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사들에겐 ‘이것’이 없다고?”...반박 못할 도쿄대 출신 의사의 쓴소리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4. 5. 2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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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톺아보기-132]

◆ 의료 개혁 ◆

의대 증원을 확정하는 대입 전형위가 열린 지난 24일 최창민 전국의과대학교수 비대위 비상대책위원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의료계는 자신들이 주장해온 의대 증원 백지화가 사실상 어렵게 되면서 전공의들의 복귀 명분이 사라졌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전공의들의 일괄 사직과 함께 시작된 의료대란이 100일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대화를 촉구하고는 있으나, 양측 다 서로의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설 기미는 없어 사태 해결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부르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서도의료개혁 과정에서이 만큼 장기 대치와 혼란이 지속된 적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의료 대란 이후 지난 3월 빅 5병원 수술 축소 현황. [그래픽=매경DB]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4일 “의사 파업이 길어지면서 일부 한국인들은 인내심을 잃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의료공백이 대중들의 의사에 대한 존경심을 시험하는 한편, 정부에 대한 분노도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의료 대란은 초미의 관심사 입니다. 일본도 의대증원 이슈가 있었고 지금도 고질적인 의료 편중으로 고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 전문가도 아니면서 한국에서 유학했거나 단지 남편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전문가를 자칭해 한국에 훈수를 두는 이들도 일부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도쿄대 의대 출신 내과 전문의로 비영리단체 ‘의료거버넌스 연구소’ 를 이끌고 있는 가미 마사히로(上昌広)이사장이 전문가로서 견해를 밝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매체 신쵸샤 ‘포사이트’에 기고문을 올려 현재 한국에서의 상황은 “일본 의료계에도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로 인해 초래됐다”고 주장했습니다.

韓 서울 인구집중 日보다 높고 의사 편중 더 심각...“절대 숫자 늘리는 수밖엔 없어”
지난 2020년 가미 마사히로(오른쪽) 의료 거버넌스 연구소 이사장이 코로나19를 주제로 열린 일본 참의원 예산위 공청회에 출석해 있다. 당시 그는 양국 방역대책관련 한국언론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교도 연합뉴스]
한국은 현재 전체인구의 약 19%가 서울에 집중돼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도쿄도의 중심지역인 23구 인구가 전체인구의 약 8% 이기 때문에 한국이 일본 보다 훨씬 서울 집중도가 높다고 할 수 있죠.

서울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3.5명으로 도쿄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경기권으로만 가도 1.8명으로 뚝 떨어집니다. 가미 이사장은 한국의 의료상황이 “일본과 비슷하지만 더 심각하다”고 짚었습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 명으로 같은해 기준 일본의 1.20 명보다 훨씬 낮습니다. 고령화율은 한국 약 18%,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율이 높은 일본이 약 29% 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출산율이 워낮 낮다보니 고령화 속도도 더 빨라 추세대로라면 2045년 전후 고령화율이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래픽=보건복지부]
고령화가 진행되면 의료 수요는 늘게 마련입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현재 한국의 인구대비 의사수는 2022년 기준 1000명당 2.12명(한의사 제외)으로 OECD 최하위 입니다. 인구 10만명당 의대 졸업생수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본은 한국보다는 순위가 높지만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 근거로 가미 이사장은 한국 정부의 의대 정원 증가 결정에 대해 “의사라는 엘리트 때리기로 인기를 얻으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면서도 “(한국이) 지방 의사부족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선 절대적 숫자를 늘리는 수밖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12년간 의대정원 약 4만명 늘어난 日...지역간 의료격차 여전하다는데
지난 1월 일본을 찾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다케미 게이조 후생노동성 장관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의대 정원 증가를 각의 결정한 건 2009년 입니다. 마침 지지율로 고전하던 자민당 아소 내각은 일본 의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증원을 추진했습니다. 이로써 2010년 29.5만 명이었던 일본의 의사수는 2022년 34.3만 명으로 약 4만명 가량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높은 수입이 예상되는 도심 지역에만 의사들의 개업이 집중되면서 지방은 아직도 의료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이에 지난달 재무성은 ‘재정제도 심의회(재제심)’를 열고 의료 서비스의 지역별 편중 해소를 위해 병의원 개업 규제와 수가 차등을 두는 방안을 제언했습니다.

의사 수 과잉 지역에서는 개업을 규제하거나 수가를 내리고, 부족한 지역에서는 수가를 올려 과잉 지역에서 부족 지역으로 의료 서비스 이동을 촉진한다는 취지입니다. 재무성은 지역 및 진료과 별로 정원이 정해져 있는 독일과 프랑스 사례를 예시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일본 의사회는 지역별 개업 규제에 반대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재무성은 미래 의사 공급 과잉 가능성에 대비해 의대정원 재조정을 검토 중 입니다.

