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레전드' 염기훈을 이렇게 만들었나 [이재호의 할말하자]

이재호 기자 2024. 5.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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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수원 삼성의 염기훈(41) 감독이 자진사임했다. 25일 서울 이랜드전 역전패로 5연패를 당하자 박경훈 단장을 만나 자진사임 의사를 밝혔고 선수단 버스를 막은 팬들에게도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게 수원 삼성의 레전드가 떠나게 됐다. 한때 수원 팬들의 자부심이자 가장 사랑하는 이였던 염기훈을 대체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일까.

ⓒ프로축구연맹

▶선수로 수원 레전드가 된 염기훈

염기훈은 2010년부터 2023년까지 수원 선수로 뛰었다. 사실 이전에도 충분히 훌륭한 커리어를 지닌 선수였다. 전북 현대 선수로 2006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이었고 K리그 신인왕도 받았다. 염기훈의 국가대표 커리어 대부분도 수원 이적 이전에 있었다.

이적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던 염기훈. 하지만 2010 월드컵 대표, 2011 아시안컵 등을 거친 것은 물론 수원에서 3번의 FA컵 우승, 3번의 리그 베스트11, 2번의 도움왕 등을 통해 수원의 레전드로 인정받았다.

이 시기가 수원이 투자가 줄어들던 시기였기에 염기훈 같은 뛰어난 선수가 있다는 것은 수원 팬들에게 자부심이었다. 팀이 추락할수록 염기훈에 대한 수원 팬들의 사랑은 늘어났다. 염기훈 역시 수원 팬들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선수로 구단 레전드의 길을 걸었다.

ⓒ프로축구연맹

▶2021년부터 3년간 49경기 1골 0도움

하지만 냉정하게 2021시즌부터는 한계가 명확했다. 이미 2021년에 38세의 나이였고 이때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49경기 1골 0도움의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출전기록을 늘린 것 외에 의미를 가지기 힘들었다. 염기훈이라는 고액 연봉자, 그리고 팬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받는 선수를 어떻게 대우하고 활용할지에 대해 수원 감독들은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감독과 염기훈의 마찰이 있을 때도 수원 팬들은 오히려 염기훈의 편에 섰다. 염기훈은 수원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다. 염기훈이 어떤 공격포인트도 올리지 못하는 시기에 수원의 추락은 급격해졌다. 염기훈은 '군기반장'을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연봉만 많이 받고 겉멋만 들었다'는 수원 선수단에 대한 혹평에 베테랑 염기훈의 역할론이 비판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염기훈에 대한 수원 팬들의 지지는 대단했다.

축구계 안팎에서 '염기훈이 선수 은퇴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있었고 2021년부터는 코치에만 전념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3년정도 코치만 전념했다면 감독으로 더 나았을지 모른다.

'K리그 역사상 이정도로 압도적 지지를 받는 선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사랑을 받은 염기훈에게 구단도 함부로 '은퇴'를 중용할 수 없었다. 이정도 선수는 자신이 은퇴시기를 정해야하는데 염기훈은 40세까지도 선수를 하길 원했다. 팬들은 코치를 해야할 염기훈을 선수로 더 보길 원했다.

ⓒ프로축구연맹

▶수원 프런트의 오판

그러다보니 지난해 김병수 감독 경질을 결정하며 수원 프런트는 '선수' 염기훈을 '감독'으로 앉히는 기막힌 악수를 둔다. 수원 팬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는 염기훈이라면 팀 최악의 상황에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했다.

감독 경험이 전무한 염기훈이 베테랑 감독도 버티기 힘든 경질 위기라는 상황을 이겨낼리 없었다. 그렇게 수원은 사상 첫 K리그2 강등을 경험했고 그럼에도 수원 프런트는 또 염기훈을 믿고 정식 감독으로 부임시켰다.

