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섹스 코미디 영화 ‘아노라’,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2024 칸영화제]
25일(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7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심사위원장 그레타 거윅은 올해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미국 영화 ‘아노라’를 낙점했다고 밝혔다. 션 베이커 감독은 호명 직후 잠시 무릎을 꿇고 조지 루카스 감독으로부터 금빛이 선명한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받았다.
션 베이커 감독은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 “영화가 극장에 나올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저는 제가 영화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칸영화제에서 미리 살펴본 황금종려상 수상작 ‘아노라’는 성매매 업소에 일하던 여성 스트리퍼 아노라(영화에서는 약칭 ‘애니’)가 러시아 권력자의 아들 이반과 장난으로 결혼해 그야말로 ‘신델렐라’가 된 이후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하수인 3인이 아노라를 찾아와 결혼을 무효화하려 하고, 애니는 몸부림치며 이에 저항한다. 이 과정을 보던 이반은 그냥 집을 나가버리는데, 애니는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하수인 셋은 해고되지 않으려 이반을 찾는 어색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결말부에 이르러 이반에 있던 장소를 알게 되면 관객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노라’는 6년 전 같은 자리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노라와 하수인 셋이 러시아 권력가와 이반의 하위 계층을 이루기 때문이다. 정작 권력의 정점에 선 이들은 그저 평온한 삶에 정지해 있고, 오직 살아남으려는 하층민들만이 분투한다. 그런 점에서 ‘아노라’는 ‘미국판 기생충’이란 은유가 가능하다.
션 베이커 감독은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세계인의 찬사를 받는 젊은 감독으로, 그의 영화 속에는 주로 성노동자, 소외계층, 사기꾼이 가득하다. 그러나 ‘아노라’에서 보듯이 션 베이커 감독의 작품은 전혀 무겁지 않고, 온통 웃음으로 가득하다.
션 베이커 감독은 칸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땐 많은 유머로 진정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칸영화제는 본래 ‘중복 수상’을 가급적 피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관례를 깨고 트로피를 2개(감독상, 여우주연상) 수상했다. 특히 여우주연상을 받은(같은 작품의 다른 배우 3인과 공동 수상), 마약 카르텔 두목 델 몬테 역의 스페인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호명 직후 칸 시상대에서 눈물을 펑펑 흘려 큰 박수를 받았다. 그녀 스스로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이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변호사 리타가 납치돼 한 마약 두목 앞에 끌려가고, 그로부터 ”난 여자가 되고 싶다“는 고백을 받은 뒤 방콕, 텔아비브 등지를 다니며 두목의 성전환을 돕는 내용이다. 검은 이빨에 턱수염이 가득한 두목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그 상상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상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내 그림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데 영화는 ‘성을 바꿀 경우 인간의 자아는 이전과 다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칸 각본상은 코랄리 파지트 감독의 ‘더 서브스탄스’가 차지했다.
데미 무어가 전라 노출을 감행한 이 영화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 방송에서 밀려날까 전전긍긍하는 주인공 스파클이 ‘한 번의 투약으로 젊어진 자아를 만날 수 있는 선택’을 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새로운 존재인 ‘젊어진 자아’와 마주친 ‘나이 든 자아’ 스파클은 삶을 일주일씩 공유해야 하는데, 한 자아가 깨어있을 땐 다른 자아는 의식을 잃는다. 두 자아는 서로를 경멸하고 혐오한다. 그러나 그 자아가 둘이 아니라 원래는 하나라는 점, 즉 ‘내가 없애버리고 싶은 나 자신의 모습’이란 점에서 영화는 심오한 주제를 형성한다.
칸 남우주연상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친절의 종류’에서 주연을 맡은 제시 플레먼스에게 주어졌다. 이 영화는 3개의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에 압축한 작품이다.
제시 플레먼스가 연기한 남성 다니엘은 아내 리즈의 실종으로 괴로워 한다. 그러나 아내가 조난 끝에 귀가했는데, 리즈가 이전의 리즈와 다르다. 실종 전에 신었던 신발은 작아졌고, 잘 먹지도 않던 초콜릿 케이크를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워서다.
다니엘은 아내 리즈가 다른 여성이라고 믿기 시작하는데, 급기야 정신질환으로 거식증에 걸린다. 어느 날, 다니엘은 리즈에게 ”손가락을 잘라 요리해달라“고 말한다. ‘손가락 요리’를 해야만 리즈는 다니엘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인간은 자신을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이번 시상식에서 특별상은 이란 정권의 탄압을 받아 교도소 생활을 했고 급기야 유럽으로 망명한 라술로프 감독이 받았다. 그는 전날인 24일(현지시각)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최초 상영된 ‘신성한 무화과의 씨앗’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에 가까스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 ‘신성한 무화과의 씨앗’은 교도소에서 일하는 원칙주의자 공무원 이만이 ‘사건 기록을 읽지도 않고 사형선고에 서명해야 한다’는 걸 알고 갈등하는 이야기다. 스스로 탄압과 검열을 받고 삶을 저당잡힌 감독이란 저에서 그의 작품은 황금종려상 수상이 유력했으나, 결국 칸영화제 심사위원회는 특별상으로 이란 정부와의 정면 충돌은 피해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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