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에는 왜 그림자와 누드화가 없었을까?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김상욱 2024. 5. 26.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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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화가 마사초는 그림자를 그렸고, 조선 화가 김홍도는 그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의 눈으로 회화 뒤에 숨겨진 철학을 좇았다.
마사초가 그린 ‘그림자로 병자를 고치는 성 베드로’.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2015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빛과 광기술의 해’였다. 이는 1015년, 즉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이슬람 과학자 이븐 알하이삼(유럽에서는 ‘알하젠’)의 저서 〈광학의 서〉의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일반인에게 낯선 이 책은 빛의 반사와 굴절 그리고 ‘본다’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올바르게 기술한 뛰어난 저서다.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린아이에게 물어보면 눈에서 빛이 나온다는 답변이 제법 많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영어식으로 ‘유클리드’)는 눈에서 나온 빛이 물체와 접촉하여 촉각과 같은 방식으로 시각이 생긴다는 이론을 제시한 적도 있으니 터무니없는 답은 아니다. 알하이삼은 광원에서 나온 빛이 물체에서 부딪히고 반사되어 눈으로 들어와 시각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 빛이 눈의 수정체를 통과할 때 굴절하는 현상을 설명했는데, 수정체는 사실상 유리와 같다는 것도 알아냈다. 눈에서 나온 빛이 물체를 만지는 방식이 아니라 직진, 굴절하는 빛의 기하학적 분석을 통해 시각을 이해하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시각이 기하학, 즉 수학이 된 것이다.

이슬람의 저작들이 전해지며 14세기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광학의 서〉는 당시 피렌체의 건축가였던 기베르티, 브루넬레스키 등이 원근법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원근법은 평면에 그려진 그림에서 입체적 효과를 느끼게 만드는 기법이다. 똑같은 높이의 기둥이 줄줄이 서 있을 때 한쪽 끝에서 바라보면 가까운 기둥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기둥은 작게 보인다. 따라서 평면 그림에서도 기둥의 크기를 다르게 그리면 원근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단 기둥 크기가 변하는 비율이 빛이 직진하여 만드는 기하학적 비율을 정확히 따라야 한다. 이번엔 미술이 수학이 된 것이다.

원근법은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겠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다. 당시 종교화에서는 보이는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 예수와 성모같이 중요한 인물이 가장 크게 그려져야 했다. 원근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예수가 멀리 있다면 작게 그려야 한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 그리려면, 있는 그대로 보고 생각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물질적 증거에만 의존하여 결론을 내리는 과학적 태도가 원근법적 사고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슬람에서 〈광학의 서〉를 가지고도 원근법이 먼저 발전되지 못한 것도 그림에 대한 종교적 제약 때문이었으리라.

르네상스 시대를 연 화가 마사초는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원근법 그림인 ‘삼위일체’로 유명하다. 그가 그린 ‘그림자로 병자를 고치는 성 베드로’에는 길을 지나는 베드로와 땅에 엎드린 병자가 등장한다. 기적을 행한다는 베드로에게 차마 말을 걸어보지도 못하고 그림자에라도 몸을 닿게 하려는 병자의 안쓰러운 모습이 등장한다. 성서에 따르면 이렇게 해서 병자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따라서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그림자다.

누드화는 ‘수학적 비례’ 따라

동양화에는 그림자가 없다고 한다. 나도 이것저것 찾아봤으나 아직 그림자를 찾지 못했다. 김홍도의 ‘씨름’이나 신윤복의 ‘단오풍경’에도 그림자는 없다. 당시 그림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그리기 힘들었다. 사진도 없으니 기억을 되살려 그려야 했다. 즉, 본 것을 그대로 그린다기보다 기억나는 것, 즉 보았다고 믿는 것,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렸다는 뜻이다. 김홍도도 그림자를 보았겠지만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안 했을 것 같다. 그림자를 그리려면 우선 빛을 그려야 한다. 그림자는 빛이 직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직진하는 빛이 물체에 부딪치면 흡수 또는 반사되어 빛이 진행하지 못하는 영역이 생기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빛은 하나님이다. 따라서 이들은 빛과 그림자를 그리려 했을 거다.

김홍도의 <단원 풍속도첩>에 실린 ‘씨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동양화에 그림자가 없는 것이 빛의 과학적 특성을 몰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도 그림자는 그릴 가치가 없는, 아니 그릴 이유조차 없는 것이라 그리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극사실주의 작가가 아닌 다음에야 밤하늘이 배경인 풍경화를 그릴 때 눈에 보이는 모든 별을 빠짐없이 정확히 그릴 사람이 별로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동양화에서 그림자는 왜 그려야 할 대상이 아니었을까?

