져야 한다. 국력에 기초한 국가의 자주성과 국민의 자존감이 살아 있고, 대외 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한 외교관과 어떤 외세의 침략에도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겠다는 군인들이 존재하며, 한반도 핵 문제도 이미 실패한 군사적 억제보다 정치외교적 해결의 가능성을 믿는다면, 주한미군 철수론을 오히려 우리가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활용법을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활용할 결심’을 해야 한다. 이는 전기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먼저 전원 스위치를 켜야 하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지만, 지금까지 그런 결심조차 없었던 것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고 사안의 민감성과 ‘폭발성’에 맞서는 용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철수가 이루어지더라도 이 결심에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

둘째, 정부의 대내외 입장 발표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과 진리’만 ‘서늘하게’ 언급해야 한다. 예컨대 “주한미군이 그동안 한국의 안보에 기여했다”, “한-미 동맹은 호혜적인 관계였다”, “미국의 국익과 결정을 동맹국으로서 존중한다”,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 군사동맹이 변화하더라도 한반도와 지역 및 세계의 평화를 위한 상호 협력은 지속될 것이다” 등이다.

셋째, 더 이상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이라는 주문에 홀려 한-미 현안 협상에서 과도한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 방위비분담금 협상,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관련 문제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현실적 문제의 하나가 바로 대내외적 조처다. 중국과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복원하고 북한과는 ‘평화적 두 국가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결연하고 성실하게 국민을 안심시키고 설득하고 지지를 구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국민 없이는 아무것도 옳지 않다.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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