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때 흩뿌리는 색종이 조각…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4. 5. 2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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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18] 결혼식에서 뿌리는 반짝반짝 파티가루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흩날리는 컨페티는 그 자체로 축제라는 느낌을 전해준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명사. 1. 컨페티 2. 색종이 가루, 파티 가루 3. 꽃가루, 플라워 샤워【예문】컨페티를 뿌린다는 게 휴대전화를 던지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신부는 아직 의식을 찾지 못했다.

컨페티(confetti)다. 낯선 외래어다 보니 국내 쇼핑몰에서는 색종이 가루나 파티 가루 같은 표현을 함께 쓰기도 한다. 축제나 결혼식 등 행사 하이라이트 때 뿌리는 색종잇조각을 뜻한다. 종이가 아닌 얇고 반짝이는 플라스틱 소재를 쓰기도 한다.

컨페티는 라틴어 confectum에 어원을 두고 있는 confect(사탕과자·당과)에서 유래했다. confetti는이탈리아어로는 설탕을 입힌 아몬드를 뜻하는 confetto의 복수형(요르단 아몬드·드라제라고도 한다)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전통 선물로 결혼식 때에는 흰색 설탕을 입힌 5개의 컨페티를, 아기 세례식 때에는 연한 파란색 혹은 분홍색 컨페티를 손님에 전달하는 풍습이 있다. 건강과 부, 행복, 다산과 장수라는 5가지 소원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고 삶의 쓴맛(아몬드)과 사랑의 달콤함(설탕)을 함께 맛본다는 의미도 있다. 혹시라도 쓴맛만 보고 있는 기혼자가 있다면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

북미권에서는 요르단 아몬드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컨페티. 결혼식 때 5개의 컨페티를 주는 이유는 짝수는 ‘나누어지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nuts.com]
맛도 있고 의미도 남다른 간식이 어째서 ‘던지는 물건’이 됐을까. 갓 결혼한 부부에게 다산과 번영을 기원하며 쌀이나 밀 같은 곡식을 뿌리는 관습은 기원전 켈트족과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사탕이나 과일이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특별한 일을 기념하고 축복하기 위한 오래된 의식인 셈이다.

또 중세 유럽에서는 축제 때 행진 참가자들이 군중에게 진흙 덩어리, 달걀, 과일, 꽃, 동전 등 물건들을 던지곤 했다. 반대로 군중들이 퍼레이드 주인공들에게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물건을 서로에게 던지는 일이 축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597년 당시 밀라노 공국을 통치했던 스페인 귀족 후안 페르난데스 데 벨라스코 총독이 점차 과격해지는 관습을 금지한 이래 약 100년간 사라졌다가 1700년대 작은 사탕(고수 씨앗에 설탕을 입힌 게 많았다) 따위를 던지는 형태로 부활했다.

현대적인 의미의 색종이 가루, 컨페티를 발명한 사람은 밀라노의 사업가였던 엔리코 만질리(Enrico Mangili, 1840~1895)였다. 비단 생산지로 유명했던 밀라노에서 방직 회사를 경영했던 그는 누에 사육을 위해 구멍을 낸 종이 시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작은 종잇조각, 그러니까 쓰레기를 밀라노 카니발 퍼레이드에서 ‘던질 물건’으로 팔기 시작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도 한 수 접어야 할 사업 수완이다. 아무튼 사탕보다 저렴했고, 딱딱한 물건보다 안전했으며, 축제 분위기 띄우기에도 적합한 이 색종이 가루는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전파됐다.

그렇다면 컨페티라는 단어를 설탕 입힌 아몬드라는 뜻으로 이미 쓰고 있던 이탈리아에서는 색종이 가루를 뭐라고 부를까. 고수를 뜻하는 coriàndolo다. 축제 때 주로 던져댔던 물건 중에 설탕 입힌 고수 씨앗이 많았던 탓이다. 제발 단어 좀 만들어 쓰자.

컨페티의 아버지 엔리코 만질리. 훌륭한 사업 수완만큼이나 사회 환원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가 재정적으로 이바지한 보육원 정원엔 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 출처=gabinetepodcast.com]
컨페티를 뿌리는 대표적인 이벤트는 티커 테이프 퍼레이드(ticker-tape parade)다. 티커 테이프는 1870년부터 1970년까지 사용된 ‘주가 전신 프린터’다. 주식 종목의 시세, 거래량 등 정보를 전신선으로 전달받아 얇고 긴 종이에 인쇄했는데, 이 종이의 명칭 역시 티커 테이프다. 이전까지는 주가는 서면이나 구두로 전달됐다. 금융사에서는 ‘러너(runner)’라고 불리는 어린 직원들이 거래소와 사무실을 오가며 주식거래 주문표를 전달하고 시세를 보고했다.

