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와 가격 비슷한데 돌봄까지”… ‘합법’ 필리핀 가사도우미 붐 생길까

손덕호 기자 2024. 5.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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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연구 결과 필리핀 출신 가사관리사와 함께 살면
자녀 영어 점수 다른 아이보다 높아
영어 유치원 학원비와 비슷한데 가사노동도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외국인주민 정책 마스터플랜 발표 기자회견을 위해 단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가사관리사) 100명이 오는 9월 서울시 가정에 배치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9월 국무회의에서 양육 부담 완화와 저출생 해소를 위해 제안한 지 2년 만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상당한 수준의 영어 실력도 갖추고 있어, ‘영어유치원’(유아 영어학원)보다 저렴한 가격에 돌봄 서비스까지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과거 ‘저렴하고 영어 교육 도움된다’며 불법 채용

26일 서울시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오는 9월 시작된다. 경력과 지식, 어학능력(한국어·영어)을 갖췄고 범죄 이력 등이 없다고 검증된 24~38세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교육을 받은 뒤 가정에 배치된다.

당장은 시범사업이어서 100명을 선발한다. 이들은 정부 인증기관이 고용한 뒤 가정에 출퇴근하는 방식으로 근무한다. 20~40대 맞벌이, 다자녀, 한부모 가정에 우선 배치된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내년에는 500명으로, 2026년에는 1000명으로 확대 도입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가사관리사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은 영주권자나 결혼이민자가 아니라면 재외동포(F-4)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중국동포(조선족) 뿐이었다.

그러나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과거 국내에서 음성적으로 일했었다. 법무부 인천공항출입국사무소는 2014년 1월 필리핀 국적 입주 가사관리사 26명을 적발하고 이들을 고용한 22명에게 9350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했다. 적발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대부분 단기방문(C-3) 비자로 입국한 뒤 불법 체류하던 상태였다.

당시 국내가정이 적발 위험을 감수하고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고용한 것은 임금이 쌀 뿐만 아니라, 영어를 말할 수 있어 자녀 영어 교육을 위한 수요도 있기 때문이라는 게 출입국관리사무소 측 설명이었다.

오픽 등급표.

◇영어 면접 통과해야 한국 입국 가능…오픽 IH 등급이면 ‘합격’

이번에 합법적으로 국내에 취업하려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영어 실력을 공인받아야 한다. 필리핀 정부가 낸 한국 근무 가사관리사 선발 공고를 보면 지원자들은 두 번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시험은 고용허가제 한국어 능력시험(EPS-TOPIK)이고, 두 번째 시험은 체력 테스트와 한국어·영어 면접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영어 면접은 점수를 매기지 않고 합격 또는 불합격(PASS/FAIL)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원자 중 영어 말하기 시험인 오픽(OPIc)과 토익스피킹에서 IH(Intermediate High)나 그보다 높은 AL(Advanced Low) 등급을 받은 성적표를 제출하면 영어 면접이 면제된다.

오픽 기준으로 IH는 예측하지 못한 복잡한 상황을 만나더라도 대부분의 상황에서 사건을 설명하고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등급이다. AL 등급은 익숙하지 않은 복잡한 상황에서도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 능력을 갖췄을 때 받는다.

삼성전자 DX부문(가전·모바일) 국내영업마케팅 직군에 지원하려면 오픽 IM 등급이어도 가능하지만, 해외영업 직군에 지원하려면 이보다 높은 IH 등급을 받아야 한다.

휴일을 보내려 홍콩 센트럴 역 앞으로 나온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출신 입주 가사관리사들. 한국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홍콩과 달리 가정에 입주해 일하지 않고, 퇴근 후와 휴일에 쉴 수 있는 일정한 숙소가 제공된다. /홍콩=김효선 기자

◇필리핀 가사관리사, 주 30시간 150만원 정도면 고용 가능…영유와 비슷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받는다. 주 40시간 일한다면 고용한 가구는 월 206만원보다 많은 임금을 줘야 하는 셈이다. 다만 선발 공고에 따르면 한국과 필리핀 정부는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일주일에 최소 30시간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올해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가사관리사 임금은 최소 월 154만원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유아 영어학원 월 평균 교습비는 지난해 기준 124만원이다. 세종이 170만3000원으로 가장 높고, 서울은 144만1000원이다. 부모가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고용하면 유아 영어학원과 비슷한 비용으로 자녀가 일상생활에서 영어 사용 환경에 노출되고, 돌봄과 관련된 청소, 빨래, 음식 조리 등의 서비스도 제공받을 수 있는 셈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자녀의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홍콩에서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가사관리사가 각 가정에 입주해서 일하고 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는 지난해 7월 서울시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현지 연구 결과를 인용해 “영어를 쓰는 나라(필리핀) 출신 가사 도우미와 함께 살 경우 아이들의 영어 점수가 다른 아이보다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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