그런데 가미 이사장은 재무성의 입장과 달리, 일본도 의사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쪽입니다. 그는 “현재 고령화율을 생각하면 일본도 증원이 더 필요한데 관련 논의는 전혀 나오지 않고있다” 며 “의료 편중만이 문제라는 건 국제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득권자들의 거부권’은 한·일 공통
지난 2020년 정부의 의사 정원 확대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 학생들이 단체행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지하다시피 한국 의대 정원은 1998년 이후 27년간 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2006년 351명(약 10%)가 줄어든 이래 동결상태 입니다.

한국 정부는 2000년대 들어 급격한 고령화로 의사 부족이 예상되자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증원을 추진했지만 대한의사협회 등의 반발과 집단행동에 번번이 없었던 일이 됐습니다. 현정부 이전 가장 최근 증원추진은 2020년 코로나 펜데믹 시기로, 당시 문재인 정권은 공공·지역의료에 공백이 드러나자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하려 했습니다.

공공의대의 경우 지방 의료를 위해 학비를 면제해주는 대신 면허 취득 후 10년간 지방 근무를 의무화하는 것으로, 일본이 도입중인 ‘자치(自治)의과대학’ ‘지역정원제도’를 참고한 것입니다.

이때도 의협은 총파업을 예고했고 학생단체는 수업을 거부했으며 전공의들은 파업에 가세했습니다.

가미 이사장은 의협의 반응에 대해 의대 정원 이슈가 나올때마다 항상 반대했던 일본 의사회의 대응과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국민을 생각한다면 한국은 의사 숫자를 늘려야 하지만, 기득권층은 거부한다. 이 대목이 일본과 꼭 닮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그는 한국 정부가 당초 내년부터 2000명씩 2035년까지 최대 1만 5000명을 증원하기로 한데 대해서는 “무리 요소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의료계의 반대 등으로 큰 혼란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1년만에 단숨에 4배 증원을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겁니다. 그는 한국이 증원을 하되 점진적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일 양국, 근대 의료교육 과정서 전문직업성 제대로 뿌리 못내려”
1877년 일본 도쿄 대학 의학부 건물 모습.
가미 이사장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의료계는 서구권과는 “다른 멘탈리티(사고방식)” 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양국에서 의학 교육의 근저에 자리잡은 건 서구와 달리 고전적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전문직업성)이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서구에서 의사 성직자, 법률가와 함께 고전적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직군으로, 그리스 로마시대 때부터 독자적인 직업 규범을 형성해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사회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교회나 세속권력에 맞서더라도 주도적으로 나섰으며,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소명의식이 한국과 일본에서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겁니다.

가미 이사장은 이것이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합니다.

일본에 서구로부터 현대 의학의 본격 전래된 시점19세기 메이지 시대입니다. 이때 일본은 도쿄대 등 구 제국대학들을 설립해 인재를 육성했고, 이들을 유럽으로 보내 교육을 받고 오게했습니다. 그런데 근대화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의학 지식과 기술은 배워왔지만, 정작 의사로서 꼭 갖추어야할 소양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서는 배워오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한국에도 그대로 이식됐습니다. 즉, 양국 모두 근대화 과정에서 서방으로부터 지식과 기술교육을 위한 시스템은 들여왔을지언정, 정신적인 부분까지는 계승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지난 17일 임현택 의협회장이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의대 증원 집행정지 기각 판결 관련 담당 판사가 대법관직 자리에 회유된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임 회장은 의대 정원에 대해 인구 감소 등을 고려할 때 의사수를 지금 보다 500~1000명 더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MBN 캡처]
가미 이사장은 무엇보다 “의대 증원에 반대한다고 환자의 목숨을 볼모로 삼는 것은 의사로서 해선 안되는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또 증원을 둘러싼 일련의 논의에 “환자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 국제적 감각이 결여돼 있다” 며 “이것은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 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한국의 의사 파업은 현재 한국 엘리트들의 타락을 상징한다”며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 사례”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일본 국민들이 갖는 일본 의사들에 대한 이미지도 다르지 않다. 일본은 한국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의료 대란이 장기화 하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수 없겠지만 아쉬움은 남습니다. 증원뿐 아니라 대리수술 등 과거 의료개혁 이슈가 여러번 불거졌을때 진작 의사들의 진지한 자정노력과 타협이 있었더라면 지금 같은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대해 주먹구구식이라며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 대다수가 그들에게 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이유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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