동양화에 그림자만 없는 것이 아니다. 프랑수아 줄리앙의 ‘불가능한 누드’에 따르면 동양화에는 ‘누드화’ 장르도 없다. ‘춘화’라는 일종의 포르노그래피는 있지만 예술작품으로서의 누드화는 없었다는 말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동서양 철학의 차이로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형상(形相)과 질료(質料)로 구성된다. 형상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번역어다. 사물의 본질인 형상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형상을 직접 볼 수 없다. 그래도 질료의 가시적인 형태를 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을 유추할 수 있다. 즉 누드화란 뼈와 살이라는 질료로 구성된 인체의 감각적 형태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 형상을 유추하고 찾는 심오한 예술 행위인 것이다.

서양 누드화는 모델 개인의 특성을 나타내기보다 몸의 형태와 동작, 즉 포즈에 집중하여 표현된다. 나체의 개인이 아니라 가려진 옷을 벗은 순수한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론상 이렇다는 것이지 관음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의도도 없지 않았으리라. 아무튼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간’ 도형에서 볼 수 있듯이 몸의 각 부분은 도형과 같은 엄밀한 비례로 그려져야 했다. 수학적 비례야말로 형상, 즉 이데아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옷을 입어 육체가 가려지면 기하학적 분석을 하기 힘드니 누드로 표현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 1863년 마네가 ‘올랭피아’에서 특정 매춘부의 누드화를 그렸을 때, 그는 예술로서의 누드화 규칙을 깬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 그림에서 인간의 본질이 아닌 사회 고발 포르노를 보고 분노한 것이리라.

근대과학 탄생시킨 〈광학의 서〉

동양에는 형상과 질료라는 개념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존재’보다 ‘과정’으로 이해하려 했다. 장자(莊子)는 “변화를 통하여 기(氣)가 있게 되고, 기가 변하여 어떤 형체가 있게 되고, 그것이 다시 변하여 생명이 있게 된다. 따라서 모든 것은 ‘변화’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고, 현자란 형체 있는 것 속에서 자리를 잡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동양화는 정지된 형태가 아니라 형태로 나아가거나 무형으로 되돌아가는 세계를 그린다. 바위는 형태가 불명확하고 강은 흐릿하고 모호한 선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동양화에서는 근육이나 힘줄처럼 정지한 신체의 부위를 정확히 그리기보다, 몸 전체에 생명력을 주는 기와 경락(經絡)의 순환체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 순환은 몸 내부에 있어 누드로 그려봤자 드러낼 수 없다. 동양에서는 신체의 비례 같은 기하학적 분석에 관심이 없었다. 몸은 기를 통하게 하는 매체에 불과할 뿐이다. 더구나 인간뿐 아니라 산, 바위, 구름, 나무 모두 기의 응결물이다. 우주적 순환과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굳이 인간을 그릴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송(宋)대에 와서는 인물화보다 풍경화가 선호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동양의 문인화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쓴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림을 통해 대상의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기운과 정신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물도 대충 그리는 판에 그 잔재에 불과한 그림자까지 그릴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빛의 직진에 대한 이해가 원근법을 탄생시켰다면 빛의 굴절에 대한 이해는 광학기구를 탄생시켰다. 눈이 유리구슬과 같은 것에 불과하고 수정체가 빛을 굴절시키는 장치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제 근시나 원시를 극복할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의 눈앞에 눈과 같은 유리구슬, 즉 인공 눈을 놓는 것이다. 안경이다. 그렇다면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을 더 잘 보이게 만들 수는 없을까? 이제 인공 눈을 차례로 두 개 놓으면 된다. 즉, 렌즈 두 개로 구성된 망원경이다. 1608년 네덜란드인이 발명한 망원경은 당시 최첨단 전쟁 무기였다. 멀리서 적의 움직임을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갈릴레이가 만든 망원경. ⓒWikipedia

망원경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1년 후 피렌체의 한 사람이 소문만 듣고 자신이 직접 망원경을 제작한다. 그 사람은 이걸로 하늘을 관찰했고, 그 결과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과학의 초석을 놓게 된다. 그의 이름은 갈릴레이다. 갈릴레이는 달의 표면이 울퉁불퉁하다는 것과 목성에 위성이 있다는 사실을 관측한다. 이것은 모두 당시의 천문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로부터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고, 나아가 물체의 운동에 대한 법칙을 찾아낸다. 갈릴레이가 제시한 운동법칙을 수학으로 정리한 사람이 뉴턴이다. 이제 과학도 수학이 되었다. 결국 〈광학의 서〉는 이렇게 물리학과 근대과학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유엔은 2015년을 빛의 해로 정한 것이리라.

동양화에 원근법이나 누드화가 없었던 것은 오류나 잘못이 아니다.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가 가진 생각의 틀로 보기 때문이다. 그 틀은 자체로 정합적일 뿐,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과 다른 틀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필요할 때 자신의 틀을 깰 수 있다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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