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 수술을 한 멕시코 마약 카르텔 두목… 칸에 등판한 ‘미친’ 영화 [2024 칸영화제]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5. 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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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칸영화제] 자크 오디아르 감독 ‘에밀리아 페레즈’
프랑스 칸영화제는 세계 영화의 가장 뜨거운 현장이자 지금 이 순간 세계인이 열광하는 시네마의 준거점입니다. 제77회 칸영화제 현지에서 칸 황금종려상 후보인 ‘경쟁 부문(In Competition)’ 진출작과 관련한 소식을 밀도 있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올해 칸영화제에 ‘미친 영화’가 한 편 등장했습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입니다.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치솟으면서도, 우리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 두목의 성전환 수술.’ 칸영화제에서 공개되기 전부터 일찌감치 상영관 전석이 매진돼 가장 예매하기 어려웠던 이 영화는, 칸영화제 마지막 날인 25일(현지시각) 추가 상영이 결정돼 관객과 만났습니다.

역시 전석이 매진돼 빈 자리가 하나도 없었던 이 영화를 팔레 드 페스티벌 드뷔시극장에서 방금 관람을 마쳤습니다. 이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에서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마약 카르텔 두목 델 리타 역에는 스페인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맡았습니다. 그녀는 실제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배우입니다. 영화에서 분장을 얼마나 무섭게 했는지 그의 등장 장면은 전부 긴장감으로 가득합니다. [EPA·연합뉴스]
영화는 변호사 리타를 따라갑니다. 그녀는 한 재판에서 승소해 유명세를 얻습니다. ‘사망한 아내의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는가, 아니면 아내의 자살인가’가 쟁점이었는데 리타는 빈틈 없는 논리로 승소했습니다.

얼마 뒤 그녀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익명의 제안이었지요. 그런데 그 직후, 거리에서 리타는 검은 괴한들에게 납치됩니다. 두건으로 머리 전체를 가린 채 이동해 도착한 곳은 거대한 화물차의 뒷칸이었습니다.

부하들을 전부 내보낸 화물차 뒷칸에서, 한 남자가 말합니다. “리타, 너는 내가 누군지 아는가?”

두목은 델 몬테.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두목이었습니다. 온통 검은 치아에 긴 장발을 뒤로 넘겼고, 손가락에는 큰 반지가 가득입니다. 델 몬테는 리타에게 말합니다. 자신의 ‘사건’을 의뢰할 테니 비밀을 누출하지 말라고. 잔뜩 긴장한 리타가 어떤 일을 맡기려는 건지를 묻자 델 몬테는 말합니다.

“난 여자가 되고 싶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에서 변호사 리타는 마약 카르텔 두목 델 몬테 성전환 수술을 돕기로 합니다. 리타는 방콕, 텔아비브 등을 다니며 두목을 여성으로 만들어줄 의사를 찾습니다. [칸영화제 웹사이트]
너무 뜻밖의 요청에 리타는 당황하지만 그의 ‘사건’을 처리하기로 합니다. 리타는 방콕, 텔아비브 등을 떠돌며 델 몬테의 성전환 수술을 진행할 의사를 물색합니다.

델 몬테에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지만, 델 몬테가 여자가 되려 한다는 사실을 가족도, 그의 부하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됩니다.

리타는 ‘마약 두목의 성전환 수술’을 완벽하게 진행할 수 있을까요.

쳐다만 봐도 총 맞을 거 같은 무시무시한 외모의 마약 두목이 젊은 변호사 앞에서 성전환 수술을 요청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 부분입니다. 두목 델 몬테는 “내가 그 상상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상상에서 벗어나지 못햇다. 나는 내 그림자가 되고 싶다. 나는 나의 온전한 삶(my own life)을 위해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의 내밀한 고백이고 동시에 가면 뒤의 얼굴을 희망하는 모든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한 마디이기도 하지요. “나는 지금의 나보다는, 나의 그림자로 살고 싶다”는 델 몬테의 고백은 그래서 더 절절하게 와닿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가면 뒤에 숨어서 ‘가짜 자아’를 세상에 내보이는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마약 카르텔 두목 델 몬테는 스스로 자신의 온전한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여성이 되기로 합니다. 그가 신체적으로 여성이 됐을 때 그는 이전의 두목과 같을까요, 다를까요. [칸영화제 웹사이트]
이 흥미로운 설정의 영화는 관객에게 이렇게 묻는 것만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바꿀 경우 그 사람은 이전의 자아와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델 몬테가 ‘육체적 여성’이 되더라도 마약 카르텔 두목이란 점은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어둠의 마왕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변화욕이 불러일으킨 상황에 대해 두려워 합니다. 델 몬테가 눈물을 흘리면서 리타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겠지요.

델 몬테는 세상의 권력자이지만 그가 성정체성을 바꿀 경우 이 권력이 변화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오묘한 지점을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의 리타 역을 맡은 조 살다나(왼쪽)와 두목의 아내 역을 맡은 셀레나 고메즈가 칸영화제 외신기자 포토콜에 참석한 모습. [EPA·연합뉴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긴장감으로 가득합니다. 뮤지컬 영화인데, 영화 속에 흐르는 음악(넘버)이 안온하기보다는 오히려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지요. ‘폭력’과 ‘뮤지컬’이 융합된 이 영화는, 이질감보다는 세련된 감각으로 가득합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현재 스크린데일리 평점 2.5점을 받았습니다. 22편의 작품 가운데 3점대를 넘긴 작품이 현재(25일 오후 1시 기준, 현지시각)까지 3편이기 때문에 2.5점도 준수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평점을 떠나서 이 영화의 질문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아마 한국 관객 분들도 이 영화를 만나게 되시리라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여부는 25일(현지시각) 저녁에 발표됩니다.

25일(현지시각) 칸영화제 드뷔시 극장에서 관람한 ‘에밀리아 페레즈’의 티켓.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관람을 기다리는 칸영화제 드뷔시 극장의 관객들. 25일(현지시각) 모습입니다. 전석이 매진돼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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