티커 테이프 덕분에 시장 참여자들이 거래 정보를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거의) 실시간 거래’가 가능해졌고, 이는 금융 시장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1867년 미국의 금융사 웨스턴 유니온(당시 웨스턴 유니온 텔레그래프 컴퍼니)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칼라한이 발명한 티커 테이프는 1869년 발명왕 에디슨의 개량품을 거쳐 월스트리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지만 흔적은 남아있다. 미국 증시에서 MSFT(마이크로소프트), AAPL(애플), SBUX(스타벅스) 등 약어로 표시한 종목명의 이름은? 바로 ‘티커’ 되겠다.

좌측부터 티커 테이프를 확인해 주식 시세표에 표시하고 있는 직원들, 티커 테이프 퍼레이드, 에디슨이 개량해 선보인 티커 테이프 기기 Uiversal Stock Ticker. 가운데 행진은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 일행을 환영하기 위한 시카고 티커 테이프 퍼레이드로, 건물에서 비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이 바로 티커 테이프다. 미화원의 깊은 분노가 시공간을 초월해 느껴진다. [사진 출처=공공 저작물, NASA, 헨리 포드 컬렉션]
티커 테이프 퍼레이드는 1886년 10월 28일 자유의 여신상 헌정식이 열린 미국 뉴욕시 축하 행사부터 유래했다. 퍼레이드 경로에 있는 주변 건물 창문에서 티커 테이프를 비롯한 종잇조각을 던져 열렬한 환영과 축하의 뜻을 전한다. 전쟁 영웅 더글라스 맥아더, 최초의 단독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 우주비행사 존 글렌 등이 뉴욕 티커 테이프 퍼레이드의 주인공이었다. 티커 테이프가 역사의 흔적으로 사라진 지금은 화장지나 작은 조각으로 자른 폐지, 혹은 시에서 제공하는 컨페티로 대체됐다.

기분 낼 때는 좋지만 뒷정리가 영 곤란한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어린아이 손에 들려준 유성 매직이요, 다른 하나는 신나게 뿌려댄 컨페티다. 환경 오염도 문제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동결 건조된 꽃잎이다. 쓰레기 생기는 건 똑같지만 생분해성 소재이다 보니 몇몇 행사에서는 아예 컨페티 대신 꽃잎만 허용하기도 한다. 국내 결혼 업체에서는 이러한 꽃잎 컨페티를 두고 ‘플라워 샤워’라는 아름다운 표현을 쓰기도 한다. 사전으로 찾아보면 영미권 표현은 아니고 일본에서 주로 쓰는 표현이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예비 신부를 위해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브라이덜 샤워’, 출산이 임박한 임부나 갓 태어난 신생아를 축하하기 위한 ‘베이비 샤워’에서 유래한 것 같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피바다 난투극이나 시위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축제다. 왼쪽은 이탈리아 이브레아에서 열리는 이브레아 카니발 행사 중 하나인 ‘오렌지 전투’. 오른쪽은 스페인 발렌시아의 세계적인 축제 ‘토마티나’. 러시아 인문학자 미하일 바흐친(1895~1975)의 ‘카니발(사육제) 이론’에 따르면, 카니발을 비롯한 민중적인 축제는 일상적인 생활 질서를 무너뜨리고, 모든 금기와 제재를 일시적으로 제거한다. 또 기존의 권위를 조롱하는 전복된 논리가 주를 이루게 된다. ‘먹는 음식을 던진다’는 터부시되는 행동을 마음껏 발산하는 축제 역시 전복과 해방이라는 카니발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사진 출처=레드불 유튜브, 연합뉴스]
사용자가 참여하는 포털 사이트 오픈 사전 항목 중에는 컨페티의 순우리말로 ‘꽃보라’를 추천하는 의견도 있었다. ‘떨어져서 바람에 날리는 수많은 꽃잎’을 뜻하는 꽃보라와 컨페티의 이미지가 제법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미 ‘경사스러운 일을 축하할 때 뿌리는 여러 색깔의 작은 종잇조각’이란 의미로 꽃보라를 쓰는 곳이 있다. 바로 북한이다. 앗, 아앗. 이러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

북한 작가 엄단웅이 1980년 펴낸 소설 ‘령마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꽃보라를 뿌리는 심정으로 깨끗한 강바닥의 흰 모래를 펴기 시작했을 것이다.

  • 다음 편 예고 : 바닷가에 무더기로 쌓여 있는 돌로 된 삼발이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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