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형님들, 아직 안 죽었다 [음란서생]

배순탁 2024. 5. 26.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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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grunge)의 시대가 있었다.

얼터너티브(alternative)가 곧 시대정신이던 때가 존재했다.

"펑크가 아니라 얼터너티브입니다." 방송에서 이미 답하기는 했지만 여기 적어본다.

'먼지' '때'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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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잼의 신보 〈다크 매터〉를 들으면 알 수 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명언은 축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펄 잼이 지난 4월에 낸 <다크 매터> 앨범 커버.

그런지(grunge)의 시대가 있었다. 얼터너티브(alternative)가 곧 시대정신이던 때가 존재했다. 너바나가 리드했다. 펄 잼이 뒤따랐다. 사운드가든, 앨리스 인 체인스, 스매싱 펌킨스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라디오 관련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어느 날 너바나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Smells Like Teen Spirit)’이 나갔다. 그러면서 배철수 DJ가 이 곡을 ‘펑크(Punk)’라고 설명했다. 문자가 왔다. “펑크가 아니라 얼터너티브입니다.” 방송에서 이미 답하기는 했지만 여기 적어본다. 저 문자는 두 가지 이유에서 틀렸다.

첫째, 펑크가 맞다. 일단 곡이 실린 〈네버마인드(Nevermind)〉부터 펑크의 전설 섹스 피스톨스의 앨범 〈네버 마인드 더 볼럭스, 히어즈 더 섹스 피스톨스(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1977)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너바나의 음악은 “코드 세 개만 알면 칠 수 있다”라는 펑크 정신에 기초해 쓰인 곡이다. 정말 연주하기 쉽다. 단, 그들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펑크를 ‘잘 들리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생전 커트 코베인은 자신들의 음악을 베이 시티 롤러스에 비유한 적도 있다. 베이 시티 롤러스는 전형적인 슈가 팝 ‘아이 온리 원트 투 비 위드 유(I Only Want to Be with You)’를 히트시킨 밴드다.

둘째, ‘얼터너티브’는 장르가 아니다. ‘대안적’이라는 뜻이다. 그 어떤 음악이든 대안적일 수 있다. ‘그런지’는 장르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먼지’ ‘때’라는 뜻이다. 특유의 정돈되지 않은 지저분한 사운드를 의미한다. 더불어 구멍 숭숭 뚫린 티셔츠와 청바지로 대표되는 커트 코베인의 외양을 ‘그런지 패션’이라고 불렀다.

너바나가 펑크라면 사운드가든의 기초는 헤비메탈에 있었다. 위에 언급한 밴드들 중 가장 정교한 연주를 들려줬다. 이 밖에 앨리스 인 체인스의 세계는 사이키델릭에, 스매싱 펌킨스는 아트 록과 드림 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요컨대 캐릭터가 모두 다르다. 이걸 ‘얼터너티브’라는 수식어 하나로 다 묶어버렸으니 음반사와 비평가들이 지은 죄가 크다. 홍보하기에 유리하고, 비평하기에 유용한 도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 최애는 사운드가든이었다. 기본적으로 메탈 키드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첫사랑은 펄 잼이었다. 그들의 데뷔작 〈텐(Ten)〉(1991)과 2집 〈브이에스(Vs.)〉(1993)를 고등학교 때 카세트테이프가 닳도록 반복 청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펄 잼은 장수 밴드이기도 하다. 스매싱 펌킨스도 현재 활동하긴 하지만 잦은 멤버 교체로 폼이 일정하지 못했다. 펄 잼은 다르다. 드러머를 제외하면 라인업에 큰 변동이 없었다. 디스코그래피에 크게 떨어지는 작품이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신보 〈다크 매터(Dark Matter)〉 역시 마찬가지다. 속된 말로 이 형님들, 아직 안 죽었다. 활동 초기처럼 광폭하게 말 달리는 곡은 여기 없다. 대신 여유와 노련미가 자연스럽게 깃들어 있는 곡이 쭉 이어진다.

MBC 라디오 〈배순탁의 B사이드〉에는 ‘삼위일체의 시간’이라는 코너가 있다. 앨범 한 장 다 들을 시간이 없는 바쁜 현대인을 위해 핵심이 되는 세 곡만 추려서 감상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다음 세 곡을 온 마음 다해 추천하고 싶다. 순서대로 ‘스케어드 오브 피어(Scared of Fear)’ ‘레키지(Wreckage)’ 그리고 ‘어퍼 핸드(Upper Hand)’다. 과연, 21세기 펄 잼의 앨범 중 최고라는 평가가 과찬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을 터이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명언은 비단 축구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배순탁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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