염기훈은 4월 무패를 통해 이달의 감독상을 받을 정도로 잘했다. 그러나 5월 전패로 5연패로 팀을 떠나게 됐다. 재밌는건 염기훈 감독이 떠나는 시점에도 수원은 리그 2위인 서울 이랜드와 고작 승점 3점차이인 6위라는 점이다. 즉 4연패를 당했어도 이랜드전을 이겼다면 리그 2위였다는 것이다. 결과가 5연패일 뿐이지 객관적인 성적도 생각보다 영 나쁘지 않다(6승1무7패 6위).

물론 혹자는 패가 너무 많다고 말한다.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2021년 대전 하나시티즌은 12패를 하고도 승격했다. 순위는 '몇패'를 했느냐가 아니라 상대보다 승점을 많이 땄느냐로 결정된다.

게다가 염기훈 감독은 신임 감독이다. 프로 감독 경험이 없으니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여타 감독보다 미흡할 수밖에 없다. 그럴때는 박경훈 단장을 포함한 수원 프런트가 잘 도와야 한다. 특히 박경훈 단장을 데려온 것은 감독 경험이 풍부한 박경훈 단장이 감독으로 초짜인 염기훈의 '경험 부족'을 보완해달라는 의미였지만 그것이 잘되지 않았다는 후문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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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와 감독, 팬들의 확연한 온도차

어떤 구단도 기나긴 1년의 시즌을 지내다 보면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 어떤 팀이든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어있고 안 좋을 때를 최대한 줄이는게 좋은 팀이다. 4월 '무패'로 역대급 성과를 낸 수원은 5월 반대로 '무승'으로 역대급 참사를 겪었다. 6월 또 어떤 성적을 낼지는 모르는 법이다.

만약 염기훈이 시즌 시작부터 부진한 성적을 보였다면 어떤 방어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분명 4월 무패의 성적으로 증명했다. 그렇다면 5월 부진했더라도 4월 잘한 성적이 있으니 믿음과 격려로 6월에 더 잘하라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4월 잘할 때도 의심하던 팬들은 5월 성적이 좋지 않으니 기다렸다는 듯 비난하고 버스를 막았다. 여전히 6위, 2위와 한경기인 승점 3점차인데도 말이다. 대체 선수시절 그렇게 맹목적으로, 혹은 지나칠 정도로 염기훈에 보냈던 사랑을 '감독' 염기훈에게 그 절반이라도 줄 수 없었던 것일까.

혹자는 말한다. 염기훈이 감독직을 거절했어야 한다고. 하지만 팀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누구보다 수원을 사랑한다는 이가 '내가 구해보겠다'는 호기로움을 가지는 것이 문제였을까.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축구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포츠에서 '구단 레전드'로 칭송받았지만 선수 은퇴 후 끝내 해당 구단의 감독직을 맡지 못하고 커리어가 끝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감독도 농익고, 구단도 원하는 그런 완벽한 타이밍은 잘 오지 않는다. 염기훈 감독은 자신에게 온 기회를 잡았을 뿐이다. 잘하기 위해 오전 훈련을 위해 아침에 출근했다 밤 12시가 되도록 상대팀 분석을 할 정도로 노력했다. 기회를 준 수원 프런트의 잘못을 지적해야지 그 기회를 받았다고 염기훈 감독을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내홍 끝에 지휘봉을 잡은 염기훈. 하지만 프로 감독으로써 고작 20여경기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어쩜 이렇게 선수 시절과 감독에서 온도차가 극명할 수 있었을까.

수원 팬들의 과할 정도로 많은 사랑은 염기훈의 기나긴 선수생활과 수원 구단의 '감독을 시켜도 괜찮겠다'는 오판을 하게 만들었다. 감독이 됐을 때는 선수 때 보내줬던 그 사랑이 필요했지만 오히려 감독이 되니 따듯한 사랑과 격려보다 엄동설한의 겨울 속에 내몰렸다. 팬들의 지지도, 구단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레전드'가 설 자리는 없었다.

누가 '레전드' 염기훈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팬들일까 수원 구단일까, 아니면 염기훈 자신일까.

ⓒ프로축구연맹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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