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제 후회수' 입법 임박…정부는 '반대 토론회'만

CBS노컷뉴스 장관순 기자 2024. 5. 26.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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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28일 본회의서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 처리 예정
HUG가 피해자에 자금지원 후 주택 매각해 비용회수
재원 주택도시기금, 활용 타당성 논란…회수율도 저조
국토부, 세차례 토론회 열고 문제점 조목조목 비판
대체 발의나 정책 발표는 없어…거부권 행사에 의존
지난 8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여덟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

전세사기 피해가 정부 공인 1만7천여건에 이르고, 사기 피해자 8명이나 유명을 달리한 가운데 '선(先)구제 후(後)회수' 입법이 임박했다. 국회가 관련법안 처리를 예고한 상황에서 정부는 '재정 부담' 등 이유로 반대하지만 대안을 내지 못했다.

26일 국회 등에 따르면 이번주 임기가 종료되는 21대 국회는 28일 마지막 본회의를 열어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을 처리한다. 과반 의석인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의지가 확고한 만큼, 가결 처리가 확실시된다.

보증금 일부 먼저 지급, 주택 매매로 자금 환수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은 임차보증금 한도를 3억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올려 피해인정 범위를 넓혔다. 여러 피해자가 우선매수를 원하면 임차보증금 비율에 따라 살고 있는 주택을 매수하도록 했고, 전세사기 주택 매입에 실패한 피해자에게는 공공임대주택 우선 공급 기회를 부여한다.

법안의 핵심은 '선구제 후회수' 제도화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피해자로부터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매입하는 형식으로 '먼저 구제', 전세사기 주택을 적정한 값으로 경매 등 매각해 투입 비용을 '나중 회수'한다는 내용이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피해자법 시행 1년간 대환대출 정도의 혜택만 실질적으로 부여돼 '사기당한 채 전세자금 빚을 또 내는' 처지라고 호소한다. 사기를 벌인 임대인의 재산 추적이나 추심 권한이 없는 피해자로서는 선구제 후회수 제도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법 개정안에서 선구제 지원액, 즉 임차보증금채권의 매입가격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있는 '우선변제 보증금 일정액'의 이상이다. 우선변제권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서울 5500만원, 비서울 과밀억제권역 4800만원, 광역시 2800만원, 기타 2500만원 등으로, 주택가액의 최대 2분의 1까지만 인정된다.

개정안은 또 주택이 팔릴 때까지 피해자가 HUG에 임대료를 내고 거주할 수 있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해당 주택을 공공임대주택으로 매입해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공공임대주택으로 매입되면 피해자가 우선 공급받을 수 있다.

피해자 보증금채권보다 우선하는 선순위저당채권이 있을 때는 피해자가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에 선순위채권 매입을 신청할 수 있다. 선순위 채권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이상 KAMCO에 채권을 팔아야 한다. 피해자가 원하면 1년 이상 주택 경매절차를 신청하지 않을 수 있다.

이같은 절차에 투입되는 재원은 주택도시기금이다. 개정안은 '국가가 임차보증금반환채권, 전세사기피해주택, 선순위 저당채권의 매입비용과 관련 부대비용을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28일 국회 본회의 처리가 예정된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 내용.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캡처

주택도시기금, 무주택 서민들 청약통장 기반

법률 개정안을 거부하는 정부의 논리는 주택도시기금 재원 활용의 타당성 여부, 선구제 후회수 성립 가능성에 대한 회의에 맞춰져 있다.

주택도시기금은 청약저축이나 국민주택채권 등으로 조성되고, 주로 건설사의 주택건설자금이나 국민의 주택구입자금에 대출되는 재원이다. 국토부는 "무주택 서민이 내집 마련을 위해 저축한 청약통장 기반의, 무주택 서민이 잠시 맡긴 돈"(박상우 장관)이라고 규정한다. 상환 의무가 있는 부채성 재원인 만큼, 소모성 지출에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건설경기 부진, 청약저축 해지 증가 등 경제환경이 변화하면서 주택도시기금의 여유자금마저 감소세라는 지적이다. HUG에 따르면 2021년말 49조원에 달했던 여유자금은 올해 3월 현재 13조9천억원까지 줄었다. 선구제 가용재원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세사기피해자법 일몰 시기인 내년 5월까지 공인받은 피해자는 3만6천명에 달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한다. 이들을 구제하려면 3조원 이상이 보증금채권 매입에 투입돼야 한다고 본다. 피해자단체 추산 5천억원 미만에 비해 예상 비용이 크다.

경매가격 변동성이 큰 탓에 주택 낙찰가율 산정이 쉽지 않은데, 이 탓에 보증금채권의 가치평가에서 피해자와 이견이 생길 수 있다. 또 선구제 금액이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우선변제액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피해자가 보증금을 전액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후회수가 100% 될 것인지에도 정부는 비관적이다. HUG의 임대인 대상 대위변제율은 10%대로 알려져 있다.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대신 준 뒤 집주인에게 되받아낸 수준이 이렇다면, 특히나 사기 범죄자에게서는 회수율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국토교통부가 23일 개최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종합 토론회' 발표 내용. 국토교통부 제공

국토부, 토론회만 세번…법안 대응도 정책발표도 없어

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최근까지 한달간 3차례 토론회를 열어 여론전을 폈다. 법무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를 동원한 토론회가 이어졌다.

그러나 당정협의를 통한 법률안 대안 발의나, 정부 차원의 추가대책 발표 등 다른 정책적 시도는 없었다. 당초 이달 중순쯤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지원 강화방안 발표가 국토부 안팎에서 거론됐으나, 결국 발표는 없었다.

물론 국토부도 국회를 향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의사는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총선을 비롯한 정치 일정과 여당 측 이견 등에 따라 관련 시도가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는 동안 '피해주택 매입으로 주거안정을 지원하겠다'는 LH의 토론회 발제 정도가 정책 보완의 사실상 전부였다. 이마저도 기존과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 데다, 구제의 '속도'도 문제시됐다. 전세사기피해자법 시행 1년간 LH가 매입해 공공임대로 전환을 마친 사례는 2건에 그쳤는데, 이 기간 정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 사례는 1만7060건이나 된다.

피해자단체는 PF부실 우려를 이유로 건설업계에 34조원이나 보증 지원하는 정부가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재난은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회 통과 확실시, 대통령 거부권 수순 밟을 듯

선구제 후회수 법안의 국회 통과는 기정사실이 됐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여야 의사일정 합의가 안돼도 28일 본회의를 열겠다"고 밝혔다. 본회의는 개정안을 발의한 과반의석 민주당 의원들만으로도 개의될 수 있다. 가결 역시 민주당만으로도 가능하다.

정부는 가결된 법안을 거부권 행사로 폐기시킬 수 있다. 대통령 거부권은 국토부가 '이번에'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응수단이다.

현임 21대 국회의 임기는 29일까지이고, 며칠 시간이 지나 법안을 이송받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로 되돌아갈 법안을 재의결해야 하는 21대 국회는 이미 해산한 상태가 된다.

그렇더라도 민주당은 이달 30일 임기가 시작되는 22대 국회에서도 역시 과반 다수당이고, 선구제 후회수 입법 의지가 소멸될 가능성은 낮다. 반대로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될 가능성은 좀 더 커진다. 22대 국회 여당 의석은 108석에 그쳐, 8명만 이탈해도 거부 법안이 재의결될 수 있다.

전세사기피해자단체 측 선구제 후회수 비용 추산. 참여연대 카드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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