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경찰 "CCTV 속 그 얼굴이네?"…140명 울린 리딩방 총책 잡았다[베테랑]

고양(경기)=정세진 기자 2024. 5. 2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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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우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수사관(경사)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지우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수사관(경사)/사진=정세진 기자

"선배, 총책을 본 것 같습니다. 차량 번호 확인하겠습니다."

지난 4월 30일 늦은 오후, 경기 고양의 한 쇼핑몰에서 퇴근하던 경찰관이 익숙한 인상착의의 30대 남성을 발견했다.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2대가 1년 6개월 넘게 쫓고 있던 사기 리딩방 일당의 총책 A씨였다.

A씨는 지난해 9월 조직원이 잡힌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본인 명의 휴대폰과 각종 인터넷 계정, 금융계좌를 사용하지 않으며 추적을 따돌렸다. 그런 A씨를 퇴근하던 수사관이 우연히 마주쳤다. 그 수사관은 같은 팀 선배 한지우 경사(29)에게 전화해 상황을 알렸다.

한 경사와 수사팀은 A씨 차량 이동경로를 확인한 후 잠복했다. 며칠 후 A씨를 검거했다. 가짜 투자사이트와 리딩방을 운영하며 피해자 140여명으로부터 120억원을 가로챈 일당의 총책이 경찰에 붙잡힌 순간이다.
'대포통장' 거래조직 장부에서 발견한 리딩방 일당 단서…끈질긴 수사로 일망타진
2023년 9월 초, 서울 용산구에서 리딩방 조직 운영팀장 C씨(흰색 상의)가 경찰에 검거됐다. 한지우 경사가 도망치는 C씨를 추적해 검거한 영상./영상=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한지우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2대 수사관(경사)과 수사팀은 2021년 11월 대포통장을 유통한 조직을 검거하면서 리딩방 조직에 대한 단서를 잡았다. 압수한 장부에서 리딩방 운영 일당과 거래한 내역을 발견한 것이다. 대포통장 유통 조직원이 현금을 인출해 리딩방 조직원에 건넨 순간을 담은 CCTV(폐쇄회로) 영상도 확보했다.

이때부터 수사팀은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불법 리딩방 조직에 대한 파악에 나섰다. CCTV를 추적해 리딩방 조직 사무실을 찾아냈다. 잠복과 탐문 수사를 반복하고 차량 이동을 추적해 서울 은평구와 강서구, 경기 고양시 등지에서 운영중인 또 다른 사무실도 파악했다.

영장을 발부받아 주요 조직원의 통화와 금융거래 내역 등을 분석했다. 전국 경찰서에 접수된 리딩방 사기 사건 중 A씨 조직이 사용한 계좌번호와 일치한 사례를 추려 피해자에 대한 파악에 나섰다.

이들은 스팸문자를 발송해 투자자를 모집하고 채팅방에서 투자 전문가, 바람잡이 등 역할을 나눠 '200% 이상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피해자를 속였다.

2022년 10월 불법 투자리딩방 조직원 B씨를 검거하며 경찰이 압수한 현금과 고급 외제차. /사진=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2022년 10월 불법 투자리딩방 조직원 B씨를 검거하며 사무실에서 압수한 현금. /사진=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피해자들은 가짜 투자사이트에서 가상화폐, 금 시세 차익거래를 하며 수익을 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애초에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투자금은 모두 리딩방운영 조직이 챙겼다. 학생과 주부, 의사 등 피해자 140여명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7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봤다. 총 피해액은 124억원에 달했다.

수사팀은 추적을 거듭한 끝에 2022년 10월 가짜 투자사이트를 운영한 B씨(30대·남)를 포함해 일당 11명을 검거하고 다수 PC와 휴대폰 등을 압수해 분석했다.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대화 내역 등 압수물을 분석한 결과 이들 일당이 가짜 홈트레이딩 시스템(HTS)을 운영하며 사기를 치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가짜 투자 사이트 운영을 주도한 B씨는 친구인 A씨와 일당을 모아 범죄를 벌였다. A씨는 총책으로 활동하며 가짜 HTS를 이용해 해외 선물 증시에 투자하라고 피해자를 속였다. 영업팀 등 '인력' 일부도 공유했다.

B씨와 일당이 검거되자 A씨 역시 HTS 운영을 멈췄다. 이들 일당은 모두 동네 친구 또는 선후배 사이였다. 먼저 검거된 이들은 묵비권을 행사하다 '사무실에 들어가기만 했다' 등 최소한의 진술만 하며 시간을 끌었다.
투자리딩사기 조직도 /사진=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조직 일망타진하며 발견한 현금만 23억원…"피해자 돕는 경찰관 되겠다"
한지우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수사관(경사)./사진=본인 제공

경찰은 추적기법을 동원해 지난해 9월 서울 용산구에서 운영팀장 C씨 등 일당을 검거했다. 한 경사는 담을 넘어 도망치는 C씨를 직접 추격해 수갑을 채웠다. 이들이 잡히자 A씨는 잠적했다.

자료확보와 분석의 반복이었다. 수사팀은 300여개 계좌를 확보해 자금흐름을 추적했다. 휴대폰 400여대의 통화내역을 분석하고 CCTV 영상 추적과 잠복수사를 반복해 수사망을 좁혔다. 수사팀이 작성한 수사기록만 4만쪽에 달했다.

그러던 중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A씨를 지난 4월말 한 경사의 후배 수사관이 퇴근길에 발견했다. A씨를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수사관이 CCTV와 사진 등으로 확보한 자료에서 본 얼굴을 기억해 발견한 것이다.

경찰은 사기·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등 혐의로 총책 A씨, 운영책 B씨, 영업팀장 C씨 등 피의자 63명을 검거하고 32명을 구속했다. 이들 일당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현금만 23억원에 달했다. 수사받는 동안 자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약 46억원에 대해 기소 전 추징 보전 조치했다.

한 경사와 수사팀은 도망친 일당을 쫓는 한편 이들 일당의 자금세탁을 도와준 별도 조직을 추적하고 있다.

한 경사는 2019년 순경공채를 통과해 경찰관이 됐다. 군인인 아버지를 보며 군인과 경찰을 동경해 온 그는 "어린 동생과 어딜 갈 때면 경찰차만 봐도 안심이 됐다"며 "그런 역할이 멋있다고 생각해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경찰관이 될 때부터 수사관을 꿈꾼 그는 "시민 피해 회복을 돕는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고양(경기)=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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