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사들에겐 ‘이것’이 없다고?”...반박 못할 도쿄대 출신 의사의 쓴소리 [한중일 톺아보기]
◆ 의료 개혁 ◆
이 같은 상황은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부르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서도의료개혁 과정에서이 만큼 장기 대치와 혼란이 지속된 적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의료 대란은 초미의 관심사 입니다. 일본도 의대증원 이슈가 있었고 지금도 고질적인 의료 편중으로 고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 전문가도 아니면서 한국에서 유학했거나 단지 남편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전문가를 자칭해 한국에 훈수를 두는 이들도 일부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도쿄대 의대 출신 내과 전문의로 비영리단체 ‘의료거버넌스 연구소’ 를 이끌고 있는 가미 마사히로(上昌広)이사장이 전문가로서 견해를 밝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매체 신쵸샤 ‘포사이트’에 기고문을 올려 현재 한국에서의 상황은 “일본 의료계에도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로 인해 초래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울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3.5명으로 도쿄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경기권으로만 가도 1.8명으로 뚝 떨어집니다. 가미 이사장은 한국의 의료상황이 “일본과 비슷하지만 더 심각하다”고 짚었습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 명으로 같은해 기준 일본의 1.20 명보다 훨씬 낮습니다. 고령화율은 한국 약 18%,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율이 높은 일본이 약 29% 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출산율이 워낮 낮다보니 고령화 속도도 더 빨라 추세대로라면 2045년 전후 고령화율이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를 근거로 가미 이사장은 한국 정부의 의대 정원 증가 결정에 대해 “의사라는 엘리트 때리기로 인기를 얻으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면서도 “(한국이) 지방 의사부족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선 절대적 숫자를 늘리는 수밖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높은 수입이 예상되는 도심 지역에만 의사들의 개업이 집중되면서 지방은 아직도 의료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이에 지난달 재무성은 ‘재정제도 심의회(재제심)’를 열고 의료 서비스의 지역별 편중 해소를 위해 병의원 개업 규제와 수가 차등을 두는 방안을 제언했습니다.
의사 수 과잉 지역에서는 개업을 규제하거나 수가를 내리고, 부족한 지역에서는 수가를 올려 과잉 지역에서 부족 지역으로 의료 서비스 이동을 촉진한다는 취지입니다. 재무성은 지역 및 진료과 별로 정원이 정해져 있는 독일과 프랑스 사례를 예시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일본 의사회는 지역별 개업 규제에 반대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재무성은 미래 의사 공급 과잉 가능성에 대비해 의대정원 재조정을 검토 중 입니다.
그런데 가미 이사장은 재무성의 입장과 달리, 일본도 의사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쪽입니다. 그는 “현재 고령화율을 생각하면 일본도 증원이 더 필요한데 관련 논의는 전혀 나오지 않고있다” 며 “의료 편중만이 문제라는 건 국제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2000년대 들어 급격한 고령화로 의사 부족이 예상되자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증원을 추진했지만 대한의사협회 등의 반발과 집단행동에 번번이 없었던 일이 됐습니다. 현정부 이전 가장 최근 증원추진은 2020년 코로나 펜데믹 시기로, 당시 문재인 정권은 공공·지역의료에 공백이 드러나자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하려 했습니다.
공공의대의 경우 지방 의료를 위해 학비를 면제해주는 대신 면허 취득 후 10년간 지방 근무를 의무화하는 것으로, 일본이 도입중인 ‘자치(自治)의과대학’과 ‘지역정원제도’를 참고한 것입니다.
이때도 의협은 총파업을 예고했고 학생단체는 수업을 거부했으며 전공의들은 파업에 가세했습니다.
가미 이사장은 의협의 반응에 대해 의대 정원 이슈가 나올때마다 항상 반대했던 일본 의사회의 대응과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국민을 생각한다면 한국은 의사 숫자를 늘려야 하지만, 기득권층은 거부한다. 이 대목이 일본과 꼭 닮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그는 한국 정부가 당초 내년부터 2000명씩 2035년까지 최대 1만 5000명을 증원하기로 한데 대해서는 “무리 요소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의료계의 반대 등으로 큰 혼란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1년만에 단숨에 4배 증원을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겁니다. 그는 한국이 증원을 하되 점진적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입니다.
서구에서 의사는 성직자, 법률가와 함께 고전적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직군으로, 그리스 로마시대 때부터 독자적인 직업 규범을 형성해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사회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교회나 세속권력에 맞서더라도 주도적으로 나섰으며,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소명의식이 한국과 일본에서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겁니다.
가미 이사장은 이것이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합니다.
일본에 서구로부터 현대 의학의 본격 전래된 시점은 19세기 메이지 시대입니다. 이때 일본은 도쿄대 등 구 제국대학들을 설립해 인재를 육성했고, 이들을 유럽으로 보내 교육을 받고 오게했습니다. 그런데 근대화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의학 지식과 기술은 배워왔지만, 정작 의사로서 꼭 갖추어야할 소양인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서는 배워오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한국에도 그대로 이식됐습니다. 즉, 양국 모두 근대화 과정에서 서방으로부터 지식과 기술교육을 위한 시스템은 들여왔을지언정, 정신적인 부분까지는 계승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그는 “한국의 의사 파업은 현재 한국 엘리트들의 타락을 상징한다”며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 사례”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일본 국민들이 갖는 일본 의사들에 대한 이미지도 다르지 않다. 일본은 한국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의료 대란이 장기화 하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수 없겠지만 아쉬움은 남습니다. 증원뿐 아니라 대리수술 등 과거 의료개혁 이슈가 여러번 불거졌을때 진작 의사들의 진지한 자정노력과 타협이 있었더라면 지금 같은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대해 주먹구구식이라며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 대다수가 그들에게 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이유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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