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추인, 시집-산문집 동시 출간 “아득히 닿고 싶은 별을 찾아서”

장재선 기자 2024. 5. 2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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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11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저에게 시는 어려운 일이 닥쳐왔을 때 동굴과 같은 피난처 역할을 해 줍니다. 시는 제 안에 새 한 마리가 찾아와 우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새는 낯익을 수도, 전혀 낯선 새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으로서 저는 제 안에 무한히, 아득히 닿고 싶은 별을 찾아 헤매는 존재이지요."

그는 최근 출판사 서정시학을 통해 시집 『자코메티의 긴 다리들에게』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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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11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저에게 시는 어려운 일이 닥쳐왔을 때 동굴과 같은 피난처 역할을 해 줍니다. 시는 제 안에 새 한 마리가 찾아와 우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새는 낯익을 수도, 전혀 낯선 새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으로서 저는 제 안에 무한히, 아득히 닿고 싶은 별을 찾아 헤매는 존재이지요."

김추인 시인은 유튜브 방송 ‘서정시학 TV’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출판사 서정시학을 통해 시집 『자코메티의 긴 다리들에게』를 펴냈다. 동시에 기행 산문집 『그러니까 사막이다』를 출간했다.

장르는 다르지만, 두 책은 실제로든 심상으로든 사막을 걷는 인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그 사막에서 우주적 상상력과 심미안으로 기어이 자신만의 길을 내는 예술가를 만나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시인의 역마살 개성이 모듬살이에의 희망 의지로까지 확장하는 즐거움을 다른 장르로 함께 느낄 수 있다.

시집은 67편의 시를 4부(1~3부는 각 17편, 4부는 16편)로 나눠 선보인다. 각 편은 독립적이면서 모두 인간 학명을 부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작으로 기능한다. 예컨대, 작품 <향수는 어디다 뿌리나요>의 부제는 ‘homo artex(예술적 인간)’이며, <장미원의 퍼포먼스>는 ‘homo aestheticus(미학적 인간)’이다. 67편 작품 모두가 이런 학명을 달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인간과 세상, 그리고 삶을 깊고 넓게 탐색하고 있다.

유성호 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김추인의 시는, 개개 시편마다 따라붙는 풍요로운 인간 학명들처럼, 새롭게 탄생하고 부가되는 인간 해석의 경험과 혜안을 충일하게 펼쳐간다"라고 했다. 우주적 스케일과 내면적 디테일이 수없이 교차하며 독자적 음색을 정점에서 빚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빛을 지상으로 쏘는 언어의 파동’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표제작은 그 울림을 뚜렷이 전한다.

자코메티의 긴 다리들에게

- Homo evolutis(진화적 인간)

자코메티의 남자,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보폭

무릎 끓을 수 없는 긴 다리,

허허 빈 천공을 뚫어낼 듯

육십 년을 내내 걷고 있다

숱한 문짝들을 지나

암흑물질과 광자들 지나 양자의 물결 속을 걸어가고 있다

소립자들의 문은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고 아직 어느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한

지평선 저 너머를

별들의 저 너머를 응시하며 걷고 걷는다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쉿! 비밀 하나, 남자의 닉네임은 ‘보이저’라고도 하는데)

새 천년의 무탄트, 암호를 풀다 - 기사 한 토막 없었지만

화성, 목성을 지나 토성을, 해왕성의 고리를 곁 보고 지나고 지나고 지나 태양계 바깥, 오르트 구름 속을 걷고 걷도록

별 하나 지날 때마다 ‘알로호모라’ Mars, Jupiter··· 암호를 불러내며 열고 열고 또 열어

새들이 뼛속을 긁어냈듯

껴입은 시간의 무게를 살들을

비워내고 덜어낸

살가죽과 뼈만의 남자,

녹 청동 옷은 입었던가 벗었던가 기억 없이

되돌아 아득히 창백한 푸른 점,

먼지의 지구별을 일별하며 걷고 걸으며

자코메티의 긴 다리들에게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그리 계속 걸어 나가야 한다*

---------------------

*자코메티의 말

산문집 『그러니까 사막이다』는 제목에서처럼 남미,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을 여행한 기록이다.

김추인에게 여행이란 숙명 같던 동경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 서울에서 육사를 다니다가 가끔 귀향해서 멋진 정복을 자랑하던 오빠처럼 집을 떠나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홉 살 터울의 오빠가 들려주던 우주 이야기는 그로 하여금 아득히 머나먼 존재의 과거나 미래를 서성이게 했다.

세상의 간난신고를 겪은 후에 찾은 사막들은 어린 시절에 심상으로 서성거렸던 바로 그곳이었다. 자신이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어른이 되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가 일상의 담장을 넘어 바람처럼 떠돌며 접신하는 곳이었다.

‘바람이 불고

마음이 얼룩덜룩한 날은 떠날 것을 생각한다.

한 번 먹은 마음은 이미

구름처럼 날아 바람 속을 걸으며

모든 일상으로부터 떠난다

다정한 것들로부터 제일 먼저 떠나야 한다.

너에게서도 떠나 나 자신에게서조차 떠나

역마살이 이끄는 대로 나서 보는 것’

그는 역마살 DNA 덕분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여행을 감행하고, 거기서 우주와 교감하며 세상과 삶을 읽었다. 그 읽기 역시 문중 DNA라는 것이 흥미롭다. 책을 좋아했던 할아버지, 아버지의 유전인자 덕분에 그 역시 독서 인생을 살아왔는데, 사막 여행 역시 아름다운 책 읽기라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장재선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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